정교진
▲정교진 연구교수(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3·1 독립기념사를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주권과 평화를 매우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현재 전쟁의 참화 속에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하지 않았다. 임기 내내 평화를 그렇게 외치던 분이 정작 3·1 독립기념일에 언급한 평화는 고작 남북한의 평화, 지엽적인 평화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만국(세계)의 평화를 선언했던 3·1 독립정신에 크게 위배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3.1 독립선언서에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면서 ‘인류의 평화’, ‘인류의 평등’을 주창하면서 이것이야 말로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임을 천명하였다. 침략으로 인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울분을 곳곳에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온 인류의 시대적 양심과 정의, 인도의 방패가 우리나라를 지켜줄 것이라고 확언하며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이 3·1 독립선언서 전체 줄거리다. 그 중, 몇 문장을 가져와 본다.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 구나”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103년 전에 외쳤던 우리 선조들의 독립정신이자 인류평화 사상이다. 지금 온 인류 앞에 우리 선조들의 103년 전에 외침이 저 우크라이나 땅에서 다시금 쾅쾅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3·1 절을 맞아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자고 연단에 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말았다. 이것이 어찌 선조들의 독립정신과 인류평화 정신을 훼손하고 짓밟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 세계인이 전쟁중단을 외치며 반전시위가 러시아 자국에서부터 들불처럼 일어나 온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고 인류공영을 소리 높여 외치던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역사적인 3·1절 날, 정작 이 나라 지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세계인들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러시아의 푸틴은 누가 봐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인류평화를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이다. 현재는 핵 사용을 거론하며 전 세계를 위협과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는 이때, “전쟁을 반대한다”라는, 말 한마디 조차 하지 못한 우리 지도자다. 러시아와 얽혀있는 경제적 문제로 인해 특히, 남북러 가스연결 사업이 백지화될 수 있다는 주한 러시아 대사의 경고에 신중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전쟁반대 의사표시 정도는 해야만 했다.

누구보다 ‘평화’, ‘평화’를 강조했던 분이 아니었는가. 그 평화가 고작 남북한에만 해당되는 좁디좁은 평화였던가. 아무리 이 정부가 동북아 경제공동체, 더 나아가 동북아 안보공동체 방안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정부로서 국제사회의 움직임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말았다.

필자는 이 정부가 국제사회의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한다고 했다가 중국과 같은 입장으로 선회할까 싶어 심히 우려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국제사회가 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를 취할 때 중국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고 러시아의 침략으로 규정하는 것도 반대했다. 중국의 시진핑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이미 뻬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푸틴을 만나 러시아 천연가스를 매년 100억 ㎥를 수입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시킬 때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반대하면서 478조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의 가스공급체결 계약(30년)을 했던 시진핑이다. 이번에도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담합하고 있는 중국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동참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었다. 그런데, 만일 북중러 가스 사업 때문에 이 기조를 뒤집어 버린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40% 이상 수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인류평화 이름 앞에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오늘 기념사에서도 빠지지 않고 ‘주권’을 내세웠다.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을 흔들 수 없고 주권을 빼앗을 수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발언이 과거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과 러시아에도 해당되기를 바란다. 경제적으로 흔든다고 인류 최고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를 당당하게 선언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후대들에게 부끄러운 유산만을 남겨주고 말 것이다. 필자는 글을 마치면서 과거 우리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유산, 정신을 남겨주신 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응원하며 속히 전쟁이 종식되기를 기원해본다.

대한 민족 전체가 대한의 독립을 믿으니
대한이 독립될 것이오.
세계의 공의가 대한의 독립을 원하니
대한의 독립이 될 것이오.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가 전쟁의 승리를 믿으니
우크라이나는 전쟁에 승리할 것입니다.
전 세계인의 공의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원하니
우크라이나는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명하니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전쟁은 종식될 것입니다.

정교진 연구교수(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