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씨앗 꽃 오요한
▲민들레꽃. ⓒUnsplash
시편 74편 강해

요절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10절)”.

다윗은 법궤를 모셔다 놓고 레위 사람을 세워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했는데, 이 봉사의 두목으로 아삽이 임명되었습니다.

다윗이 악대를 24반으로 편성할 때, 아삽은 여두둔, 헤만과 더불어 악대 총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수하에 거느리고 왕명에 따라 신령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12편의 시(시편 50, 73-83편)가 아삽의 작이라고 합니다. 아삽은 다른 지휘자들과 같이 선견자라고 불리웠습니다.

마스길은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교훈을 위하여 쓴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기도하고 명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1. 어찌하여 영원히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성전은 파괴되고 기물은 불에 탔습니다. 이스라엘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기르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셨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가 호소합니다.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 있습니다.

루터는 구원을 5가지에서 자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과 율법과 진노에서의 자유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하나님으로 느껴지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진노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껴지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질병, 환난, 배신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무너진 것으로 진노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진지하게 예배하면, 성소에서 만나주십니다. 신앙생활이 바로 되면 성경 말씀 중심이고, 성전 중심이고, 하나님의 종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성소를 버렸습니다. 성소에서 기도하거나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장사합니다. 그곳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하고 살인합니다. 그러면 성전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성전을 헐어버렸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의 표현입니다. 성전이라도 있어야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와 자비가 나타난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범죄할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 징조로서 성전을 헐어버리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2. 주의 회중을 기억하소서

2-3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옛적부터 당신의 자녀로 얻으시고 애굽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주의 영원한 소유된 기업의 지파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영구히 파멸된 곳이 되었습니다.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습니다. 아삽은 주의 소유인 주의 회중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이 주의 회중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성전에 임재해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곳을 향하여 하나님의 발길을 옮기셔서 함께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 주의 이름을 더렵혔나이다

4-9절을 보면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웠습니다. 깃발을 승리의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들처럼 이스라엘의 성전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시던 곳을 더렵혀 땅에 엎었습니다.

북한에는 많은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당들은 다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영화롭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무너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입니다.

성전에는 이방 사람들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성전에 들어가서 돼지 머리를 세워놓습니다. 느부갓네살을 통해 성전을 깨끗이 헐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무너지고 벽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통곡의 벽’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면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든지 하나님의 성전은 더렵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성전이 더렵혀졌습니다. 성전이 불타버렸습니다.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원수들은 마음 속으로 성소를 진멸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회당을 불살랐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하나님의 표적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성전이 있고, 그곳에 선지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이스라엘은 완전 암흑기였습니다.

교역자도 하나님이 보내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십니다. 목자가 없는 예배당도 있습니다. 목자를 판단하고 쫓아냅니다. 파벌이 나누어져서 목사를 모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종이 그들과 함께 없습니다.

아삽은 이런 일이 얼마나 더 오래 될지 알 수도 없습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국 교회는 예배당을 사모합니다.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이 없습니다. 목회자를 구할 수 없습니다. 몰래 숨어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당이 있고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4.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10-11절)”.

이스라엘이 비방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당하는 억울함에 집착할 때가 있습니다. 욕심에 집착할 때도 있습니다. 나 중심적인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아프고 속이 썩는다고 분하고 한이 맺힌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관심을 갖고 기도합니다.

성전이 파괴됨으로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의 이름이 비방당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은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만 응답됩니다. 내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있어야합니다.

아삽은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당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삽은 대적이 언제까지 여호와를 비방할 것인가 묻습니다. 주의 이름이 영원히 능욕받을 것인가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하자 다 멸망하고 모세만 살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한 백성에게 진노하시면 하나님은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하니님의 능력이 헛되게 됩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여냈다고 말합니다. 자기 백성을 죽인 것이 여호와냐고 말하니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백성이 죄를 지으면, 망해도 됩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이 불신자에게 비난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됩니다.

자식이라면, 부모의 명예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하면 부모에게 욕이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주의 권능의 손을 거두셨느냐고 질문합니다. 이제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어 그들을 멸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창피하니, 욕을 얻어 먹는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모욕을 당하면 하나님에게 욕이 된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내가 도적질해야 되겠습니까? 물질로 범죄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부유하게도 마시고 비천하게도 마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합니다.

나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는 것입니다. 긍극적 관심이 나에게 있느냐 하나님께 있느냐는 것입니다.

5. 예로부터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라

12-18절을 보면, 아삽은 지금까지 놀라운 일을 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옛날부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백성이 잘못되면 왕이 수치를 당합니다. 왕이 영광을 받으면 백성도 함께 영광을 누립니다. 왕과 백성은 공동 운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왕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것을 ‘솔라 글로리아’라고 합니다. 이것이 개혁 교회의 5대 신조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은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셨습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물가운데 있는 용(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애굽 왕 바로를 물리치셨습니다. 애굽의 탈취물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늘 흐르는 강물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바위에 샘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높으시고 크신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 받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밤과 낮이 다 주의 것입니다. 주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주님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습니다. 주께서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땅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지구의 공전을 명하셔서 여름과 겨울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원수들이 창조주 주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지만,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었습니다.

6. 주의 백성의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19-20절을 보면, 주님의 멧비둘기같은 주님의 백성을 들짐승과 같은 이방인에게 주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은 멧비둘기처럼 초라합니다. 이방 나라 사람들은 들짐승과 같이 강합니다.

주의 가난한 자의 백성을 영원히 잊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눈여겨 보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모세에게 하신 약속,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을 돌아보아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 이방 민족들을 통해 징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징계를 받다가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회개하면,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 본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인은 그 언약을 기억하고 구원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 언약을 눈여겨 보시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돌아오면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구원을 간구할 때 탄식이 바뀌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잡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 약속을 돌아보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무릇 땅의 어두운 구석구석마다 포악한 자의 소굴입니다. 그들을 물리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7. 가난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21-23절을 보면, 학대받는 이스라엘이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이스라엘이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정직하고 신실한 기도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한이 있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가난한 자의 입에도 찬송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원망을 품고 원성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부한 자가 갑질해서는 안 됩니다. 부한 자를 존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을 많이 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부자가 된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나라는 부한 자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부한 자라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라고 원망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주님이 당하는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 항거하여 일어서는 대적들의 소리를 잊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대적하여 떠드는 소리가 점점 높아만 갑니다. 이런 소리를 그치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들림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 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