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중시하는 교회, ‘고독한 미식가’들과 마주하다
기존 교회들 구축한 네트워크, 중장년층만 효과 발휘
공동체 접근조차 안 하려는 현실, 극복할 지혜 모색을

1인 가구
▲홀로 사는 삶, 혼밥을 즐기는 삶의 모습에 무한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한국의 전주비빔밥 식당 편.
◈고독함의 가치: 비혼자들의 초인, 일드 <고독한 미식가>

일본의 TV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 2012-2019)>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서사 구도를 가진 작품이다.

2012년 일본 TV 도쿄 방송국에서 방영을 시작한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 분)는 수입 무역업자로 일하는 중년 남성이다. 그는 줄곧 홀가분한 삶을 동경해왔던 사람이라 결혼을 거부하고 업무 역시 직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처리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 고로라는 인물의 삶에 단 하나의 낙이 있다면 바로 ‘혼밥’이다. 그는 업무상 방문하는 모든 곳에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아 홀로 식사하는 데서 삶의 기쁨을 찾는다.

값비싼 일류 레스토랑이나 거창하게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식문화를 반영하는 조촐하고 아담한 식당만 골라서 방문한다.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동일한 형식의 서사를 전한다. 주인공 고로가 마음이 끌리는 식당을 찾아내고,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혼자 식사를 하면서 느끼는 맛과 만족감을 마음의 소리, 즉 방백으로 표현하고,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는 이야기. 달라지는 것은 음식의 종류와 그 맛에 대한 주인공의 구체적인 평가뿐이다.

이렇게 담백하다 못해, 거의 서사가 없다시피한 이 드라마가 처음 기획되었을 때, TV 도쿄 내부에서는 이 작품의 흥행에 별반 기대감이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DVD 판매 역시 급증하면서 원래 한 시즌으로 끝날 줄 알았던 드라마가 2020년 현재 8시즌까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인기는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 중국, 대만에까지 이어져, 많은 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고독한 미식가>를 시청 중이다.

미남 미녀 주인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극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며, 애잔한 연애 이야기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이 이렇듯 동아시아 각국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주된 이유는 '공감'일 것이다.

주인공 고로의 삶은 어찌 보면 동아시아 청년 1인 가구 세대의 이상형이자 삶의 지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복잡하고 피곤한 감정소모적인 인간관계를 모두 떨쳐버리고, 묵묵히 소박한 생계를 유지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홀로 즐길거리를 향유하는 자유인, 이 비혼자들의 니체적 초인이 수많은 실제 1인 가구 청년층에게 공감과 편안함, 그리고 해방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1인 가구
▲한 대학식당에서 홀로 식사를 하는 대학생. 대학가의 경우 혼밥이 거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이다. ⓒ연합뉴스 캡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인기는 오늘날 한국 청년층의 가치관 변화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혼과 비혼으로 인해 1인 가구가 증가하는 현상은 처음에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가 컸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금도 1인 가구 생활을 이어가는 20-30대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비자발적 비혼 상태가 장기화되고 고착화되면서, 점차 이들의 가치관과 문화 자체가 달라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기존 비혼자들 가운데서는 비자발적 비혼자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현재는 경제적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자발적 비혼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홀로 사는 청년층이 급증하고, 또 그런 생활이 갈수록 선호되는 현상은 비단 일본이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만 겪고 있는 일은 아니다. 이는 현재 일정 수준 이상 경제개발이 진행된 국가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현상이다.

다만 청년 1인 가구 증가와 그에 따른 근본적 가치관 변화가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고독함의 도전: 고독한 삶의 확산으로 인한 공동체적 종교성의 해체

청년층 상당수(2015년 기준 30대 초반 남성 45%, 여성 38%)가 혼자 사는 삶에 빠르게 적응해가는 상황은 한국교회 전체에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결혼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와의 사별이나 부모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미혼, 비혼 상태가 겹쳐진 삶은 가정만 아니라 아예 모든 공동체로부터 단절된 삶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온라인-모바일 세상이 도래하고 올해는 코로나까지 창궐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 교수이자 공공정책학 전문가 엘리야킴 키슬레브(Elyakim Kislev)는 작년(2019년) 홀로 사는 독신 청년층 증가 현상에 대한 전문연구서 <혼자 살아도 괜찮아>(Happy Singlehood: The Rising Acceptance and Celebration of Solo Living)를 발간했다.

한국어판 제목으로만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독신수기 같지만, 실은 전 세계적인 청년 1인 가구 증가 현상, 비혼 현상을 사회과학적으로, 질적 연구를 통해 풀이한 학술서이다.

1인 가구
▲엘리야킴 키슬레브의 청년 1인 가구 증가 연구서, 와 한국어 번역본
키슬레브는 이 저서에서 비혼 독신 청년층의 전세계적 증가 원인을 여럿 제시하는데, 그 가운데 우리가 흔히 아는 인구구조 변화, 경제적 여건 악화, 여성의 사회진출과 역할변경, 교육수준 고도화 외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종교성의 변화(shifts in religiosity)와 대중문화 및 소셜 네트워크의 역할이다.

키슬레브의 설명에 따르면, 대다수 종교는 전통적으로 가족주의(familism)를 강조해 왔다. 이는 특히 종교 공동체의 존재를 신앙의 필수요소로 여기고 혼전, 혼외정사를 각별히 죄악시하는 종교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다.

때문에 종교적 가치관이 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대에는 독신 상태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에 따라 비교적 높은 혼인율 및 출산율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회 전반에 대한 종교적 가치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종교 공동체 내부에서조차 청년층 사이에 비혼 추세가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이는 공동체나 가정에 구속되기를 꺼리며 대신 혼전정사나 비혼인 동거, 아니면 아예 순전한 독신을 선택하는 자유주의적 경향이 모든 종교계 내부에 급속하게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서구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만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 것처럼 생각되나, 실상 가정과 공동체의 가치를 기독교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시하는 유대교, 이슬람, 그리고 힌두교 청년층에서도 비혼 독신 추세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는 대중문화, 미디어, 소셜 네트워크에 의해 강화, 가속화되고 있다. 기존 영화, 드라마, TV 시리즈 등이 가족애와 가정, 공동체의 가치를 절대화하던 것과 달리, 오늘날 인기를 얻는 작품들 상당수는 가정과 집단, 공동체가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구속 기제로 작용한다는 사상을 여과없이 표명하고 있다.

키슬레브는 그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TV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윌 앤 그레이스>(Will and Grace), <걸스>(Girls) 등을 예로 든다.

1인 가구
▲혼자 사는 알파걸들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TV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이상 키슬레브의 설명은 향후 한국교회가 어떤 전도 및 목회 방침을 설정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미국의 혼자 사는 청년들이 위에 예시된 미디어 콘텐츠에 크게 공감했던 것 같이, 현재 한국의 20-30대 청년층은 <고독한 미식가>나 <리틀 포레스트>와 같이 '비혼 선진국'인 일본의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미디어 콘텐츠에 십분 공감하는 중이다.

기독교 신앙은 애초부터 공동체적인 삶을 대전제로 삼는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청년 세대는 특정 공동체에 깊이 가담하는 것을 꺼리다 못해 죄악시하기까지 한다.

자동화와 기술혁신으로 인해 취업율도 떨어지고,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무직자가 늘어나고, 취업한 직장조차 오래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직장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조차도 이들에게 공동체의 중요성을 수긍하게 만들지 못한다.

이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동체라 한다면, 기껏해야 얕은 수준의 비대면 관계로 이루어진 가변적 온라인-모바일 네트워크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기존에 교회들이 구축해 놓은 전도와 성경교육 네트워크는 이제 잘 작동하지 않거나, 혹 작동하더라도 주로 중장년층 이상에서 주로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와 지혜를 힘입어 구축해온 전도와 선교 네트워크를, 무조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도와 구령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공동체 근처로 청년들이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현실에서는, 이를 극복할 지혜를 추가적으로 구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동아시아인, 한국인 특유의 유교적 집단주의 문화 배경에 상당부분 의존해서 전도 및 교육 사역을 펼쳐왔고, 또 상당한 결실을 얻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20-30대가 사회의 주도권을 잡게 될 10-20년 후에는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가정, 친족, 민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주의 문화는 가정 해체에 의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힘을 잃을 것이다.

대신 인간관계에서 유발되는 어떠한 긴장이나 고민, 스트레스도 감내하지 않으려 하는, 고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세태가 지배적인 위력을 발휘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함께 떡을 떼는’ 사람들의 신앙이지, 고독하게 미식을 즐기는 자들의 신앙이 아니다.

이 커다란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지 한국교회 전체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21세기 중후반 한국교회는 현재 교회 사역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40-50대 신자들의 노쇠로 인해 복음화에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1인 가구
▲‘함께 떡을 떼는’ 기독교적 공동체성과 <고독한 미식가>의 생활방식은 공존하기 어렵다. 어떻게 공동체적인 신앙의 삶 안으로 젊은 세대를 포용할 것인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