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은퇴한 모 신학대학의 선교학 교수는 여러 번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한 번도 이스라엘 땅을 밟지 않았다. 이스라엘 땅이 '성지'(holy land)라고 불리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고 아직도 대다수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그 땅이 어떻게 '거룩한 땅'이라고 불릴 수 있으며, 그 땅을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여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선교학자로서 갖게 되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며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입장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어떤 전공 분야이든, 학자라면 표면적인 인상 내지 정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선교와 관련해서라면 굳이 선교학자가 아닐지라도 신자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복음 전도의 대-위임명령(Great Commission) 앞에서, 정작 복음이 태어난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멀리하고 있는지 이유를 캐물어 보는 진지함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유대인은 약 1600만 명,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은 610만 명 정도다. 이 중 전 세계적으로 '예수를 믿는 유대인', 소위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의 숫자는 약 31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스라엘 내에는 1만 5천 내지 2만 정도의 메시아닉 쥬와 약 250개 교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예수를 믿는 유대인 신자의 비율은 1.9%, 이스라엘 내에서는 0.3% 정도다.

복음이 태어난 곳이 이스라엘이며 사도와 2세기 초까지 초대교회 신자들이 유대인이었으나, 이상에서 보듯이 유대인 복음화율은 지극히 저조하다. 선교학적으로 2% 미만의 복음화율을 가진 종족을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으로 부르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유대인은 미전도종족 중의 미전도종족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유대인 복음화율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요, 심령이 강퍅한 백성이기 때문인가?

유대인들의 영적 우둔

유대인 복음화율이 저조한 일차적인 이유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우둔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전 민족적으로 메시아 예수를 알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전 1세기 전후로 유대 대중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이사야서 53장에서 예언된 '죄에서 구원하실' 종교적 메시아가 아니라, 정치적(왕적) 메시아였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로마의 압제를 물리치고 찬란한 다윗 제국을 재건해 줄 정치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구(외세에게서의 해방)에 메시아를 맞추고 있었기에,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읽어내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노중에 '누가 곧 유대의 왕으로 등극하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을 것인가'란 문제로 다투었다(막 10:35-41, 마 20:20-24)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시점에서조차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 1:6)라고 물을 정도로,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통한 정치적 해방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그들의 눈을 가렸던 모든 수건이 벗겨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고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가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에 눈이 멀었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던 일반 대중의 영적 소경됨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정연호 박사

히브리대학 성서학 박사
홀리랜드대학(University of the Holy Land)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아시안 학생처장 및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