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샬롬나비 회장/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이 정권 들어와 세 분의 총리 지명자가 낙마하였다. 앞선 두 분은 자신이 생각한 윤리적 흠(欠) 때문에 스스로 물러났다. 이번 지명자는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을 만한 흠이 크게 없는 분이,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친일파·반민족” 누명을 쓰고 여야 당권파들의 주도권 싸움과 최고통치권자 지지율 유지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조리를 구조적으로 혁파하고 흩어지고 분열된 사회의 분위기를 쇄신할 통합의 지도자로 임명된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검증도 받지 못하고 여론재판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일부 편파 언론의 왜곡 보도와 이에 호응하는 부동하는 여론, 이를 자파의 정치적 계산으로 이용한 여야당 권력자들의 야합, 최고통치자의 지지도 유지의 희생 제물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아직도 선진사회에 미치지 못하는, 후진국 수준의 정치드라마를 연출한 것 같다. 

1) 공익(公益)보다는 자파의 이익만으로 재는 언론 당파주의

지난 11일 밤 KBS는 과거 온누리교회 강연 발언 중 일부만을 발췌해서 보도해 총리 후보자에게 ‘친일·반민족’이란 오명을 덧씌웠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인데, 자기 세력의 이익을 위하여 “조선 민족이 더럽고 게으르다”, “일제 식민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강연의 발언 몇 구절을 따내서 그것만 보도하여, 그를 하루아침에 식민사관을 가진 자, “친일(親日) 반(反)민족”으로 몰아붙였다. 

퀘이교 교도로 알려진 함석헌 옹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한국 민족의 식민지화와 분단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의 『옥중서신』이란 책에서 신앙을 고백하며 고난의 의미를 밝힌 바 있었으나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 후보의 신앙 강연이 그렇게 왜곡된 것은 KBS의 의도적 왜곡 편집에 기인했다. 

문 후보가 강연에서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언급한 것은, 이를 극복하고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이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맥락이었다. 언론사엔 압축해 보도할 수 있는 편집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강연자의 의도를 비틀고 왜곡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 정파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마치 적(敵)을 공격하듯 임의로 매도하고 낙인(烙印) 찍고 반론의 보도를 허용하지 않는 풍토를 그대로 두고는 국가 개조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KBS는 국민들에게 아주 심각한 실망을 안겨줬다”, “광우병 촛불 사태 당시 MBC가 저질렀던 왜곡보다 더 심각한 왜곡을 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2) 고위공직자 검증자리가 아닌 정쟁(政爭)의 무대로 변질하고 있는 인사 청문회 제도

지금 국회도 대통령도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국가의 품격을 존중하기보다는 당장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이라는 제도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있다. 법치(法治)가 아니라 인치(人治)이며 이는 대통령의 무능으로 비치는 것이다. 대통령이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 중에서도 많은 분이 이런 신성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후보자에게 사퇴하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는가? 그러니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는 국민 여론을 빌미 삼아 여야의 정략과 힘겨루기 속에 청문회 대상 후보자들에 대한 신상 털기가 횡행하고, 결국 꼬투리를 잡아 여론 재판에 올려놓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어느 경륜과 품격있는 지도자가 해보겠다고 나서겠는가? 12년 전에는 원만한 학자요 목사 출신의 지도자 장상 총리 후보자가 당시 야당 정치인들의 몰아붙이기 공세 때문에 낙마한 것과 궤도를 같이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인사청문회 운영이 계속되면 누가 집권하든 인재풀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3) 이에 쉽게 뇌동하는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

새누리당 지도부가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지명자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은 아주 성급하고 잘못된 행동이었다. 중대한 국가 결정을 오도된 여론에 입각해서 생각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소인배들의 집단인 당리당략가들로 비친다. 정치권이 문 후보자를 ‘친일과 반민족’이라고 보도한 언론과 이에 오도(誤導)된 여론에 영합하여, 후보자를 사퇴하는 쪽으로 밀어내었다. 그런데 문 후보의 조부(祖父)가 1921년 평북 삭주에서 항일투쟁 중에 순국(殉國)해 건국훈장 애국장이 2010년 추서된 애국자로 밝혀졌다. 여야 정치인들은 진실보다는 자기 정파(政派)의 유불리에 따라 행동하는 파당인들이지 국익(國益)을 추구하는 지도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인상을 양식 있는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4) 희생양을 연출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이번 사태를 보면, 총리를 권력 유지의 불쏘시개감처럼 여기는 통치 스타일은 박 대통령의 부친을 빼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진정한 통치자는 자기가 지명한 자에 대하여 지지율 유지의 도구가 아닌, 품격과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다. 인사권 행사란 가계부가 아니라 국가의 중대사를 집행하는 것인데, 아직도 개인 수첩에 집착해서 일회용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지하는 국민들을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독재자였던 부친의 권위주의 통치가 남긴 부정적 영향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서, 나라를 보다 포용적이고 신뢰적이며 인격 존중의 사회로 이끌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자기 숭배를 요구하는 권위주의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통합의 지도자는 진실과 법치에 대면하는 경우에는 설사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지지율에 연연하여 대중영합주의에 굴복하면, 그때는 모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국 대처나 독일의 메르켈 같은 리더십은 나오지 못한다. 지금 시중에선 정부가 민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찾아 시스템과 사람을 동시에 재정비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들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연한 지도자 리더십은 청문회까지 가서 국민들이 결정하도록 하고, 혹시 국회에서 부결된다고 하여도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유연한 탈권위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대통령이 지켜야 할 것은 국정의 문제를 편법으로 다루지 않고 정공법으로 간다는 것, 국회의 절차를 지킨다는 것이다.

5) 통합의 지도자가 별도로 있기보다는 통합의 국민이 통합의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 

도덕적 하자도 적고, 관피아 개혁을 밀어붙일 추진력도 갖추고, 국민 통합에도 적임인, 만능의 지도자 감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최고 지도자부터 자기 사람, 사적인 연(緣)에 얽매이지 않고 널리 사람을 구한다면, 국민이 고개를 가로젓지는 않을 만한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사 대상자의 폭을 넓히라는 주문도 보수·진보를 떠나 나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사고방식과 태도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최고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사람, 전관예우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 관피아의 고리와 관계 없는 사람, 도덕적 하자가 적은 사람,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찾다가는 장기 국정의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물론 정부와 국정 최고책임자는 지명하기 전에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윤리와 품성과 역량과 경륜에 대한 사전 검증을 해야 한다. 아무나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단 엄정한 사전 조사를 통하여 지명된 인물에 대하여, 결정적 하자가 없는 경우에 그 인물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포용적이고 관용적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며, 국민의 뜻에 호응하여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며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갖춘 인물이면 믿어주고 받아주어야 한다. 이번 문 후보 파동에서도 충분한 능력과 인격과 경륜을 가진 총리감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들린다. 덜 성숙한 국민이 별난 지도자만을 찾는 것이다. 지도자란 봉사자다. 너무 신성한 존재로 생각할 필요 없다. 너무 별난 존재로 생각할 때 그런 지도자는 어리석은 국민들 앞에서 가면을 쓰게 되고 인치(人治)에 의존함으로써 법치(法治)는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맺음말 

통합적 풍성과 지도력을 갖춘 인물은 국민들이 사랑하고 용기를 주고 사랑의 충고를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통합적 인물이 별도로 있지 않다. 국민들이 이러한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양식있는 국민들의 의식이 중요하다. 하늘이 내려준 무흠한 지도자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비록 결함이 있을지라도 한번 지도자로 지명된 이상, 그의 흠결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이 아니라면 가능한 그것을 덮어주고 믿어주고 그를 지지해주는 관용적 아량이 국민들에게 필요하다. 샬롬나비 시민운동이 그를 지지했다면 이런 이유에서였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누가 정권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더라고 일단 지명되거나 뽑은 다음에는 치명적 과오 이외는 사소한 실수는 덮어주고 관용해주고 밀어주고 지지해주는, 국민의 성숙한 태도가 요구된다. 별세한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이승만과 박정희를 각각 건국과 산업화 지도자의 전형으로, 김대중과 노무현을 각각 민주화와 탈권위화 지도자의 전형으로 받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분들이 그런 자격을 가졌다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자는 처음부터 신화적 존재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은 덮어주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국가품격 만들기의 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통합의 지도자는 우리 국민들이 아끼고 믿어주고 애정있는 쓴소리를 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지하고 용기를 주는데서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