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자의 칼럼이 돋보여 소개한다. 정부가 요즘 개성공단 재개를 위하여 노력한 결과를 가지고 정부의 책략이 먹혀 들었니 어쩌니 하면서 대단한 반응을 보인다. 더 나아가 금강산 관광 재개와 남북 이산가족 상봉까지 성공시킨다면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냉정하게 살펴 보면 지난 정부가 한방에 엎어버린 것을, 이제 겨우 회복하여 원상복구시키는 것 뿐이다. 그것이 정부의 목표가 된다면 대단히 실망할 수밖에 없다는 논지이다.

원상회복하는 것을 가지고 대단히 칭찬을 하고 우쭐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겨우 원점복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시적인 청소년 교류, 대학의 교류, 편지·전화교류 등등 실제적인 일에 더욱 발전적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것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전략이고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 있는 글을 보면서 한국교회와 거대한 교단 선교단체는 얼마나 전략적인가를 잠시 살펴 보게 된다. 전략은 고사하고 몇 년을 도덕성이나 윤리회복에 발이 묶여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시궁창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와 선교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 주는 지표이다.

사실 타락은 몇몇 사람에 의하여 전광석화처럼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단체가 전체로 물들어 버린다. 악에 쉽게 물들고 전염성을 일으키는 것은 태고 이래 인간의 역사이지만, 성직자라는 신분으로 그러한 악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 배경으로 오늘의 한국 선교는 무언가 업적을 남기는 데 주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일은 몇 가지에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가시적으로 큰 성과라도 남길 만한 일을 하면 거기에 축하와 격려가 쏟아진다. 지극히 근시안적인 일과 손에 잡히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 한국 선교가 가시적인 사역이 아니고 창조적이 되려면 기본적인 도덕이나 윤리와 교단 정치의 질서를 회복하는 단계를 속히 넘어가야 한다. 언제까지 여기에 붙잡혀 있을 것인가? 책임을 질 줄 아는, 일반인들이 원하는 상식적인 양심이 살아나고, 더 나아가 신앙 양심이 회복되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세상이 알고 교회가 다 아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을 요직에 불러들이는 교단 정치인,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도 버젓이 장난치면서 교회와 단체와 세상을 희롱하고 있는 수준 이하의 양심, 오래 가지도 못할 것을 가지고 말이다. 이렇게 소용돌이 치는 과정에 이단은 우후죽순처럼 뻗어나가고 있다. 마귀의 세력은 활개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에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2. 미래 선교는 전문인 선교사들을 양성하여 세계로 보내야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문제가 있고 각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약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여 거기에 합당한 지도자와 전문인을 훈련하여야 한다.

러시아의 경우, 사회적인 약점은 높은 이혼율이나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알코올 혹은 약물 중독자가 수없이 발생하여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전문가를 양성하고 보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일에 대부분 무지하고 무감각하고 무관심하다.

오직 교회 개척이나 생각하고 있고, 몇 사람 모이는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과의 관계에서 개성공단 회복이나 금강산 관광을 성공시키는 일, 더 나아가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생각을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높은 이혼율은 사회적인 관습이 되어가고 있고, 하나의 문화로 습관되고 있는 현상을 보게 된다. 이를 고치기 위한 가정 사역 전문가를 파송하고 보내는 일은 매우 시급한 일이 되었다. 이것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이고 사역자가 헌신할 일이다.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세상의 풍조에 휘말려, 가정을 살리고 현대병을 치료하는 일은 시급하다. 전쟁으로 인한 갈등이 있는 곳에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나가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거기에 합당한 전문인을 훈련하고 파송하는 것은 한국 선교의 새로운 전략이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3. 러시아 개신교회는 한국교회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반적인 영적 수준이나 말씀에 대한 깊이는 대체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에 가장 필요한, 말씀으로 교회들이 든든히 서 가도록 돕는 것은 보냄을 받은 사역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말씀에 전문가가 필요하다. 혹은 사역자가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여 말씀의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현지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일이다.

돈이 많이 든다고 사역과 후원을 중단하는 일이 오늘 한국교회에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얼마나 단순한 사고방식에 젖어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투자 없이, 대가를 지불함이 없이, 무엇을 이루려 하는 심리는 기독교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미개한 나라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희생과 섬김으로 오늘 한국교회는 넘치는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엉뚱한 곳에 흘러들어가는 재정을 막고 청지기 의식만 제대로 가지고 있다 하여도, 훨씬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인들을 양성하여야 한다. 세계 곳곳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거기에 맞는 맞춤형 인재들을 양성하여 보내야 한다. 이제 어쩌면 많은 곳에 목회자 선교사는 그만 보내도 될 것이다. 적당하게 헌신된,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파송하여서는 안 된다. 지금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