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 돌아왔다. 올해 나온 도서들을 중심으로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성도들과 함께 읽을 만한 도서들을 자유·여행·은혜·모험 등 네 가지 키워드로 소개한다. 그 첫번째는 갇힌 곳에서 생각해 보는 자유와 소망의 의미,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연서(복있는사람)>와 랭던 길키의 <산둥 수용소(새물결플러스)>이다.

사랑을 갈구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인간 본회퍼’
감옥에서 약혼녀와 왕래한 2년간의 서신 모음집

▲<옥중연서>.

옥중연서
본회퍼 & 마리아 | 정현숙 역 | 복있는사람 | 402쪽 | 19,000원

제2차 세계대전이 막판을 향해 치닫던 1943년, 나치 정권에 의해 수감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약혼 상태였다. <옥중연서>는 본회퍼가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Maria von Wedemeyer)와 2년간 주고받던 실제 편지 모음집이다.

당시 ‘천재 신학자’로 불리면서도 잘못된 정치권력과 투쟁을 불사하던, 단호하고 추상 같았던 본회퍼의 모습만을 간직한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은 그도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본회퍼와 마리아는 약혼 관계였지만, 본회퍼가 ‘감옥’에 갇히면서 몇 차례 만남을 갖지도 못한 채 생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 더욱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고, 그래서 이들 사이에 오고간 서신에는 시작하는 연인들의 머뭇거림과 설렘이 가득하다.

이들에게 18년의 나이 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본회퍼는 마리아와의 만남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있다고 확신”했으며, “당신의 존재가 내가 처한 현재 상황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날마다 이 행복이 주어졌다는 사실로 마음이 벅차오르”지만,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험난한 학교로 이끄셨는지 생각하며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고 고백한다.

▲본회퍼(왼쪽)와 마리아.

갇혀 있었지만, 용기를 북돋우는 쪽은 본회퍼였다. 편지 속에서의 그는, 날이 갈수록 절망적인 소식들이 엄습해 오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동료 수감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가족과 약혼녀에게도 ‘석방 이후’, ‘전쟁 이후’를 노래한다. 감옥 안에서, “지금껏 누려온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대해 한없이 감사드려야 함을 잠시도 잊지 않으려” 한다는 그의 말은 사도 바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또 “가장 험난한 시간을 살아갈 때도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욱 강하게 하나로 묶어주실 것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검열을 피해 몰래 전달된 편지에는 시를 써 보내기도 하고, 좀더 가까운 곳에 와 주기를 부탁하기도 한다.

약혼녀 마리아는 그에 못지 않게 강인한 정신력을 편지 곳곳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풋풋한 첫사랑과 함께 결혼 생활의 낭만을 꿈꾸는 소녀의 모습도 내보인다. 둘은 릴케의 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하고, 악기를 배우는 것에 대해 티격태격하기도 하며, 결혼식 주례를 누구로 모실지나 신혼집 살림을 어떻게 할지 등 평범한 연인으로서의 모습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본회퍼는 편지에서 모든 일에 태연자약하는 ‘스토아식 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을 알기에 실제로 고통을 견디며 진실로 기뻐하는 것이라는 그의 사상을 여러 차례 펼쳐보였고, 이는 감옥에서 삶으로 빛을 발했다. 각종 교통과 통신기기 발달로 죽음이나 군대 정도가 아니고는 ‘부재(不在)’와 ‘기약 없는 기다림’을 느끼기 힘든 시대, 이 ‘커플’은 우리에게 삶을 좀더 사랑하고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수용소에 갇혀 살며 고민하는 ‘인간의 조건’
‘전쟁 속 고요’ 한 포로의 인간 실존 보고서

▲<산둥 수용소>.

산둥 수용소
랭던 길키 | 이선숙 역 | 새물결플러스 | 450쪽 | 18,000원

‘미친 버스 운전기사’를 끌어내려다 붙잡혀 안타까운 연애편지를 쓰고 있던 본회퍼와 같은 시대, 아시아에서도 같은 이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산둥의 감옥은 ‘수용소’라는 번지수 아래, 2년여간 2천여명의 서양인들이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이 2천여명 중 한 사람이었던 청년 랭던 길키는 20여년 후 신학자가 돼 당시 기억을 되살려 <산둥 수용소(새물결플러스)>를 썼다. 이곳은 마치 군대처럼 나가면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군대처럼 확고한 계급사회가 아니었기에 질서와 공중도덕이 완전히 작동하지 못했다. 길키는 이곳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양심과 교양’을 내려놓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우리나라 방송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 사랑받아왔다. 사람들은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로도 성이 차지 않아, 정글과 같은 오지나 아는 이 하나 없는 외국으로 떠나거나 때묻지 않은 아이들을 내세우고, 심지어는 ‘군대 체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길키가 소개하는 <산둥 수용소>가 완벽한 해답일 것이다. 그래서 책에는 ‘정글의 법칙’, ‘더 지니어스’, ‘무한도전’, ‘1박2일’, ‘인간의 조건’이 모두 있다. 심지어는 ‘우리 결혼했어요’도 잠깐 등장한다.

수용소 안에서 사람들은 마치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명성도, 도덕도, 관습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옷다운 옷, 식사다운 식사, 잠자리다운 잠자리’를 쟁취하려는 욕망만이 꿈틀댔고, 이를 위해 명성과 도덕과 관습을 이용하려 했다. 물건을 훔치다 걸려도, 형벌이 고작 게시판에 이름이 적히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수용소 바깥에선 명성과 도덕, 관습을 위해 의식주를 ‘인내’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과 1.8미터 높이의 담장을 쳐 놓으니 정반대가 된 것이다. 치사와 비겁, 억지와 교만이 난무하고, 이는 교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 앞에서는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이런 욕구만큼이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선해질 수 없지만 위선을 행해서라도 선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206쪽).”

저자는 이곳에서 정치를 배웠고, 참된 신앙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참된 도덕성은 영적인 데서 나온다는 것을 체득했다. “인간 자아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자기 자신이 위기에 처하면 인간 안에서는 아주 새로운 힘이 등장, 온갖 무기를 동원해 이 위협과 싸우려 한다.” ‘산둥 수용소’를 경험하고 난 그의 결론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삶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영원한 목적 안에서만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 삶의 의미가 오직 자신의 성취에만 집중된다면, 삶의 의미는 역사의 굴곡을 따라 위태로워지고, 우리 삶은 늘 의미 없이 타성에 젖어 오락가락할 것이다. 또 인간의 궁극적 헌신이 자신에게 집중된다면, 우리 삶은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안에만, 불의와 잔인성을 일으키지 않는 궁극적인 헌신이 존재한다(4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