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 “WCC 비판,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이승구 교수 “WCC 문서들 봐도 ‘성경 상대화’ 나타나”

▲20일 개혁신학 백석학술대회에 참석한 한 신학생이 강연 도중 고민에 빠져 있다. WCC 찬반 양 진영은 의견을 좁히지 못한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 김진영 기자
WCC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찬반 양 진영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은 20일 오후 서울 방배동 백석대학교 대강당에서 제5회 개혁신학 백석학술대회를 열었다. ‘WCC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지난 13일 열렸던 것에 이은 자리다. 한 주 전, WCC를 신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데서 그쳤다면 이날엔 본격적인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가 ‘WCC의 문제점에 대한 한 고찰’을 제목으로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낸 반면 서울장신대학교 정병준 교수는 ‘WCC 비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제목으로 WCC를 비판하는 한국교회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지적했다.

먼저 정 교수는 WCC를 향한 전형적 비판 내용인 ‘단일교회 추구’ ‘용공’ ‘사회구원의 주장’ ‘다원주의’ 등에 대해 WCC 편에 서서 조목조목 대응했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WCC 헌장은 그 회원의 자격을 특정 교파의 신조에 두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도신조와 니케아신조에 근거해 성경과 삼위일체 신앙을 교회 연합의 기초로 한다. 그래서 단일교회 운동이 될 수 없다. 또 WCC는 6·25 전쟁 발발 직후 중앙위원회를 열고 북한군의 남침에 대처해 유엔이 한국에서 경찰 활동을 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따라서 WCC가 용공이라는 것 역시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흑색선전일 뿐이다.

WCC가 정의와 평화, 생태계 보전 같은 문제를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구원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반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WCC는 ‘웁살라 총회 보고서’(1968)를 통해 타종교인과의 대화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명시했고, 또 다른 문서에선 기독교를 타종교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한국교회가 WCC로 인해 분열됐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WCC가 다른 나라에서도 분열을 일으켰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신학적인 것만이 아니다. 교권 투쟁과 지방색이 깊이 개입됐다. 교회 분열의 책임을 WCC로 돌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 교수는 “WCC에 대한 한국교회 일각의 비난은 학문적 연구나 실제적 사실에 근거하기 보다는 교회 분열의 경험과 반 WCC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며 “한국에서 WCC를 비판하는 주장들을 읽어보면 많은 경우에 WCC의 공식문서나 학문적인 주장들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전래된 이야기가 확인 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승구 교수는 “WCC가 최근에 낸 문서들에 어떤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그가 문제삼은 문서들은 ‘A Treasure in Earthen Vessels…’ ‘Scripture, Tradition and Traditions’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Church’ 등이다.

이러한 문서들을 살핀 이 교수는 WCC가 성경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종교개혁의 주장들을 상당부분 희석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WCC는 성경이 특정한 상황 가운데서 나타난 것이므로 성경은 그 특정 상황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적 현존을 증언한다고 본다”며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기독교 신앙과 그 실천을 형성하는 일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엔 동의하지만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 본문 자체를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WCC와 관련된 사람들이 성경 자체를 계시하고, 그것을 하나의 진리로 단언하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며 “그들은 오늘날 성경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역사 비평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면서 WCC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천주교 인사들의 논의를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결국 이와 같은 성경 진리의 상대화는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인 ‘오직 성경’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깨버린 것”이며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판단 근거와 진리의 기준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밝혔다.

이 교수는 “WCC의 전반적 분위기가 한국의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먼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매우 힘들다”며 “2013년 WCC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이 WCC의 신학에 공감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 WCC에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과 교회들은 기독교가 성경과 복음에 충실하지 않은 왜곡된 모습으로 세상에 전달되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공식 문서 등 통해 반대해도 “왜 공식 입장 무시하나?”

이상 두 교수의 논의를 살피면 각자의 주장을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펼치고 있다. 정 교수는 명문화된 WCC 헌장과 기타 WCC 관련 문서들, 그리고 과거 열렸던 WCC 회의 내용을 기초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이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 교수가 WCC 비판이 단순히 보수적 교회의 과거 ‘경험’과 ‘정서’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 점은 한국교회에 WCC 논쟁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극명히 드러낸다.

지난달 25일 미래목회포럼(대표 김인환 목사)이 열었던 WCC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WCC의 입장을 대변했던 박성원 교수(영남신학대학교)는 “(WCC에 대한) 이 모든 비난이 정당한가는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교회나 기관의 입장을 확인할 때는 그 기관의 공식 입장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WCC 비판이 ‘공식 입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다는 정 교수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WCC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박 교수와 함께 발제자로 나섰던 박명수 교수(서울신대)와 문병호 교수(총신대)는 ‘WCC 역대 총회 종합보고서’ ‘WCC 40년사’ ‘The WCC at Canberra : Which Spirit?’ ‘The Unity of the Church’ 등 문서 자료들을 비롯해 과거 WCC 총회 내용과 WCC 공식 홈페이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었다.

이날 백석학술대회에 참석한 한 학생은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저 경험과 정서에만 기대 반대하는 것 같진 않다. 오늘 발표하신 이 교수님 발제문에도 다양한 WCC 관련 자료들이 언급돼 있다”며 “WCC를 옹호하는 입장을 접하면 그것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고 반대로 반대하는 입장을 접해도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의 학술논문 발표회에서 배본철 교수는 “최근 WCC를 옹호하는 발제자들은 한국교회가 WCC를 오해하고 있다면서 주로 원론적 차원을 소개하고, 복음주의 교회들은 주로 WCC가 걸어온 활동의 역사에 주목한다”며 “한국교회에 WCC에 대한 비판론이 거센 이유는 WCC의 본질이나 성격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 박사는 또 WCC를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국교회 복음주의 교단들이 WCC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한다고 지적하기 전에,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WCC에 대한 생각과 정서를 여과없이, 오해없이 전달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논쟁 종결의 길을 제시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