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강변교회 담임)

칼빈이 바젤에 머무는 2년 동안, 즉 1536년에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써서 출판했다. 칼빈이 27세 되던 해였다. 그런데 그 책은 16세기 개신교 신학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 저서가 되었다.


“「기독교 강요」”

제1권의 주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제2권의 주제는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제1권 제1장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을 다루고, 제2장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룬다.

제1권 제3장은 “하나님의 지식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겨져 있음”을 다룬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자연적 본능에 의해서 신 의식(awareness of divinity)이 존재한다. 사람이 무지를 핑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어느 정도의 신 의식을 심어주었다. 아무리 야만인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종교의 씨앗(seed of religion)을 소유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이와 같은 신 의식이 인간의 죄로 인해 못쓰게 되고 소멸되었다고 지적했다. ‘종교의 씨앗’이 모든 사람 속에 심겨졌으나 미신이나 죄악으로 인해 신 의식을 상실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에서 멀어졌다.

제5장에서는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도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지적한다. 우주의 창조 사역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내적 계시’에 의해 믿음으로 조명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연 속에 나타난 보이지 않는 신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한다.

제1권 제6장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오기 위한 안내자와 교사는 오직 성경”임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실제적인 지식을 오직 성경 안에서 주셨다. 창조의 역사를 통해 창조주의 영광을 비춰주고 있지만 인간을 옳은 길로 인도해 주는 데는 부족하다. 롬1:19은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지혜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핑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조력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려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친히 그의 말씀의 빛을 더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며 더 친밀히 사귀게 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밝히 가질 수 있으며 참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참된 신앙이 우리에게 비취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늘의 교훈으로부터 시작해야 되며 성경을 참 사랑하는 제자가 되지 않고는 바른 교리의 조그마한 부분도 맛볼 수 없다. 성경 없이는 모두 오류에 빠진다. 우리가 말씀에서 떠나면 이미 바른 길에서 벗어났으므로 우리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통하여 계시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전달한다. 인간의 마음은 성경의 도움 없이 결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으므로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공허함과 오류 가운데 빠져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1권 제7장은 성경의 권위가 ‘성령의 증거’에 의해 확인됨을 지적한다.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기인되는 것이지 사람이나 교회에 의해서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성경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인정될 때 권위를 가진다. 성경이 진리라는 최고의 증명은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 친히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확신을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이나 추리보다 더 높은 곳인 ‘성령의 신비한 증언’(the secret testimony of the Spirit)에서 찾아야 한다.

‘성령의 조명’(the testimony of the Spirit)은 모든 이성보다 뛰어난다.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증거하시는 것처럼, 말씀이 ‘성령의 조명’에 의해 인쳐질 때 비로소 말씀이 사람의 가슴 속에 받아들여진다.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던 것과 같은 성령이 우리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우리를 설득해야 한다. 성경은 오직 그것이 성령에 의해서 우리 마음에 인쳐질 때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제1권 제9장은 광신주의자들의 오류를 지적한다. 최근에 성경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극도로 교만해서 성경을 읽는 것을 무시하고 성경을 따르는 단순한 신자들을 조소한다. 이 악한들은 선지자들이 함께 묶어 놓은 것들을 쪼개어 나눈다. 바울은 삼층 천에 올라 갔었지만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에 익숙했고 디모데에게 성경에 착념하라고 권고했다.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잠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마귀적인 미치광이 짓(devilish madness)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을 마시지 않았는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은 들어보지 못한 새 계시를 창안하고 새 교리를 만들어내어 우리로 하여금 물려받은 복음의 교리로부터 떠나게 하지 않는다.

제17장 11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절대 신뢰의 신앙이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빛이 성도에게 비칠 때 그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와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누린다. 성도의 위로는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가 만사를 그의 능력으로 붙잡고 그의 권위와 의지로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통치하기 때문에 그의 결정이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음을 아는 데 있다. 성도의 위로는 그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안에 있고 천사들의 보호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한 물이나 불이나 쇠뭉치도 그에게 아무런 해도 미칠 수 없음을 아는 데 있다. 이 세상이 무질서하게 뒤집어지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바로 그곳에 계시며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데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다.

성도 자신의 삶이 마귀나 악도들에게 공격을 당할지라도 성도 자신이 기억할 것은 마귀와 악도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완전히 제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음모를 꾸밀 수도 해칠 수도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알 것은 마귀와 그의 졸개들의 발목이 묶였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확신과 신뢰로부터 위로와 넘치는 기쁨이 솟아난다. 사탄은 하나님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야 말로 비극의 극치(ultimate of all miseries)요 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식이야 말로 최고의 행복(highest blessednes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