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디스아바바 부활절 축제에서 전통춤을 추고 있는 에티오피아 무희들(본문 내용과는 관계가 없음).
그날 오후 명소를 찾으러 나갔다가 처칠 대로(Churchil Avenue)에서 어느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행 중에 사람들에게 불쑥불쑥 길을 묻는 것이 몸에 배인 저는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옷을 단정하고 깨끗하게 차려입은 청년은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습니다. 제가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자기 이름이 솔로몬이고 신분은 대학생이며 이따금 아르바이트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제 취미는 사진 찍기이며 특별히 민속 의상과 무용 등의 전통 문화재 촬영에 관심이 있는데 그런 이벤트가 있는 곳이 있으면 안내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 아는 곳에서 젊은 여자들의 민속춤이 있다며 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택시로 3Km쯤 달려 우리는 일반 주택 비슷한 어떤 집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암하라 족 의상을 입은 앳된 인상의 어여쁜 아가씨가 저를 응접실로 맞아주었습니다. 대접받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사이에 예닐곱 명의 젊은 여자들이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처럼 한둘씩 나타나 좁다란 방에서 에티오피아 민속춤을 선보였습니다. 춤이 끝난 후 시키지도 않은 망고 주스가 무희들에게도 제공되었습니다. 주스를 다 마신 여자들이 모두 자리를 뜬 후 느닷없이 어떤 남자가 제 코앞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청구서를 들이밀었습니다. 청구서에는 765 비르가 적혀 있었습니다. 100 달러에 가까운 돈입니다.

-앗차, 내가 그물에 걸려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저를 여기까지 안내한 대학생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습니다. 다른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 ‘거미들의 집’ 주소를 적어두는 것과 그 집의 겉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 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게다가 사건 증거물로 간수해야 할 청구서마저 던져버리고 그 집에서 허둥지둥 빠져 나올 정도로 저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저는 외국인 여행자의 호주머니를 긁어내기 위해 아디스 아바바에 새로 등장한 ‘싸이렌 스캠’(Siren Scam: 요정의 사기)이라는 신종 사기업의 덧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던 것입니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들은 ‘문화 쇼’나 전통적인 다례를 보여주겠다고 제의합니다. 범행지는 주로 일반 주택의 응접실입니다. 그곳으로 안내 받으면 호스테스가 신속하게 커피나 테즈(tej)라 불리는 ‘꿀술’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무희들이 저와 민속춤을 추거나 악사들이 연주를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연회가 끝나고 7백에서 1천 비르의 청구서를 제시합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주로 외국인 남자 여행자나 부부, 또는 단체 여행자들에게 접근하여 감언이설로 유혹합니다. 거리에서 접근하는 사람은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이거나 자칭 대학생입니다.

저는 호텔 주인에게 그날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등의 도움을 원했지만 그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청구서나 영수증이 없이는 돈을 돌려받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아디스 아바바의 경찰 행정이 무능하고 부패해서 범인들로부터 돈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의 조사나 처리를 호도(糊塗)하는 아디스 아바바의 경찰 업무를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까지만 해도 제 머리 속에는 아디스 아바바의 범죄와의 싸움에 관한 구상과 계획으로 가득 찼습니다.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 순례자의 영혼을 깨우치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순례자여, 그대는 떠돌며 머물며 무엇을 하려느뇨? 그대가 이 암흑의 광야에서 해야 할 사명(므씨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