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이 기독교적 진리인가?(6)

입력 : 2018.05.27 20:30

테리 몰텐슨의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의 5항에 대한 비판적 검토

테리 몰텐슨
▲테리 몰텐슨의 「수백만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
5항. 수십억 년의 연대는 죽음과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다.

[번역문] *이 번역문은 KACR의 홈페이지에서 인용했다. (#)부분은 누락된 것을 보완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good)"라(#는) 말씀을 6번이나 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섯째 날 창조를 끝내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셨다. 사람, 동물, 그리고 새들은 원래 채식성이었다.(창 1:29-30).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식물(plants)은 사람과 동물처럼 '살아있는 생물체(living creatures)'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했고, 전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다. 아담과 하와는 영적으로 즉시 죽었으며, 하나님의 저주 이후에 그들은 육체적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뱀과 하와는 신체적으로 변형되었으며, 땅은 저주를 받았다. (창 3:14-19). 이제 전 피조물들은 크리스천들의 마지막 구속을 기다리며, 썩어짐의 종 노릇을 하며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롬 8:19-25). 마지막 구속의 때에 우리는 타락 이전의 세계로 만유(만물)가 회복되는 것을 볼 것이요(행 3:21, 골 1:20), 더 이상 육식 행동이 없을 것이요(사 11:6-9), 사망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질병이 없을 것이다(계 21:3-5). 왜냐하면 거기에는 저주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계 22:3).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망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며, 파괴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또한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어떠한 도덕적 원인이 없음에도 피조물들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질병과 자연재해와 멸종을 사용하시는(또는 막지 못하는),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시는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드는 것이다. 

[비판적 검토]

몰텐슨은 이 항에서 창세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우주만물 창조, 전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죽음을 가져온 아담과 하와의 범죄,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에 기록된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크리스천들의 마지막 구속에 의해 타락 이전으로 회복될 세계를 전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다는 등에 관해 짧게 서술한 다음에 그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몰텐슨의 주장을 보면,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의 젊은 우주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곧 그가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의 형제들을 세 가지 이유로 공격하고 있다. 몰텐슨이 주장하는 공격의 이유들에 대해 타당성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첫째 이유는 사망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며, 파괴하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나타난다. 몰텐슨의 주장이 사실일까? 이제까지 몰텐슨의 젊은 우주론에 관련한 주장들을 성경의 구절들과 비교하고 검토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가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을 명백하게 뒷받침할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를 시작한 때는 '태초'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기독교적인 해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결론은 창조주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으신 우주의 나이를 인간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창조의 때를 명확하게 말하는 종교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크리스천이라면 우주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또 굳이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아디아포라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견해이다.

식물이 생명체(living creature)가 아니라는 해석과 동물의 채식성을 연결시키는 의도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전에는 사람과 동물의 죽음이 없었고, 채식에 의해 희생되는 식물은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주장은 현대 지질연대표를 부정하고 젊은 우주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겠지만, 기독교에서는 아디아포라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만 신학계는 공인된 성경 해석 방법의 하나에서 나온 젊은 우주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 신학계는 문맥상 또는 공인된 다른 해석 방법에 의하여 젊은 우주론보다 오랜 우주론이 훨씬 설득력 있는 성경적 해석이라는 인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은 젊은 우주론을 아이들의 동화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몰텐슨이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을 부정하고 파괴한다는 주장은 현대 신학계의 대세를 거부하는 소수의 견해일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는 성경을 아이들이 읽는 책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또한 훼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구원의 조건으로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지지해야 한다는 구절이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더욱 없다. 예수님이 가장 강조하신 것은 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아담의 창조와 범죄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수많은 동물들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은 지질학 또는 지구과학에서 주장된다. 과학계의 주장은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증거를 토대로 하고 있다. 몰텐슨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구의 나이 1656년(BC. 2349)에 일어난 노아의 홍수 때에 모든 화석이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조지 프라이스와 헨리 모리스의 홍수 지질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지구과학 또는 지질학에서는 홍수 지질학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아의 홍수는 과거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한 것이고,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사건이다. 신학계에서도 노아의 홍수는 예수 이후의 구원 사역과는 관련성이 전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서 몰텐슨의 주장처럼 젊은 우주론에 동의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에 합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구절이 있는가? 성경에는 그렇다고 암시하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몰텐슨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의 형제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사역을 또한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몰텐슨의 주장은 젊은 우주론을 믿고 안 믿는 것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합당한 것이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거짓말로 협박하고 있는 꼴이다.

오랜 우주론은 그리스 철학에서 발전한 것이다. 현대 과학계는 최신 가속기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하여 월석과 운석 그리고 지구 암석의 생성 연대를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의 나이를 46억년으로 발표했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절대지질연대표에는 각 지층의 암석과 표준화석의 AMS 측정을 바탕으로 연대적 수치를 결정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학적 자료를 부정하려면 그에 관련한 지식을 가지고 충분히 검토한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몰텐슨을 비롯한 젊은 우주론자들이 과연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과학계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젊은 우주론자들이 그런 지식을 가지지 않고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주장하는 6,000년 설과 홍수 지질학이 모두 성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현대적 과학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무지의 종교로 매도하고 있는 이유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충분한 과학적 검토 없이 문자적 성경 해석에만 의존하여 지구의 나이 6,000년 설과 홍수 지질학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몰텐슨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먼저 몰텐슨은 창조일마다 반복되는 이 구절을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 저자의 관점에서 쓴 서술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구절들을 몰텐슨처럼 해석하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혼란이 오게 된다. 더욱이 이와 관련하여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담과 하와가 범죄자가 되고, 전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저주받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는 기사를 읽으면, 잔인한 창조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몰텐슨이 의도하는 뜻은 그 반대이겠지만, 어쨌든 하나님을 향하여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라는 말을 쓰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는 금기사항이다. 왜냐하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고 난 일반인들이 그런 말로 질문하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의 성경 해석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기독교적 신이해의 절대적 명제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모세오경만을 믿는 정통 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몰텐슨이 하나님에게 붙인 무능하다는 수식어는 전능하다는 말의 반대말이다. 무능하다는 말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빨리 범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느냐는 의문과 함께 제기된다. 이와 함께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범죄하는 기사를 읽으면, 전지(全知)하다는 말에 질문이 제기된다. 왜 창조를 계획하실 때에 그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느냐는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한 몰텐슨이 3항에서 말한 것과 같이 노아의 "홍수는 모든 범죄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상동물과 새들, 그리고 지구의 표면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지구의 표면과 생물들을 창조한지 불과 1656년 만에 파괴자가 되셨다. 이와 같은 기사들을 젊은 우주론적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차라리 만들 지나 말 것을'이라는 속어 한 마디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셨는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는 계명까지 주셨다. 이와 같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그야말로 하나님을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드는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 창세기를 무조건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믿는 방법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련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모순의 늪에 빠지게 하는 첩경(捷徑)이다.

허정윤
▲허정윤 박사가 자신이 쓴 책 「과학과 신의 전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성경이 유비적 해석 등의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필요성 때문이다. 현대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진정한 창조주로 믿는다면,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문맥에 따라 적절한 해석 방법과 과학지식을 이용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획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사에 대하여 몰텐슨처럼 자기의 문자적 해석만 옳은 것이고, 다른 해석을 틀렸다고 비판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있다. 구약성경은 약 3,500년 전부터 약 2,500년 전 사이에 고대 히브리인 저자들이 고대 히브리어로 쓴 것이고, 그 내용은 당시 히브리인들의 우주관과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신약성경은 약 2,000년 전에 예수의 언행과 그 제자들의 선교 활동을 그리스어로 기록한 것이다. 성경은 처음에 기록된 이후에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고,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몰텐슨이 젊은 우주론의 핵심 근거로 이용하는 젊은 우주론의 바탕은 24시간 6일 창조 기사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홍수 지질학의 바탕은 노아의 홍수 기사이다. 창세기는 기본적으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론적 관점에서 읽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창세기를 읽으면, 그는 먼저 현대적 개념으로 창조 기사를 해석하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문자적 해석의 오류에 의해 몰텐슨 식의 젊은 우주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비(非)히브리인들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론과 고대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된 칭세기를 현대의 과학적 우주론과 과학적 언어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과녁을 겨냥해 화살을 쏘아놓고는 명중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럼에도 몰텐슨과 같이 젊은 우주론자들이 창세기에 대해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질병과 자연재해와 멸종을 사용하시는'(또는 막지 못하는),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시는 "무능하고 잔인한 창조주"로 만들었다고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와 오만을 폭로하는 일이 될 뿐이며,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는 후안무치한 행동에 다름 아니다. 신앙의 형제들을 그렇게 공격하면, 그런 꼴을 보는 자나 당하는 자가 어떻게 교회에 나갈 마음이 남아 있을 것인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젊은 우주론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18:6-7절과 그에 평행하는 구절들이다.

*필자가 중요하게 인용한 부분은 진하게 표시했다.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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