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다시 묻다
신학을 다시 묻다

후카이 토모아키 | 홍이표 역 | 비아 | 212쪽 | 13,000원

저자는 "아아, 신학마저도!"라는 괴테의 탄식을 통해 '신학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오늘날 신학은 비현실적인 형이상학적 이론만을 다루는 분야로서, 아무런 기대감을 주지 않는 학문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일부 목회자들조차 '신학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자들에 속한다(적어도 신학에 대해서만큼은).  

실용주의

저자는 본서의 맨 마지막에 '실용주의'를 언급한다(서평을 쓰는 것이니 실용주의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실용주의의 뿌리는 종교개혁과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청교도라고 말하는데, 청교도주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실용주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니 저자의 관점에 나는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의 목회 현장에서 신학 무용론적 사상이 꽤 보편적인 것은, 미국의 실용주의 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임은 확실한 것 같다.  

저자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신학의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한 앞으로 신학이 형이상학적 종교의 범주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청교도주의자들은 실용주의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라는 역설이 현존하는데, 청교도주의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실용주의적 관점이라는 사실에 대해 청교도주의자들이 이 글을 읽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비중립

저자는 이 책의 말미 부분에 자신의 글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데, 양쪽 모두를 다 다루다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책의 분량이 많아지고 복잡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꼭 한 가지 짚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하르낙의 "그리스도교의 헬라화"이다.

이것은 신학과 사회학 관점 모두에서 그리스도교를 왜곡시키는 관점이다. 이미 하르낙의 관점은 여러 분야의 연구들에서 사장된지 오래 되었는데, 하르낙의 관점을 그리스도교의 사회문화와의 역동에 적용시킨 것은 반드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외국 신학서적 조직신학
자기 대상화

저자가 신학의 역사를 다루면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신학의 자기 대상화'를 주장하는 것 같다. 즉 신학자들이 자신의 신학 안에 함몰되어 있지 말고, 자신의 신학적 관점들을 스스로 대상화하여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현재 신학을 하는 모두에게 중요한 지적이다.

신학과 사회

본서는 사회의 중요한 변곡점들 안에, 신학의 변곡점들이 함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대상심리학자 설리반에 의해 밝혀진 '자기 체계'가 신학 안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또한 포스트모던의 '탈중심화'는 단순히 프랑스 철학자들에게서만 기인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이 가져온 또 하나의 파생물일 수 있다는 점이 저자의 설명을 통해 제기된다.

본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제들을 품고 있다. 또한 신학과 사회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청교도 이후 분리되어 있는 이 현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정신분열증에 비유될 수 있다)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