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생명의 리듬, 생명의 춤

입력 : 2016.06.23 17:38

살아간다는 기적에 대하여

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촉촉하게 젖은 페어웨이에서는 부드러워진 흙을 헤집고 푸른 잔디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슬이 맺힌 꽃이나 나뭇가지마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한창이다. 분주한 아침 인사다. 산허리를 감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몸을 섞으며 철쭉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우리는 티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덕분에 앞뒤로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확 트인 시야 때문에 기다렸다는 듯 희열의 지류가 흘러들어왔다. 거침없는 하늘과 땅과 들이, 그리고 호수가 오감을 두드리며 일제히 쏟아져 속으로 들어온 탓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리듬의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마치 처음 깨닫는 듯하다. 봄과 여름은 이 모든 존재의 시간적 변화의 현상을 항상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천체의 리듬을 따라, 아침에 일어나고 낮 동안 일하고 밤에 잠들어 휴식한다. 그리고 자연을 마주하고 서서 반응한다. 미명의 침묵은 심장의 박동, 호흡,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매우 선명하게 울려 준다. 그 순간 신체의 일상도 생명의 리듬인 것을 다시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산을 찾고 들로 나가고 물살을 가르는 것 역시 이 생명의 리듬을 욕망함이다. 자연은 생명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그 리듬을 타고 생명의 춤을 추게 한다. 생명성을 춤추는 사람들 앞에서 언덕의 꽃나무는 푸른 잎을 더 뽐내고, 비상하는 새들과 바람은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뱀들이 길을 내며 지나갈 때, 아직 가 보지 못한 다른 길 끝에 아름다운 장미 정원이 있음을 예견하게 만든다.

생명의 리듬, 생명의 춤..., 그렇다. 리듬의 본질과 원형은 우리의 신체와 마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서 얻게 된다. 인간의 삶의 리듬은 자연의 삶의 리듬 속에 있음이다.

그래서 예술은 주기적이고 규칙적인 순환과 율동을 만듦으로써 그 속에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자유롭고 순리적인 삶을 담아내고자 한다. 음악에서는 박자로, 미술에서는 상관적 조화로, 문학에서는 운율로..., 또한 문학은 리듬을 통해 사상적으로 주체적으로 인생의 변화를 나타내고 인물에 색을 입혀, 독자로 하여금 내면적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1965)는 'Four Quarters'에서 'In my beginning is my end'라는 시행을 반복함으로써, 인간의 역사나 자연 만물의 생성 변화에는 끊임없는 리듬이 이루어져 시작에 끝이 포함되고 끝에 시작이 포함되며, 생에는 죽음이 죽음에는 부활이 포함되어 이 우주는 로고스를 중심으로 한 리듬 속에 생명의 춤이 전개된다고 했다.

'춤을 추는 사람은 음악의 리듬을 듣고 그것에 맞춰 춤을 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리듬을 듣고 춤사위를 만들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난 다음 팔과 다리를 움직이라는 명령을 머리가 내린다면, 동작이 음악을 뒤늦게 쫓아감으로써 춤은 음악과 엇갈리게 된다. 춤사위는 미리 그 음악의 리듬을 예상하고 그 예상된 시점에 팔과 다리를 움직여 만드는 것이다. 생명의 춤은 생명성과 완전히 일체가 될 때 출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봄날 하루종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화려하게 피어났던 벚나무들은 쉼 없이 꽃잎을 떨어낸다. 그러나 어김없이 다음 날이면, 길은 벚꽃잎을 융단처럼 깔고 나무는 그 자리에 연록색의 푸른 잎을 레이스처럼 단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예상했던 대로 일어나는 그 순간, 존재의 시간적 변화가 리듬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일상에 묻혀 한동안 잊고 살았던 리듬감을 되찾는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의 춤은 생명성을 예견하고 그와 이미 일체가 된 순간에만 출 수 있다. 생명은 로고스이다. 엘리어트의 말대로 우주에 존재하는 로고스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로고스이고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다. 그 리듬 속에서 우리가 생명의 춤을 춘다.

인간이 생명의 리듬을 타고 생명의 춤을 추는 날들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기적이 아닐까. 그 날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임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은혜가 아닐까.

/송영옥 박사(기독문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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