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로마서 강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정리를 해야 할 것이 있다. 로마서는 교회에 대한 말씀이기에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6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천지창조> 책을 본인이 발간하였다.

창세기 1장의 6일을 365일의 한 날인 ‘6일’로 온 세계가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6일 동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없다. 그러면 “하늘과 땅, 큰 광명, 작은 광명, 별 등은 무엇을 말하느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천지창조>의 책을 읽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문제는 창세기 1장의 6일은 ‘하나님의 잣대’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해를 하면 안 될 것은, 현상의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6일 창조는 현상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아니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양육해서 이끌어 올리는 과정의 첫째 시기, 둘째 시기, 셋째 시기, 넷째 시기, 다섯째 시기, 여섯째 시기를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성경의 잣대’다. 이 잣대가 없으면 전 성경을 열어서 풀어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이 ‘성경의 잣대’가 숨겨져 있었다.

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는 숨겨진 비밀이다. 이제야 비로소 이 비밀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하고 있다. 마치 광야에서 만나가 내려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 수 없어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다 보니, 만나의 이름이 “이것이 무엇이냐”가 되어버린 것과 매우 같다. 이 숨겨진 비밀이 열리지 않고 있다 보니,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현상의 천지만물을 창조한 6일로 온 세계가 볼 수밖에 없었다.

이 현상의 개념에 고착이 되고 나니 숨겨진 비밀이 열리고 있는데도 보이지가 않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히브리어 원전에 의해서 성경을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식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사람은 “히브리어 원전 성경을 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한글 성경을 읽으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이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이 역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히브리어 원전 성경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중요한 내용이 번역이 안 되었다고 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묻고 싶다. 그래도 히브리어 성경이 어떻고 운운할 것인가? 실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나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단어가 ‘힌니()’다.

또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축약한 단어가 ‘힌네()’인데, 창세기 1장 29, 31절에서 시작을 하여 전 성경에 많이 나오고 있으나, ‘보라’ ‘이리로’ ‘그녀들’이라고 몇 곳에서만 번역을 하였을 뿐, 전부 번역을 하지 않고 있다. 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 몇 곳에 번역을 하여 보았으나 문맥도 맞지 않고 번역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성경의 잣대임에도, 이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성경을 해석해 왔다는 말이 된다.

말로는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만을 밝히 드러내어 증거하고 있다고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를 어떻게 밝히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을 분리시키면 안 된다. 창세기 1장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계획을 세우셨기 때문에,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그리스도 예수의 본체가 되시는 것이고 성경의 잣대가 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가, 즉 성경의 잣대가 적용되지 않으면 성경은 절대로 열릴 수 없고 당연히 해석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은 히브리어 성경을 보아야 하고, 신약은 헬라어 성경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의 잣대를 모르고 있다. 헬라어 성경 속에 “소녀야 일어나라”,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두 곳에 아람어 성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헬라어로 않고, 아람어로 말씀하셨다는 것만 기억하시기 바란다.

헬라어 성경에는 헬라 사상이 들어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신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실상은 잃어버리고, 허상만을 붙잡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주소다.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잣대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잣대를 사람의 잣대로 변개시켜 왜곡시킨 것이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이었다.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를 올바르게 맥으로 꿰뚫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잣대와 사람의 잣대를 인식하고 분별할 수 없다.

사람의 잣대를 하나님의 잣대로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이 하나님이신 분이,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기독교는 바르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육신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리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성육신의 개념이 확립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성경의 잣대가 무엇인지 볼 수가 없었고, 성경의 잣대를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없었다.

성육신이 기독교의 핵이다. 이 핵을 규명하지 못한 채 현상적인 것에 사로잡혀, 허상을 붙들고 실상으로 착각을 하고 형식적인 율법행위에 집착해 온 것이 기독교다. 그래서 탄생, 죽음, 부활, 생명, 피, 무덤, 천국, 지옥, 재림, 구원 등등 모두 현상적인 개념으로 해석하고 가르치고 이해하여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결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다원주의가 생겨나게 되어, 이 잘못된 사상이 기독교 안에 팽배해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기독교의 핵인 성육신 개념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마저 생겨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을 과학적으로 풀어 보려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마리아가 처녀냐?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 자들도 있다. 불쌍한 영혼들이다.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얼굴들을 담고 있는 무저갱의 옥에 갇혀 있어서,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성경의 잣대가 열리면 모든 문제들이 다 열려서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인데,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듯이 사람의 잣대인 율법의 비늘이 벗겨져 떨어지지 않고 있어 소경 상태 그대로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