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전부이다 」저자 최명일 목사(행복한교회)
혹자는 “기적은 믿음에 의해 일어나며, 기적은 생명 자신”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어려움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연약함과 실패가 포함된다. 믿음이 자라고 순종이 자라기 위해서는 실패가 필요하다. 영적인 부족을 느끼고 육체적인 부족을 느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은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을 자라게 하려고 주신 기회다. 삶에서 발생하는 부족함과 실패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신호로 보아도 좋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책임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신 사역이 포함된다.

엘리사의 명령

“무리들에게 주어 먹게 하라”(왕하 4:42).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엘리사는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로 선지자 생도 백 명을 먹이고 남게 한 사건에서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먼저 선지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 나아가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증식시켜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쳤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해야 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섬기는 책임을 느껴야 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책임을 보여준다. 항상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그리하면 사람들과 더불어 생명의 떡을 나누고 말씀의 씨를 뿌려야 할 책임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여기서 ‘목자 없는 양 같음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칠 무엇인가를 찾고 계셨다는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엘리사는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엘리사는 이 떡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떡은 다른 사람을 먹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그 사환이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왕하 4:43) 사환은 자신의 불신앙으로 인해 혼동했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냐’에 의한 것보다 자기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혼동했다.

사역에서 자신의 능력과 성공을 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를 제한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함으로써 그분이 주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취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적은 양의 떡이 아니라, 그 떡을 넘어서서 전능자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다. ‘하나님이 누구냐?’보다 ‘우리가 누구냐?’에 의해서 우리의 능력을 재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 삶을 측량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적은 자신의 능력이 있지 않고, 기적은 하나님의 손길에 있다. 믿고 그 명령에 나누어 주면 먹고도 남음이 넘치는 것이다.

선지자의 확신

엘리사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왕하4:43)고 거듭해서 말했다. 엘리사는 떡을 증식시키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엘리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훈련시키려고 하셨다. 엘리사는 선지자들의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기를 원했다. 엘리사는 생도들이 그들의 삶과 사역을 측량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우리의 삶과 사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크기나 자원의 크기에 의해서 측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의해서 측량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니라’는 표현은 말씀의 원리들과 약속들을 이해하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지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며.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되는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다. 선지자는 이것을 믿었다. 그래서 담대하게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할 수 있었다. 기적은 믿음에서 나타난다. 선지자가 이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면 기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선지자는 확신 있는 믿음으로 명령하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적은 그렇게 의심하지 않고 믿고 나아갈 때 역사한다.

순종의 결과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먹고 남았더라”(열하 4:44). 이 말씀에서 사환이 하나님과 그 명령에 순종했다는 점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을 믿고 순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삶과 사역에는 영적인 기근과 혼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환이 순종했더니 다 먹고 남았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언제나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안 된다. 오직 삶의 필요한 것을 충분하게 공급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무엇을 약속하셨는가에 의해 우리의 삶을 측량하고 필요들을 다루어야 한다. 엘리사는 잠시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했을 뿐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하고도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얼마나 체험하고 있는가? 온 땅이 기근으로 인해 크나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갈에 있는 선지자 학교에는 기근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이것은 온 땅이 기근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기근과 상관없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시대는 바알 우상 종교와 더불어 영적 전쟁을 싸웠던 엘리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도 맞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성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말도 맞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나 가정, 직장, 학교 안에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질문해 보자.

욕심일지는 모르지만 온 땅에 기근이 임할지라도 교회에는 기근이 임하지 않게 할 수 없을까? 바알 살리사로부터 첫 열매를 들고 온 사람과 같은 믿음과 순종을 발휘한다면 얼마든지 기근을 면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청종한다면 얼마든지 기근을 면할 수 있다. 영적으로 기근을 당하여 사람들이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말씀을 통해 배움으로써 분노를 녹이고 기근을 물리치는 복된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행복한교회 최명일 담임목사
기적, 그 놀라운 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