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결대, 교회사)는 지난 한 해 필리핀, 아프리카, 영국 등 세계를 돌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스스로 이 순회를 ‘세계순회 성령사역’이라 이름 붙였죠. 그는 이 순회를 통해 “신념과 주장을 좀 더 힘 있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배 교수가 가졌던 신념과 주장은 무엇일까요. “나의 거듭난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배 교수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글에 녹여 본지에 기고했습니다. 질풍노도의 기간을 지나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좇아 세계를 순회했던 모든 과정을 매주 화요일 소개합니다. 배 교수와 함께 성령이 운행하는 세계로 다시 떠나봅시다.

퍼스 사역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두 달 간의 호주 스케줄이 꽉 잡혀있는 가운데 10월 중순에 딱 한주간만 비어있었다. 사실 이 주간이 비워진 채로 있었던 이유는, 호주 저 멀리 퍼스(Perth) 지역에 있는 선교사님으로부터의 사역 요청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특별한 연락이 없었다. 그러자 ‘호주까지 왔으면 당연히 가까운 뉴질랜드를 들려야 하지 않느냐’는 주위의 권면들도 있었고, 아내의 의견 역시, ‘그 주간에 스케줄이 비워진다면, 호주까지 왔으니 뉴질랜드에 며칠 관광하고 오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호주에 와서 보니 시드니에서 퍼스라고 하는 곳은, 비록 한 대륙 안에 있긴 하지만, 엄청나게 먼 곳이었다. 비행기로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젠 비행기는 제발 그만 탔으면, 그리고 짐도 이젠 그만 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뉴질랜드 관광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주님께 이 건을 맡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후 퍼스의 김 선교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곳에 우리가 방문하길 바라는 내용이었지만, 너무 멀기도 하고 또 신학교 강의를 부탁하는 일도 아니라 꼭 우리에게 방문해 달라고 강청하지는 못하시는 눈치였다. 전화를 마치고 난 후 나는 아내와 함께 잠시 주님의 낯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우리 모두 확신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갑시다! 그곳에서 단 한분을 격려할 일이 있어도 갑시다!”

그날 아침 아내의 큐티 본문은 갈라디아서의 말씀이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라디아서 4:19

그곳으로 보내시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계실 것으로 우리는 믿었다. 그것이 설령 단 한 영혼을 위로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일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는 주님의 부탁을 확신하게 되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처럼, 우리도 저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기 위해 기꺼이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습니다.”

마침내 퍼스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날 아침, 주님께서는 나의 기도 시간에 아내를 위한 위로의 영상을 주셨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작은 카누에 예수님과 아내가 마주 앉아 있다. 예수께서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무언가 호소하고 계셨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아내와 눈을 맞추고 싶으신 것이었다. 아내를 향한 주님의 위로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주님이 주신 영상의 내용을 나로부터 전해들은 아내는 감격에 겨워 눈물지었고, 더욱더 주님만을 사랑할 것을 주님께 고백하였다.

퍼스.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퍼스라고 하는 이 지역은 주로 북부의 광산촌들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란다. 우리를 초대한 김 선교사님은 퍼스에서도 북쪽으로 차로 여덟 시간 정도 올라가는 큰 광산촌을 중심으로 호주 원주민들을 위해 십여 년 간 사역해 오신 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하기 얼마 전, 선교사님에 의해 완공되어가던 교회당 건물이 괴한들에 의해 완전히 불타게 된 아픔을 겪기도 하셨다.

도착하는 주일날, 나는 퍼스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서 한국어예배와 영어예배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날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셔서 예배 중에 회개의 영이 임하고 몇몇 분들이 크게 통곡하여 울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많은 성도들의 영혼이 회복되고 성령을 충만히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 내외분에게도 큰 도전과 위로의 시간이었다.

퍼스에 오자마자 받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특별히 두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하나는 어떤 교회 목사 사모님에 대한 것인데, 이상스럽게도 나이 지긋하신 이 목사님 내외분을 뵙게 된 그날부터 그 사모님에 대한 기도가 절로 되었고 또 그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극한 슬픔’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김 선교사님 댁에 도착하던 바로 그날 어떤 한국인 자매를 보았는데, 그 자매를 보는 순간 ‘갈망’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떠올랐고 그 자매의 메말라 타는 듯한 영혼의 상태를 느꼈다. 역시 이 자매를 위해서도 그날 이후 계속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면 그 자매를 만나 기도를 나눌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김 선교사 사모님께서 아내에게 그 지역의 몇몇 한국인 부부들을 위해 가정사역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오셨다. 아내는 강의안도 시드니에 남겨두고 몸만 달랑 왔기에 처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잠시 당황했으나, 그러나 주님께서 강의안 없이도 일하실 것으로 믿고 수락하였다. 그날 밤 아내는 꿈을 꾸었다. 어떤 얼굴을 알 수 없는 크리스천 자매가 자신의 앞길이 너무 궁금하여 점치는 무당을 찾아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아내가 그 자매에게 크리스천이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충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자매는 그런 줄은 알지만 너무나 답답해서 왔다고 힘들고 지친 얼굴로 아내에게 대답하였다.

아내는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담긴 꿈이라 생각하여, 그 꿈의 내용을 주님께 올려드리면서 인도하심을 구했다. 그 다음날 몇 분의 젊은 커플 부부가 김 선교사님 댁에 방문하였다. 그런데 선교사 사모님 말씀이, 정작 초대한 분들은 못 오시고 오히려 다른 분들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그들 가운데 며칠 전 보았던 그 자매의 부부도 있었다. 그리고 제일 나중에 당도한 분들은 내가 기도해 온 그 목사님 내외였다! 그러자 선교사 사모님은 놀라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어찌 된 일인지 제가 초대한 분들은 한 분도 못 오시고, 목사님이 기도해 온 분들만 다 오셨네요!”

나는 그동안 성령께서 인도해주셨던 기도의 제목이 퍼뜩 떠오르면서, 그날 밤 하실 일에 대해 성령께 여쭙게 되었다. 무언가 굉장한 일을 주님께서 하실 것은 분명했다. 그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하고 난 후 거실 소파에 편하게 둘러 앉아 아내의 가정사역 강의를 경청하였다. 아내는 비록 강의록은 안 갖고 와서 빈손이지만, 그러나 기도로서 무장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가 진행되어갈수록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둘러앉은 부부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고 또는 긴 한숨을 내쉬거나 하면서 성령의 만지심이 더해갔다.

강의 후 기도 시간을 내가 이어받았다. 뜨겁고 간절한 기도의 시간이 계속되어가는 가운데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큰 회개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특히 부부끼리 손을 잡고 기도하는 시간에는 서로 미워했던 마음,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 등을 서로 주고받으며 기도해주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그 중 한 젊은 커플에게서는 오랜 동안 남편이 기도하던 내용이 응답이 되었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남편을 주의 종으로 부르신다고 하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근 8년 동안이나 남편이 기도해 오던 내용이 그의 아내에게 응답된 것이다. 그 후 이 자매는 기도 중에 남편의 소명에 대한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기쁨에 찬 얼굴로 간증하였다. 이제 주의 종 부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성령의 역사는 내가 전에 한번 보고 난 후 기도해 오던 그 자매의 부부에게 나타났다. 남편이 사고로 몸이 불편해지고 부부 사이에도 냉담한 관계가 짙어지면서, 그 자매의 영혼에는 끝없는 외로움과 함께 삶의 참된 의미를 찾고자 목말라 하는 갈증이 더해갔다. 그 자매의 영혼의 상태가 그날 나에게 ‘갈망’이라는 단어로 떠오른 것이다.
그날 밤 기도 시간에 이들 부부는 서로를 향한 섭섭함과 미움의 마음을 회개하고 오랜 만에 기쁨의 눈물에 젖은 포옹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아내의 눈에서 눈물을 연실 닦아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날 밤 더욱 놀라운 역사는 나이 드신 목사님 내외분에게 나타났다. 강의 도중에도 두 분이 크게 은혜 받는 모습을 보았으나, 기도회가 끝나고 난 후 내게 고백한 사모님의 말씀은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극한 슬픔’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 사모님이 여러 자녀를 가졌으나, 그중 여럿이 사고나 또는 질병으로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사모님 영혼 속에는 극한 슬픔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자라나게 되었고, 이런 마음의 쓴 뿌리로 인한 원망과 비난의 마음을 마치 독화살처럼 남편이나 성도들을 향해 쏘아대었다. 그러자 교회 성도들 가운데 사모님과의 대화중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남편 목사님도 늘 아내와 막힌 담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밤 성령께서는 사모님 자신에게 이 모든 독한 마음의 근원을 보여주셨고, 그리고 이를 온전히 치유해 주셨다. 이 사모님이 나에게 눈물 어린 얼굴로 말씀하신다.

“저 이젠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천국잔치 같았던 그날 밤의 모임이 끝나고 귀가할 때, 우리는 이 노부부가 서로 정답게 얘기를 나누며 팔짱을 끼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손님들을 다 보내고 난 후, 우리는 선교사님 부부와 함께 앞으로 성령의 권능을 의지하는 사역이 더욱 넘쳐날 것을 서로 축복하며 기도하였다. 결국 성령께서 미리 보여주시고 소원을 주셨던 모든 내용들이 완전히 응답되었을 뿐 아니라, 함께 오셨던 분들에게도 큰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었다.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번 퍼스 방문에 있었다. 비록 우리가 계획하지는 않았었지만, 이처럼 놀라운 일들을 미리 계획하시고 또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퍼스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