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입력 : 2016.08.03 18:08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 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9-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이것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허탈과 절망에 빠져 있던 제자들을 일깨워 주는 질문이었다. 당시 제자들은 구름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주님을 찾으려고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쳐다보다'로 번역된 헬라어 '아테니조'는 '눈을 고정시키다'는 뜻이다. 이는 제자들이 정신을 놓은 채 오르지 하늘만을 응시하고 있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의 승천은 제자들에게 너무도 큰 상실이었다. 그동안 삶의 전 영역을 책임져 주셨던 스승의 떠나가심은 삶의 중심기둥이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제자들의 영적 수준은 아직도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행 1:6)라고 물을 정도로 미숙한 단계에 있었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님나라의 도래가 아니라 세속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제자들은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낮선 외지였다. 그곳은 아직도 유대인의 박해 열기가 식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당부는 분명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좌불안석의 제자들로서는 주님의 승천이 지닌 깊은 영적 의미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라는 질문은 승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라는 권면이다. 지금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가시는 것에 붙잡혀 슬퍼하고만 있지 말고, 이전에 당부하셨던 약속을 기억하라는 지적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두 가지 약속을 남겨주셨다. 하나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땅에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다.

첫 번째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예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시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제자들은 깊은 걱정과 상심에 빠졌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이 땅을 떠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유익한 것이라고 위로하셨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요 16:7). 보혜사로 오시는 성령께서는 그들과 항상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가르쳐주시고(요 14:16, 26),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장래 일을 알려주실 것이다(요 16:13). 또한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며(요 15:26),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분이시다(요 16:14~15). 그런 약속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반복하여 확인해 주신 것이기도 하다.

주님의 승천은 성령 강림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통로였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는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는 것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승천은 이 땅에서 성령 주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축복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심각한 위기 상황 속에서 제자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였다. 그렇게 되면 성령이 임할 것이고,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일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했다(행 1:4-5). 약속된 대로 그들에게 임한 성령은 보잘 것 없었던 사도들과 초대교회를 놀랍게 변화시켜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였던 로마 제국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었다.

둘째는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의 약속이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심으로 영원히 제자들을 떠나가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천사들은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그런 점에서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라는 질문은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새로운 신앙으로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기도 하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신앙은 마냥 앉아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 신앙이다.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종말의 전제 조건은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교회는 주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 일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성령은 천국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는 역동적인 힘이다. 초대교회가 당시대 전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가 있었던 것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의 승천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미래 비전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그것은 상실감과 좌절감에 빠져있던 제자들이 새로운 역동적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대한 계기가 되었다. 예수께서 이 땅을 떠나가심으로 보혜사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것은 새로운 교회시대가 열리는 시작이었다. 주님의 승천은 마지막 헤어짐의 아쉬운 이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재림의 주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을 기다리는 희망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라는 천사의 질문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일깨움이었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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