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자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중 배신한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찾아와 입맞추는 모습.
본문: 요한복음 8장 33-36절

주님과 유대인의 대화가 진지해집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주제를 다룹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인에게 자유는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던 정치적 자유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와서 정치적인 자유를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자유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더 화를 내는 상황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하면서 ‘참으로 자유롭게 되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마음의 해방을 시켜준다
마음의 속박을 풀어준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로마의 압제 상태에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지배를 받는 처지입니다. 그런데도 종노릇을 하는 상태가 아니라고 우겨댑니다. 지배당하는 것은 종노릇은 아니어도 주권이 속박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 현실을 넘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내세웁니다. 종교적 속박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의 정치적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들먹이면서 종교적 자유를 내세우면서 민족적인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다 해도 그들은 무언가에 눌려 있고, 속박을 당하기에 마음은 자유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아직도 마음의 자유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유하지 않는 상태를 일깨우십니다. 마음이 자유로워야 진정으로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편해도 마음이 눌려 있으면, 편하지 않습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자유함은 환경을 뛰어넘어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마음의 자유는 아무 것에도 거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2. 죄에서 해방을 시켜준다
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4절에서 주님은 죄의 종에 대해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죄의 종입니다. 죄의 종이란 국가적 현실에서 생각하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온전히 심령적인 차원입니다.

종이 아니라고 말한 유대인에게 종교적 차원에서 종이라고 입증하십니다. 신앙적 차원에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수많은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우깁니다. 율법에만 얽매여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자부심을 내세웁니다.

이제 그들은 죄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획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위로부터 주시는 심령의 자유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죄의 종으로 살고 있는 상태를 인정해야 합니다. 죄에 속박당해 자유롭지 않은 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죄의 종 상태로 살고 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서 자유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로마의 정치적인 속박보다, 괴로운 죄의 속박을 벗어나야 합니다. 죄의 속박은 영혼을 짓누르면서 뼈를 상하게 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독한 죄에서 해방되어 영혼이 뛸 듯이 날아가는 자유를 체험해야 합니다.

3. 영적 해방을 시켜준다
영적 해방을 경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집과 참된 자유를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으로 받는 참된 자유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영적인 해방을 경험하는 사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죄에 눌려본 사람은 영적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죄에 눌리면 한없이 불안합니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하는 꼴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육체적인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현실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불공평과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 자유와 정의를 외친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육체라는 자체가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이라는 것은 제한된 자유만을 허용합니다. 이 세상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닙니다. 공정과 상식이 있다면, 힘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일 뿐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면서 손뼉을 치면서 반기는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불공평과 불공정의 한계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적 해방을 추구해야 합니다. 영적 해방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적 자유는 세상의 한계 속에 갇히거나 묶이지 않습니다. 영적 자유는 속박이 불가능한 참된 자유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이라는 한계 속에 살면서도 영원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는 자유 국민인데도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이 무엇엔가 묶여 있을 때입니다. 세상의 현실을 뛰어넘는 영적 자유가 필요합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신비로운 영적 자유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마음의 해방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영적인 해방을 체험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참된 자유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