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을 예술 영역에서 구현한 화가, 야곱 루이스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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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야곱 판 루이스달의 <나덴의 풍경>

모든 피조물 보호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
천지만물 섭리 주관자 밝히는 네덜란드 신앙고백
루이스달, 같은 맥락서 인간 삶 하나님 호의 암시
한 치 빈틈 없이 신적 섭리로 통치되는 세계 표현

▲야곱 판 루이스달의 &lt;나덴의 풍경&gt;, 캔버스에 유채, 1647,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미술관.

▲야곱 판 루이스달의 <나덴의 풍경>, 캔버스에 유채, 1647,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미술관.

존 월포드(E. John Walford)와 크리스토퍼 조비(Christopher Joby)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야곱 루이스달(Jacob Ruisdael)의 풍경화에 숨겨진 함의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존 월포드는 “내러티브나 상징적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 세계가 본질적으로 고유한 영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자연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도덕적이라기보다 영적이라고 본 것이다.

크리스토퍼 조비 역시 네덜란드 공화국의 종교적인 맥락에 따라서 그의 풍경화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예술로 묘사할 수 있다는 칼빈의 주장에 따랐으며, 루이스달의 작품이 교회 내에서 사용하는데 있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여기에 소개하는 야곱 루이스달의 <나덴의 풍경>(View of Naarden, 1647)은 신적 창조를 강조하는 그의 종교관을 보여준다. 루이스달은 그림에서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수평적 구도의 풍경화를 제작하였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떠 있고 그런 가운데서도 들판에는 햇살이 쏟아져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화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하늘이 대부분의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종종 하늘을 화면의 3분의 2 가량 할애하여 공간적으로 시원스럽게 보이는 효과를 연출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하늘이 극단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낮은 스카이라인으로 하늘을 크게 돋보이게 하는 방식은 동시대 화가들, 즉 얀 판 호연(Jan van Goyen), 헤라큘레스 세헤르스 (Hercules Pietersz Seghers), 필립 코닝크(Phiph Konnick)와 같은 1640년대 화가들의 영향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 루이스달이 암스테르담을 무대로 활동하였던 필립 코닝크의 그림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코닝크는 광활한 하늘로 창조주 하나님과 신적 섭리를 유난히 강조한 작가여서, 그와 교류가 있지 않았는지 추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사회는 일반적으로 자연을 신적 계시로서 이해하였다. 울파두스 에켈만(Ulphardus Ekelman)의 저술 <자연과 경험의 책으로부터의 교훈>(Lessen uit het Boek der nature en ervarenheit, 1661)에는 하늘에 대한 기술 중 인상적인 부분이 나온다.

“인간과 같이 고귀한 피조물의 눈앞에 그러한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었는지, 하나님과 같은 장인의 능력을 뒷받침하는 놀라운 증거가 어디 있겠는지, … 그 어떤 견해도 이 아름다운 하늘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존재에 대한 우리의 타고난 감각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곱 루이스달의 경우 하늘은 그의 예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에게 하늘 없는 풍경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작품의 상수(常數)로 자리잡았다. 숲, 강, 모래언덕 및 시골길, 파노라마, 폭포, 해변, 바다, 겨울장면, 마을 풍경, 야상곡, 스칸디나비아 및 이탈리아 풍경 등 무엇을 그리든, 하늘은 빠짐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자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즉 자연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 전환을 가져왔다면, 루이스달은 그러한 인식을 자신의 예술 영역에서 구현한 화가이다.

▲야곱 판 루이스달의 &lt;해변가의 밀밭을 끼고 있는 풍경&gt;, 캔버스에 유채, 27x61cm, 1660년대, 로테르담 보이에만스 판 뷔닝언미술관.

▲야곱 판 루이스달의 <해변가의 밀밭을 끼고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27x61cm, 1660년대, 로테르담 보이에만스 판 뷔닝언미술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계에서 기독교적인 정신이 작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점검해 보면, 루이스달이 어떤 이유로 이런 극단적인 구도를 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Institution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기술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 말은 우주 창조 이래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화려한 복장으로 자신을 보여주시기 시작하신 후부터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의 영광의 훈장들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전시해주셨다는 말과 같다.

예언자는 또한 같은 곳에서 능란하게 광대한 하늘을 왕궁에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시 104:3-4).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의 영광이 위에서는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흔히 하늘을 하나님의 궁정이라고 부른다.(시 11:4)” 칼빈에게 하늘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기에 적합한 대상이었다.

또한 하늘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시 33:13)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이 계시하는 이미지는 그 분의 다스림과 통치이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은 불합리하며 어리석은 일이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것들을 저버리시거나 혹은 운명과 우연에 맡기시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그것들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신다”고 기술한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은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그 만드신 피조물을 섭리하시는 천지만물의 주관자임을 밝힌다. 당시 사람들 역시 이런 신념체제 아래 삶을 영위해갔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시인 콘스탄틴 호이겐스(Constanijn Huygens)는 “창조주의 선하심이 모든 모래언덕 위에 나타난다”고 했는데, 루이스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인간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수확을 거두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호의 덕분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나덴의 풍경>에서 대지를 물들이는 따사로운 햇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빛나는 노랑’(the radiant yellow)은 전통적으로 ‘하늘’과 결부되며, 그러므로 그 빛이 대지를 적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보존하며 돌보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나덴의 풍경>은 순전한 지형학적 묘출(pure topographical description)을 넘어 창조주가 ‘만물의 질서’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킨다.

루이스달의 풍경화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보살펴 주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아는 기쁨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사계절의 변화, 탄생과 소멸, 구속의 아름다움 등 한 치 빈틈도 없이 진행되는 신적 섭리로 통치되는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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