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체는 풀과,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하늘 아래 모든 것, 한시적이고 하나님 주권 아래
영원한 진리 체득하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값진 일
평생 자연 묘사 루이스달, ‘풍경화’ 독립된 장르로

루이스달
▲야곱 판 루이스달, 유태인 묘지, 1668-1669, 캔버스에 유채, 84x95cm.

이 풍경화는 <유태인 묘지>(The Jews Cemetery,1668-1669)를 찾은 화가가 유대인 회당을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를 성찰한 것이다.

그림의 분위기는 무덤 때문인지 무겁고 스산하다. 전경의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돌무덤이 위치해 있고 중경에는 허물어져가는 유적이, 그리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와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경의 폐허는 유대인 회당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며, 회당에 부속된 포르투갈계 유태인들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이 장소는 암스테르담 외곽 지역 아우더케르크 인근을 묘사한 것으로, 이 작품 외에도 이곳을 모티브로 한 몇 점의 소묘가 남아 있다.

이 그림을 제작할 무렵 야곱 루이스달(Jacob Ruisdael, 1629?-1682)은 고향 하르렘을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였다. 루이스달은 하르렘 누가 길드에서 수련기간을 거친 다음 암스테르담에 진출, 이곳의 미술가들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의 예술 수준을 향상시키게 된다.

루이스달은 실제로 암스테르담에 와서 화풍의 자극과 변화를 겪었다. 산을 모티브로 한 풍경이라든지 산림 지역 등 플랑드르 매너리즘 전통을 계승한 롱란 사버리(Roelant Savery)의 제자 알라르트 판 에베르딩헨(Allartvan Everdingen)과 힐리스 판 코닝크스루(Gillis van Coninxloo)의 뒤를 이어, 루이스달 역시 바위, 폭포가 있는 풍경 등을 모티브로 기용하였다.

그 외에도 빛을 기용한다든지 강렬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하르렘 스쿨(Haarlem school)의 사실주의에다 플랑드르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접목시키는 화풍을 개척하였다.

이 그림은 모티브의 특성상 판 만더(Karl van Mander)의 ‘인간 삶의 알레고리(Allegory of the Life of Man)’와 맞닿아 있다. 판 만더가 말한 ‘지상적 삶의 덧없음’에 공감한 그는 풍경 속에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농축시켰다.

그러한 측면은 도상을 에워싸고 있는 상징적 요소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이미지가 알레고리의 베일 속에 쌓여 있는데, 부러진 나무와 거친 물살은 삶에 도사리는 위험을, 석관은 죽음을, 폐허는 과거의 영화를, 먹구름은 불안과 두려움을 각각 상징한다.

미술사학자 W. 비간트(W. Wiegand)는 루이스달이 묘사한 유태인 석관에 대해 그것을 프롱크(pronk) 즉 ‘외형적 과시’로 해석하면서 그림 주제를 마태복음 2장에서 언급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나 그 안에는 …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27)라는 경고로 보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긍정적인 기독교적 확신을 주지 않는다고 본 비칸트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바니타스 이미지는 판 만더의 ‘인간 삶의 알레고리’ 텍스트에서 드러나듯, 본질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림에는 석관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흉흉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멀리 무지개가 피어 있으며, 어둠을 뚫고 나온 빛줄기 등은 어떤 경우든 세상에 소망이 있음을 나타낸다.

무덤 주위에 검은 예복을 입은 세 인물은 폐허가 된 건물 앞, 즉 그림의 중앙에 배치해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한 사람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듯 묘비 주위에 앉아 있고, 어린이 곁에는 보호자로 보이는 인물이 서 있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게 모아진다. 서 있는 인물은 손가락으로 성경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 자세는 마치 렘브란트의 <설교자 안슬로>(The Mennonite Minister Cornelis Claesz Anslo in Conversation with his Wife, 1641)에서 보듯 성경을 가리키며 여인을 위로하는 포즈를 취한다.

이 그림은 바는 맥락상 바니타스와 연결돼 있다. 그는 지상의 것들이 곧 사라진다는 것을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 이 그림의 성경적 근거를 찾는다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3-24)”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렘브란트
▲렘브란트,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 참나무 위에 유채, 83.8x65.4cm, 1644(일부).
존 월포드(John Walford)는 유대인들의 무덤에 대해서도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롬 8:21)”에 이르는 메시지에 기대어 사망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승리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원거리에서 보면 이 그림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의 항구적인 불연속성과 인간의 삶을 포함하여, 식물의 탄생과 소멸 역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림 배경을 보면 금세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볼 수 있다. 일찍이 화가의 탁월함에 주목한 괴테(Geothe)는 날씨의 주요한 변화, 위협적인 모습, 시커먼 구름은 ‘이미지의 언어’로는 어색한 것이라면서도 “순수한 감정, 명료한 사고의 예술가가 완벽한 상징주의를 성취했다”고 감탄했다.

그런데 그러한 괴테도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먹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이다. 루이스달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등장시킨 작품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렘브란트의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1644)에서는 유대 회당에 은혜의 빛줄기가 내려지고 있으며, 에칭 <세 십자가>(1653)에서는 하늘로부터의 위로가, 그리고 <내시의 세례>(1640)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빛을 통해 묘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루이스달도 렘브란트와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지상의 것들이 썩어짐과 죽음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하늘의 빛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돌보심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가들은 풍경을 그리면서 풍경 자체에 매료되는 경우가 있지만, 루이스달은 어떤 자연물도 결코 자신의 피조성(creaturehood)을 넘어설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에게 자연 세계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아름다우심을 계시하는 미술관임과 동시에 인생 진리를 바라보는 창문이었다.

그는 자연 세계를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깨달았던 것 같다. 성경의 말씀대로 보이는 것은 속히 지나갈 뿐이므로, 영원한 진리를 체득하는 것이야말로 최고로 값진 일임을 말하려 하지 않았을까?

야곱 판 루이스달은 마을 풍경, 바다 풍경뿐 아니라 폐허나 풍차, 참나무 같은 소소한 것까지 눈에 보이는 자연 세계를 즐겨 화폭에 담았고, 평생을 자연을 묘출하는 작업에 매진한 결과 풍경화를 역사화처럼 독립된 장르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호버마(Meindert Hobbema)와 케셀(Jan van Kessel) 등이 루이스달의 뒤를 이어 풍경화가로 활동하였다.

서성록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