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 1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누가복음 9:27-29)”.

27절의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도 있다”는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일을 세상 종말과 동일시하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연성 있는 것은, 예수님의 추종자들 가운데 일부가 예수님의 사명 혹은 교회의 삶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목도하기까지 살아있으리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과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현 시점에서 이뤄질 사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순절 4주째를 맞이합니다. 해마다 사순절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번쩍이는 빛으로 예수님 얼굴이 변하고 의복은 하얗게 광채를 발합니다.

오늘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는 부활의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시고, 저희에게는 종말에 가서야 뵙게 될 당신의 본모습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보면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에 앞서, 예수님은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바리새인과 서기관, 장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즉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수난을 겪은 후에야 영광스러운 부활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보다, 눈에 보이는 영광만을 바라보며 “초막 셋을 지어 여기서 지내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어진 고통과 아픔보다, 영광의 모습만 받아들이려 합니다. 아픈 십자가는 피하고 싶고, 영광스러운 부활만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 고난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 역시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어왔습니다. 자영업자와 시장 상인들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고, 의료진과 관계 공무원들은 온 힘을 다해 희생과 헌신의 노력으로 코로나19를 잘 대처해 왔습니다.

우리 각자도 자신들만의 십자가를 지고 여기까지 잘 버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견디지 못할 십자가는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잠시 힘이 부치고 고통이 온다 해도, 절대 포기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이 어렵고 힘들겠지만,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우리도 기꺼이 순응하며 함께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영광을 맞을 수 있습니다.

마침 사순절이 시작되던 기간, 대한민국에서는 선거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여야의 숨가쁜 선거 전쟁 속에, 차마 입에 담아내기 어려운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었던, 자칭 최고 엘리트들의 미성숙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은 실로 안타깝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주장하며 도배하다시피 방송에서 홍보하던 선거관리위원회가 오히려 부정을 저지른 만행은 참으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결격 사유가 있으면 군 장교나 부사관, 공무원, 대기업에도 취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전과 4범을 대통령 후보로 천거하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특히 지방선거 후보들의 경력을 보면 대다수가 전과자인데, 어떻게 그들이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가질 않습니다.

옛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습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준엄한 직위에, 어떻게 전과자가 후보로 등록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 아닙니까?

이제 정의와 공의가 실제로 작용해야 합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어릴 적 친구들이 “5년 후 만나자”고 약속하는 모습을 보고, 필자는 너무 감동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의와 공정, 상식과 공평의 첫걸음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 중,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자”고 건의하는 모습은, 권력을 잡아 영광을 누리려는 간계한 말이 아닐까요, 겉으로는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못된 술수가 아니겠습니까?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이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태복음 20:20-21)”.

세배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 어머니의 간절한 요청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마 그 어머니는 여전히 지상왕국에 대한 계산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열두 제자들 가운데 선두를 차지하겠다는 깊은 욕망 속에, 변화산 사건을 목도한 세 사람 중 베드로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요? 그로 인해 다른 제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상관없는, 인간의 본모습이 아닐까요?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친구 중, 55년 지기 죽마고우로 정계 입문을 도왔던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 대학원교수가 윤 당선인에게 “2027년 5월 퇴임 후 청와대를 나온 뒤 다시 만나자”며 “이게 마지막 연락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나오는 달인 2027년 5월 그 다음 달이 어머니의 90세 생신이니, 전직 대통령 신분이 된 뒤 와 달라”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당선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소신껏 임무를 수행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잠시 곁을 떠나겠다는 우정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어떤 분들은 친구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하여 좌든 우든 자리 얻기에 혈안이 되어 결국 친구의 마음을 흐트리고, 눈속임으로 친구는 물론 나라와 백성의 운명까지 위험에 빠트리는 낭패를 만들어 함께 몰락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윤 당선인 친구들에게 존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역시 그 친구에 그 친구들”이라는 말이 오늘날 대통령을 만들었던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선인들의 친구를 모범적인 국민으로 높이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서울 우신중학교에 항의 전화 부탁드립니다’라는 유튜브 내용도 있습니다. 우신중학교 2학년 수업에서, 역사 교사가 “윤석열 같은 범죄자가 대통령이 됐다”며 “투표가 잘못됐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교사가 정치 중립을 깨고 정치 편향 발언을 했으니, 징계를 요청하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메시지입니다. 역사 교사라는 분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나 싶어 울화통이 터집니다. 역사는 결코 편향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수준이나 지식으로 한쪽 편만 드는 것은 역사 교사로서 자격 없는 것 아닐까요, 이런 선생님은 강력히 징계해서, 다시는 강단에서 역사를 왜곡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사순절을 맞이하여, 신앙인들은 각자 교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가난한 이들과 외로운 이들, 고아와 과부, 병마 속 신음하는 자들, 억압과 억눌림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장로들과 율법학자, 그리고 많은 군중들 앞에서 갖은 모욕과 수난을 겪으시며, 끝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나무형틀에서 처형당하기까지, 우리 인간들의 죄를 담당하시며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그 무거운 사순절을 오롯이 주님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귀한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