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기독교인 849명이 학살당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의뢰를 받아 발표한 ‘6·25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를 통해서다.

북한의 학살로 전국에서 희생된 기독교인은 849명으로, 피랍된 177명을 포함하면 희생자는 총 1,026명이었다. 천주교인까지 합치면 1,145명에 달한다.

북한군의 학살은 주로 충남과 전북, 전남 지역에서 이뤄졌다. 충남 논산 병촌교회에서는 9월 27~28일 신자 16명과 가족 등 66명이 북한군과 공산당원들에게 살해됐다. 전북 김제 만경교회에서는 10월 1일 공산군 퇴각 후 우물에서 남녀 교인들의 시신들이 발견됐다. 15명의 신도가 쇠망치로 뒷머리를 맞거나 죽창에 찔려 사망했다.

전북 정읍 두암교회에서는 10월 26일 22명의 교인들이 칼과 총으로 살해당했으며 예배당도 불태워졌다. 두암교회에서의 학살 한달 전 북한군은 전북 정읍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된 정읍교회 장로와 우익 인사들 167명을 불태워 죽였다. 150명은 고부 입석리 두승산 폐광에서 집단 학살 후 매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영광 염산교회에서는 10월 26일~12월 4일 77명이 학살됐으며 전남 영광 야월교회과 법성교회, 전남 영암 구림교회과 매월교회 등에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몸에 돌을 달아 바다에 빠뜨리고, 공동묘지에 생매장하고, 산 채로 불을 지르는 등 온갖 잔인한 수법이 동원됐다.

이 밖에도 경기도와 강원도, 경상남도, 제주도 등 학살 피해는 전국에서 확인됐다. 희생자 별 분류를 보면 집단희생 572명, 개인희생 277명, 납북 177명이었다.

연구팀은 이와 같은 북한군과 공산당원의 기독교인 집단 학살이 퇴각 과정에서의 일시적이거나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숙청이었다고 분석했다. ‘종교 말살 정책’을 기조로 “기독교를 불순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라는 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는 1920년대부터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가르치면서 ‘반공’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연구팀은 “이 때문에 북한과 남한 좌익 세력은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를 친미, 반공 세력으로 규정하고 말살 정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특히 6.25전쟁 당시 김일성은 1950년 7월 전국에 ‘전과 불량자, 악질 종교 등’을 처벌할 것을 명령했는데, 악질 종교에 기독교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보고서에는 “기독교인의 숙청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지시 사항에 따른 것”이라며 “지시에 의하여 인민공화국은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이런 학살은 대부분 제대로 된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사냥’ 형식의 만행이 난무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피해를 입었지만 보복보다는 용서를 택했다는 조사 결과도 내놓았다. 66명이 희생된 병촌교회의 경우 집단 학살에 동조한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북 정읍 두암교회 경우도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어 같이 신앙 생활을 했다. 전남 임자면 진리교회에서 적대 세력에 피살당한 교인의 아들이 군인이 되어 보복할 기회를 얻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동네 이장이 돼 분열된 마을을 하나로 회복하는 데 노력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팀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과거 문헌 자료와 관련자 증언을 수집하고,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연구팀은 심층적인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박명수 교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인들의 피해를 조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죽음이라는 아픈 피해를 당했음에도 그들을 용서하고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인 기독교의 사랑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조사였다”고 말했다.

6.25
▲6.25 당시 부산 초량교회 회개기도회 모습. ⓒC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