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위대하게

정진호 | 세움북스 | 400쪽 | 21,000원

존 스토트는 삶의 후반부에 ‘이중 귀 기울임’에 집중하며 모든 신학과 가르침은 성경에 귀를 기울이고 동시에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IVP에서 팀 체스터의 성찰 질문을 달고 분권으로 재출간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존 스토트의 이 중요한 핵심을 제대로 반영한, 성경적이면서도 실천적인 균형이 잘 잡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중 귀 기울임은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다. 독자의 생각을 듣느라 성경의 목소리를 놓치거나 반대로 성경에만 귀를 기울이다가 독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도 그러한데, ‘인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인문학은 아주 잘 사용하면 독자의 관심사를 사로잡아 성경 앞까지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성경이 강조하는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심어주거나 인문학에서 길을 잃고 성경의 핵심에 이르지 못하게 되기가 쉽다.

인천에서 ‘주님의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를 개척하여 섬기면서 초교파적 목회자들을 위한 ‘브솔 영성 아카데미’를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는 정진호 목사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라는 책을 통해 주기도를 ‘신학과 인문학의 눈으로 탐구’했다(세움북스, 2022).

주기도를 주제로 쓴 ‘신학’ 책과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인문학의 눈으로’라는 부분이 이 책의 차별화된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첫째, ‘인문학’이 독자에게 얼마나 장점으로 와닿을 수 있는지에 있다. 그리고 둘째, 저자가 얼마나 ‘인문학’을 통해 성경의 핵심을 잘 전달했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첫째, 필자는 ‘인문학’을 좋아하지만 신앙서적에서 ‘인문학’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저자가 인용한 여러 시인과 저자의 책들, 영화나 소설, 드라마 내용이(유발 하라리, 도종환, 리처드 도킨스, 밀양 등) 친숙하면서도 주기도의 깊은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주기도와 연관성을 찾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이것은 저자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인 필자의 독특한(?) 취향 문제다. 필자는 존 맥아더, 싱클레어 퍼거슨, 존 파이퍼, 마이클 리브스, 조엘 비키 등 성경 본문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하고 그 의미를 풍성하게 헤아릴 수 있도록 집중하여 설명하는 저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대표적 저자는 팀 켈러와 존 스토트인데 아주 간결하게 필요한 때만 적절하게 사용하는데도 필자는 가끔 길을 잃는다.

HTM 주기도
▲기도 손. ⓒ크투 DB
둘째, 하지만 저자인 정진호 목사는 절대 인문학을 인본주의를 심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문학의 한계를 계속 고발하면서 주기도에 담긴 성경의 가르침이 어떤 인문학보다 월등하고 초월적임을 명백히 보인다. 주기도와 연관된 성경 본문을 여기저기 인용하며 성경이 성경을 입증하도록 돕는다.

또한 저자는 ‘신학’을 풍성히 담으려 애썼다. 마르틴 루터나 존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부터 아더 핑크,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코프, 존 웨슬리 등 다양한 시대의 신학자를 인용하여 주기도에 관한 통찰력 있는 해설을 제공한다.

아마 많은 독자는 저자가 적절히 활용한 ‘인문학’을 통해 유익을 얻을 것이다. 주기도가 단지 외곬수적인 성경 학구파에게만 의미 있는 내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문화와 사상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가르침이란 것을 체험하게 해주고, 성경을 가르치는 이들에게 세상에 귀 기울이는 하나의 방편을 가르쳐 줄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대충 알고 있는 이들에겐, 그들에게 더욱 친숙한 문학을 통해 성경을 만나는 귀한 도구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아덴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다. 그 중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도 있었고 새로운 가르침을 듣고 배우기 좋아하는 종교심 많은 이들도 있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항상 성경에 뿌리박힌 ‘신학’에 기초했고 아덴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특별히 이곳에선 ‘인문학’을 사용했다.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 17:28)”.

그들이 잘 알고 있던 시가 바울이 선포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이란 성경의 가르침으로 나아가는데 이바지한 것이다.

‘인문학’은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독서 목록에 인문학을 추가하는 것이다.

반면 필자가 인문학을 ‘인문학’으로 순수하게 읽고 성경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반대로 인문학의 눈으로 성경을 탐구하는 것을 낯설어하는 이유는 바울이 회당이나 새로 개척된 초대교회에서 인문학을 통해 성경을 가르쳤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가장 성경적인 것을 가장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데 주력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그것이 스토트가 강조한 이중 귀 기울임에 해당하는 내용임이 틀림없지만, 가장 성경적인 것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세상의 문학과 사상이 반드시 요구되는가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필자는 성경의 문화와 역사, 가르침으로 먼저 가서 충분히 배우고 나서야, 지금의 문화와 사상을 볼 수 있는 바른 시각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래서 본문을 연구하는 중에 지금의 문화와 사상이 들어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시각과 취향 차이가 존재하지만, 종합적으로 저자는 주기도를 읽고 배우게 하는 흥미로운 도구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독자에게 제공한다.

이 도구 상자는 ‘인문학’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있지도 딱딱한 성경 해설과 ‘신학’만 가득 차 있지도 않다. 신학과 인문학이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지 않고, 주기도를 설명하기 위해 적재적소에 활용된다.

저자가 활용한 시, 소설, 신학자와 철학자의 글과 기독교 역사 등은 다양한 관심사와 정서를 가진 독자를 끌어들여 저자가 궁극적으로 탐구하기 원하는 주기도로 이끌어 갈 것이다.

지금까지 주기도 관련 책과 가르침이 참 많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은 ‘기도를 가르쳐주소서’라고 주님께 요청한다. 그 절실한 간구를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통해 주님께서 들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저자가 머리말에 말한 바람처럼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좀 다르게 기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면, 그리고 그 다름을 시도해 가는 용기를 낸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5쪽)”이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