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수령 등극
▲북한 관영 매체들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처음으로 ‘수령’이란 호칭을 붙인 것으로 나타났다. ⓒTV조선 캡쳐
김정은의 수령 등극을 어떻게 봐야 하나

2021년에 드디어 북한의 김정은이 ‘수령’으로 등극했다. 지난 1월에 개최된 제8차 당대회에서다. 이때 김정은은 당 총비서로 추대되고, 동시에 수령으로 옹립되었다. 총비서 추대사에는 김정은을 가리켜 ‘인민적 수령’이라고 지칭하며 ‘수령의 지위’에 올랐다고 분명히 공표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지난달 말에서야 필자에 의해서 처음으로 제기되었고 공론화되었다.

필자는 ‘북한정권의 지도자상징정치’라는 주제로 학위논문을 쓸 때부터 언젠가는 김정은이 수령으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필자의 주장은 북한학계에서 어설픈 논리로 취급받았다. 다른 연구와는 달리, 수령에 관한 학술논문은 게재되지 않았고 비판적인 평들을 들어야 했다. 근거로 그분들은 ‘수령론’과 ‘후계자론’을 들었다.

수령론(제)으로 접근하면 수령은 하나의 제도이고 시스템이다. 따라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면 ‘수령의 지위’(뇌수)가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후계자론’에도 수령의 뒤를 잇는 후계자는 ‘미래의 수령’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 논리로 볼 때 필자의 주장은 매우 조잡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북한의 매우 특이한 양상을 포착했다.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도 김정일을 공식적으로 수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김정일 사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 받았음에도 김정일 단독으로 수령으로 칭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들’, ‘선대 수령님들’처럼, 김일성과 함께 통칭될 때 만 불리어질 뿐이다. 북한에서의 수령은 직함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지도자 상징에 가깝다. 수령과 더불어 최고지도자의 대표적 상징은 ‘태양’, ‘어버이’ 등이 있다. ‘태양’과 ‘어버이’ 지도자 상징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모두 공유한다.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어버이’로 불린 시기는 장성택을 처형한 다음 해(2014)부터이다. 바로 정권을 승계한 2012년부터가 아니었다. ‘태양’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정권 초에 김정은이 전혀 ‘어버이’, ‘태양’으로 불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간헐적으로 불리어졌다. 그러다가, 2014년에 본격적으로 당 문건이나, 정치문건에서 ‘어버이’, ‘태양’으로 지칭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양상을 보면서, 이미지와 상징을 연계한 ‘이미지의 상징화’이론을 적용하게 되었다. 즉, 지도자 이미지가 생성되어 구축되고 고착화되어 상징성을 얻게 된다는 이론이다. 2021년에 김정은의 수령 등극도 여기에 해당된다. 정권초기부터 생성된 수령의 이미지가 구축되고 강화되어 결국 상징성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정권초기부터 수령의 지위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논리와 크게 충돌하지 않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으로 2019년에 김정은의 수령 등극 조짐과 2020년에는 수령 등극 초읽기라는 칼럼을 쓴 바 있다.

‘인민적 수령’ 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

북한에서 ‘수령’은 신비적이고 신격화되는 측면이 강했다. 인간계를 초월한 신계의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의 하느님으로 불려진 김일성, 사후에는 북한에서 ‘김일성 영생론’이 내세워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북한은 2013년에는 수령영생법전도 만들었고 2014년에는 김일성-김정일 영생론을 헌법에 명시화했다. 이처럼, 신비적인 요소가 내포된 ‘수령’에 대해 김정은은 2019년에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수령을 신비화된 존재가 아닌 인간적이며 인민들의 동지적 존재로 부각시킨 것이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일이다. 당시, 필자는 ‘수령의 자리 낮춤’으로 분석했다. 만일, 과거처럼, 수령이 신격화된 존재라면 김정은은 이번에도 수령으로 등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정은을 ‘인민적 수령’으로 내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민적 수령’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부여된다. 하나는 과거처럼, 수령이 신격화 신비화 측면이 아니라 인간적 수령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민을 위한 수령이라는 뜻이다. 2019년 3월,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꾼대회>에서 김정은은 수령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면서 이 두 가지 측면을 강조했다. 최근 몇 개월 동안의 노동신문 사설에서도 김정은의 수령 등극을 이런 방식으로 선전하고 있다. 11월 1일자 사설인 ‘국가사업의 모든분야에서 인민성을 더욱 강화하자’ 에서는 ‘인민’과 ‘인민성’ 용어가 무려 69차례나 나온다. ‘인민대중제일주의’ 등 인민이 들어가는 용어들까지 다 포함시키면 100회가 넘어갈 것이다.

수령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제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수령이 ‘최고 존엄’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연스럽게 그 뒤에 ‘수령결사옹위’가 따라 붙었다. 한마디로 북한인민들에게 수령은 절대성이 부여된 존재로 오직 충성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의 ‘인민적 수령’ 역할은 인민들에 대한 멸사복무(위민헌신)에 더 방점이 찍혔다. 여기서 김정은의 수령 등극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인민들을 더 헌신적으로 섬기기 위해 수령의 자리에 오른다는 명목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정은의 수령등극은 유훈통치와의 결별로 인민들에게는 김일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리스크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감쪽같이 ‘인민적 수령’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인민을 가장 잘 섬기기 위해 가장 높은 위치인 수령이 된다는 것인데,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다. 전무후무한 역설정치를 펼치는 김정은 시대가 새롭게 전개되었다.

김정은 주의는 ‘김정은 애민주의’가 될 공산이 크다

정교진
▲정교진 박사(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현재, 북한에 대한 가장 주된 관심사는 며칠 전, 국정원에서 ‘김정은주의’가 대두되었다는 보고와 함께, 과연 북한이 김정은주의를 어떻게 부를지 여부이다. 북한은 김일성주의를 ‘주체사상’으로 김정일주의는 ‘김정일 애국주의’로 부르고 있다. 관련한 노동신문 사설들을 검토해본 결과, 필자는 ‘김정은 애민주의’가 되지 않을까 예상을 해본다.

김정은 혁명사상(김정은주의)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기존의 주장(10.28 제시)과는 달리 5월 14일자 노동신문 정론에서다. 이 정론에서는 김정은의 혁명사상뿐만 아니라 김정은을 수령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 글과 다른 관련 사설들을 보면, 김정은의 ‘인민적 수령’과 ‘김정은주의’의 연계성이 상당히 강하다. 어느 사설에서는 수령의 역할을 영도만이 아닌 (자신의) 사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수령이 된 김정은이 독자적인 혁명사상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설들을 보면, 김정은의 혁명사상, 김정은주의를 애민과 위민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정은 스스로도 “나의 사상을 알려거든 인민을 섬기는 나의 마음을 읽으라”라고 한 만큼, 새롭게 대두되는 김정은주의는 ‘김정은 애민주의’가 될 공산이 크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2021년에 김정은이 수령에 등극했고 독자적인 혁명사상인 김정은주의가 대두되었는가. 그리고 김정은주의를 애민사상에 중점을 두었는가이다. 권력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인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고육직책이 아닌가 싶다. 어느 정도의 내부불만과 동요를 막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수령의 자리를 낮추어 앉은 만큼, 더 이상 수령이라는 지위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민적 수령’이 김정은에게 득이가 될지, 해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글은 WORLDVIEW 1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정교진 박사(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