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땅에서 종교적 희생물로 처형된 천민 선동가
예수님 십자가 사건, 당시 한 줄 뉴스거리조차 되기 어려워
시큰둥한 예수님 기록, 가장 비조작적·사실적·객관적 증거

 무한광대하신 하나님, 볼품없는 사람으로 나 위해 죽으셨다면

안 먹어도 배부르고 모든 걸 다 드리며 살아도 아깝지 않을 것
창조주 하나님 엄청난 사랑 알고 나면, 누구나 사랑하게 될 것

선 오브 갓
ⓒ영화 <선 오브 갓> 스틸컷

지난 번 영상에서 “사람으로 이땅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한 번은 피해 갈 수 없이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예수 사건’이다, 하여튼 이 ‘예수 사건’이라는 미스터리 또는 인류 역사 최대의 딜레마는 어떻게든 풀고 지나가야 한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드리고 끝냈는데요.

오늘은 제가 왜 그렇게 ‘예수 사건’이 그 자체로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사건일 수밖에 없는가, 이것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 그분에게 실족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오늘날과 같은 이 시대, 이런 때에 그분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한 발짝만이라도 더 진지하게 나와서 한 번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이들, 그런 사람들이 실족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족은 실족하지 않을 기회가 많았던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그런 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면, 그 분을 한 사람의 평범한 역사적 존재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괜히 덤벙대면서 이것저것 건드리다 말면, 그 분만큼 더 애매모호한 걸림돌도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일찌감치 누가복음 7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실족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역설적인 뜻이 담겨 있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대 미스터리는 예수님이시라고 그 동안 제가 계속 강조해 왔는데요. 그 분이 이 땅에 한 번 생존한 적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그냥 지나치면 큰일나는 일입니다. 큰일나는 일, 이런 표현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요.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이라 한 사람은 C. S. 루이스의 말대로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거나 진짜 하나님이거나, 이 세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을 진짜 이상한 분이라고 느끼면서부터, 그 분을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진짜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고 자각하면서부터, 더 이상 그의 존재가 적당히 숨어 있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본색을 드러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상식적으로 지나치면 영원히 지나치고 말 수 있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인류 역사에 영원한 발자국을 한 번 남기셨기 때문에, 아무도 이 사실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그 분으로 인한 심판도 누구에게든 한 번은 지나가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적이 없다면 차라리 속 편할 뻔했습니다. 괜히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애매하게 죄다 엮이게 되었다, 이런 생각도 하는데요.

‘예수 사건’을 그 분이 불세출의 종교적 슈퍼스타가 된 그런 상황에서 본다면, 오히려 진짜 전모가 잘 안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만큼 유명하고 예수님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신 분이 없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통도 정보망도 지금과는 완전 딴판인 환경에서 당시 나사렛은 깡촌 취급을 받았는데요, 이 깡촌 출신의 무명의 순회설교자, 떠돌이 마술사, 이런 별명으로 불린 한 목수 청년이 눈에 들어오면 비로소 온갖 잡다한 포장이 벗겨지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 제국의 주된 관심사는, 그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속국들 가운데서 정치적인 민중 봉기가 일어나느냐 안 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 유대 땅은 로마 제국 변두리 속국의 하나였을 뿐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땅에서 단순한 종교적 시비거리의 희생물로 처형된 한 천민 출신 선동가의 죽음,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사건은, 당시로서는 한 줄의 뉴스거리조차 되기 어려웠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1세기 로마 역사가들은 주로 정치적인 주요 사건들만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런 굵직한 사건들을 취급할 때 곁다리로 딸려들 경우 지나가는 말로 잠깐 언급되는 그런 정도였습니다.

안환균
▲안환균 목사.

이런 정황이다 보니까 오히려 그들이 무심하고도 시큰둥하게 기록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그런 짧은 언급, 이런 것보다 더 비조작적이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그런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 증거도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 역사가들의 책이나 이런 것들을 나중에 예로 들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역사가들의 공인된 책들에 ‘크리스투스’라는 사람이 등장하거든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아주 짧은 언급인데, 그런 것이 사실은 상당히 역사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예수님의 실존 증거가 된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그림이 아닙니다. 당시 목수는 돌이나 쇠, 목재로 자잘한 농기구를 만들고, 크고 작은 건축일까지 챙긴 막노동 잡역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성화 속에 나오는 그런 여리고 온유한 이미지의 서양 남성이 아니라, 아주 단단한 근육질의 중동 남자였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숭앙을 받는 어떤 위대한 존재나 사건을 신화로 만들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예수 사건’은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역사적인 사실로 굳어졌고, 그를 죽인 자들이 살아 있을 때 공식적으로 문서화되었습니다. 그것이 신약성경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신약성경 야고보서 5장 6절에서 동시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약 5:6)”.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들을 당시 그 의인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을 ‘너희’라고 지칭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아주 가깝게 언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온 우주를 만든 무한광대하신 하나님이 정말 볼품없는 목수로 이 땅에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군가가 정말 안다면, 그는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고 평생을 무명으로 살고 모든 걸 다 드려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그 사랑을 안다면 말입니다.

지금 제가 ‘5분 갓토크’ 영상을 통해 ‘예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여러 예들을 들어가면서 나누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창조주 하나님이 온 인류 각자에게 친히 보여주신 이 엄청난 사랑을 올바로 알고 나면, 정말 그 사랑을 깨닫고 나면, 누구나 이렇게 하나님 곧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를 갖고 이런 영상 전도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5분 갓토크는 여기까지 나누고, 다음 영상에서 계속 이 예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갓토크TV 안환균 목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환균 목사
그말씀교회 담임
변증전도연구소장
<기독교 팩트체크>(두란노),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규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