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무조건 믿으라니 무엇을 어떻게?
하나님에는 호감 가도, 이상하게 예수에는 반감
저처럼 오해·방황하는 분들 시간 줄여드리고파

고난 십자가 예수 나무 성금요일 부활
▲ⓒ픽사베이

제게 ‘예수’라는 이름은 늘 그 주위에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듯했습니다. 어떨 땐 그 이름만 들어도 종교적인 냄새가 풀풀 전해져 왔습니다.

무시하자니 마음이 편치 않고, 믿자니 또 뭔가 석연찮았습니다. 그 이름을 무시하고 살다가 나중에 혹 죽고 나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얌체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예수라는 이름은 저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믿어보고 싶지만 왠지 언짢은 구석이 있는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이런 갈등 가운데 있던 제게 열성 있는 전도자들이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면, 왠지 모를 거부감부터 들 때도 있었습니다.

‘앞뒤 좌우 거두절미하고 무조건 믿으라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 그 예수라는 분을 내가 왜 믿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어쩌다 차 뒷범퍼에 ‘Jesus loves(♥) you!’라고 써놓은 거라도 볼라치면 ‘다짜고짜 저게 무슨 말이야? 예수란 사람이 날 어찌 알아서 사랑한다고 저러지? 내가 언제 뭐 사랑해달라고 하기라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믿씁니다!”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들처럼 그렇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 이름을 무슨 근거로 믿는다고 저 야단들일까? 자기들도 사실은 안 믿으면서 그저 남 보라고 믿는다는 건 아닐까? 집단 최면에라도 걸리지 않고서야 저렇게 한꺼번에 행동과 언어와 표정까지 일사불란하게 통일될 수야 없지 않을까?’

그나마 하나님이란 이름에는 대충 호감이 가도, 예수란 이름에는 이상하게도 반감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란 이름을 들으면 종교적 맹신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인가 봅니다.

‘하나님’ 하면 자연이 떠올랐지만, ‘예수’ 하면 종교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기질상 종교적인 어떤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거든요. 자연스런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종교는 왠지 가식적인 액세서리이거나 여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사치, 뭐 이런 것쯤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종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보는 예수를 절대 진리라며 붙들기에는, 종교적인 것을 아주 싫어하던 저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종교와 진리가 어떤 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오리무중으로, 잘 몰라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막연한 반감만 지닌 채 움츠러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종교가 하나고 그 하나만 추구하도록 만들어두었다면야, 차라리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이렇게도 많은데 진리는 곧 종교에 있고,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라는 한 특정 종교에만 절대 진리가 있다고 누가 확증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창조자 하나님이 어디엔가 존재하시리란 생각은 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고 싶고 만나고 싶은데 종교는 싫고, 그럴수록 예수 이름에는 막연한 반감, 그리고 거부감 이런 게 더해갔습니다.

‘행여라도 하나님과 종교와 예수가 서로 하나의 고리로 꽉 묶여 있기라도 하면 어쩌나?’ 이런 막연한 불안감이 뒤섞인 채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안환균
▲안환균 목사.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요, 이 예수란 분이 바로 하나님 그 자신이셨기 때문에, 사실은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에 대해 막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렇게 막연한 반감, 이유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왠지 예수란 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화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그래서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일 수 있다는 데 대한 막연한 반감이나 거부감 때문에, 그런 오해나 편견 같은 게 끊이지 않고 제 안에서 솟아올라 오지 않았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죠.

저는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석가에 대해 이런 반감이나, 또 그들이 존재했나 안 했나 하는 그 존재 자체의 여부를 놓고 괜히 의심을 한다거나 그렇게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예수라는 존재만큼은 그 이름부터가 이상하게도 석연찮은 뭔가가 계속 따라붙어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방황의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이런 짧은 영상을 통해서라도 예수란 분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의 저처럼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고자 방황하는 분들에게 그 방황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방황할 때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더라면 그토록 방황하던 많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텐데 하는 그 마음 때문에, 바로 그 방황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뭔가를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5분 갓토크 영상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주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함께 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갓토크TV 안환균 목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환균 목사
그말씀교회 담임, 변증전도연구소장
<기독교 팩트체크>(두란노),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규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