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영화스틸컷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오는 5월 31일 미국 워너미디어케이블에서 드라마 형태로 방영 예정인 가운데 설국열차가 기독교인들에게 불편한 이유를 소개한 칼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욱주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는 크리스천투데이에 2017년 기고한 글에서 “영화 <설국열차>에서 그림자의 위치로 떨어져버린 기독교의 운명은 어떻게 예견되는가? 기독교 신앙은 근원적 폭로 앞에서 완전히 무력화되고 만다. 영화는 부조리한 사회질서와 거기에 일조하는 종교(특히 기독교)의 거짓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원적이고 충격적인 폭로와 탈출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여기서 근원적·충격적 폭로란 혁명 이상의 것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영화는 원작의 모티프를 이어받아, 플롯 막바지에서 정치적 열망과 혁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정치적 혁명은 피상적 차원에서 숭고하고 정의롭게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새로운 지배층, 새로운 정치체계, 그리고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기만적 이데올로기 산출의 반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윌포드가 열차 최선두까지 돌파해 온 커티스에게 밝힌 진실은, 윌포드와 꼬리 빈민칸의 정신적 지도자 길리엄이 윌포드의 지배질서 유지를 위해 그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윌포드는 늙어버린 데다 커티스의 혁명을 조절하는 부분에 있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길리엄을 처형해 버리고, 커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하고 회유한다. 꼬리칸 어린이들을 열차 부속품 대용으로 사용하는 비인간적 행태를 목격하기 전까지, 커티스는 길리엄의 회유에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현실의 혁명도 이와 같지 않은가?”라고 했다 .

이어 “프랑스 68운동의 주역이었던 진보세력 대학생들은 이후 프랑스 사회주의 정부의 집권층(대표적으로 미테랑 대통령)이 되지만, 미테랑 정부는 재정적자 누적과 비윤리적 행태(핵실험 강행, 르완다 내전시 정부군에 무기를 지원하여 민간인 학살에 일조)로 지탄받은 바 있다. 한국은 어떤가? 386세대의 주역들 다수가 정치 무대에 입문했으나, 오히려 노회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인과 동화되는 모습에 지지자들에 큰 실망을 준 일이 다반사다”라고 했다.

이어 “필자는 여기서 보수세력을 옹호하고 진보세력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 단 보수와 진보에 관계 없이, 아무리 이상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진 혁명가라 하더라도 지도부에 등극하는 순간부터는 대중의 무지와 욕망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들어 있는 현실 정치 시스템에 굴복하고 동화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열차 밖에서의 삶을 꿈꾸는 선각자 남궁민수와 요나뿐 아니라, 종교와 정치 뒤에 숨어있는 기만의 이데올로기에 환멸을 느낀 커티스도 열차 밖으로의 탈출에 동참한다. 그들은 마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와 같이 외적으로 부여된 모든 우상화된 규율과 질서를 '망치를 들고' 분쇄해 버리는 근본적인 전복만이 삶을 휘두르고 있는 거짓의 장막을 벗길 것이라고 믿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동굴 밖 진리'는 각 개인이 고유하고 진솔하게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자기의 의미를 수긍하는 삶을 지목하는 듯 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진실에 의해 모든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속박이 분쇄된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이어 “이로써 영화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배적 시선이 기독교 신앙을 단지 동굴 속에 흐릿하게 비쳐진 허구적 그림자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꿈꾸는 삶은 세속적 가치와 욕망이 투영된 이데올로기에 부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경이로움과 소중함(이는 이기적 자기애의 욕망과는 다르다)에 대한 가장 진솔하고 자유로운 수긍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필자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지목하는 '동굴 밖 진리'의 자리가 여전히 기독교 신앙의 자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오늘날 신자들이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세속에서의 자기 앞가림에 바쁜 나머지, 원래 복음이 갖고 있던 귀한 가르침을 활용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고 말했다.

그는 “피상적으로 보면 영화의 메시지는 기독교인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하지만, 실은 그런 불편함을 감내하게 된 원인이 교회와 신자들 편에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