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한 방울 생수 구원 물줄기 청량
▲ⓒ픽사베이
본문: 요한복음 4:6-8절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수가 마을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납니다. 우연히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자는 만나기 어려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만남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인생의 대전환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런 배경을 중심 삼아, ‘우물가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피곤하고 힘이 들 때 만나주셨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5절)”.

6시는 이스라엘에서 낮 12시라고 합니다. 낮 12시는 신체적으로 상당히 피곤할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피곤하여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 본문은 한낮의 피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물에 걸터앉으신 주님을 보면서 우리는 북쪽의 하늘은 아직 멀고, 황막한 산과 들은 요단강을 말없이 바라보는데, 수가를 지나는 길손이 우물가에 머무는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주님의 인성(人性)에 초점을 맞추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주님이 육체의 피곤함을 느끼셨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영성만을 고집하는 그노시스파, 즉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에 일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분에서 신체적으로 한참이나 피곤을 느끼는 한낮이라는 시간에 초점을 둡니다. 주님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가장 힘이 들 때,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가장 힘이 들 때 우리를 친히 만나주실 수 있다는 상징적 교훈입니다.

2. 마음이 외로울 때 만나주셨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7절)”.

주님은 낮 12시에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는 가장 힘이 들고 어려운 상태에서 만나주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사람의 눈을 피하여 대낮에 물 길으러 왔습니다. 이는 주변에서 지탄을 받을만한 사람임을 상정합니다. 그래서 더위를 무릅쓰고 대낮에 물 길으러 온 것입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그녀가 마음에 깊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서 물 긷는 시간은 해 뜨기 전 이른 시간이 아니면, 보통 저녁 때입니다. 뜨거운 한낮을 피하려, 해질녘에 물을 길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마을의 공동 우물은 여인들의 모임터요, 온갖 소문이 퍼지고 모든 여론이 조성되는 곳입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아무도 물을 긷지 않는 뜨거운 대낮, 홀로 우물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본문이 “때가 여섯시쯤 되었더라”고 특별히 그 시각을 명시합니다.

누군가는 ‘대낮에 물 긷는 여인’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수군거릴 수도 있습니다. 필경 동네 사람들로부터 모욕이나 경멸이 우려되는 정도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심리적으로 많은 외로움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처지가 분명합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이 외로울 때, 만나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도 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인간적 외로움에 처해 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교훈이 됩니다.

3. 물을 길으러 왔을 때 만나주셨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7-8절)”.

물을 긷는 모습은 여러 벽화와 성화로 그려지거나 노래로 불리워졌지만, 그 핵심은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여인의 노력을 말합니다.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도 ‘물 긷는 여인’이라는 제목의 시(詩)와 노래가 있습니다.

물을 긷는 모습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아직 상수도 시설이 미비한 고산지대나 아프리카에서는 물을 긷는 일이 고단한 노동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몇십 리를 걸어 물을 길어오는 모습을 TV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긷는 행동은 그대로 고단한 삶의 현장입니다. 주님은 고단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영위하면서, 지탱하려고 노력하는 여인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노력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도 언제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만 부르셨습니다.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을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나아가 주님이 물 길으러 온 여인을 만나주시는 장면에서, 영적 차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려는 사람을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우물에서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려는 사람을 반드시 만나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한 우리의 삶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우물가에서 생각지도 않게 주님을 만나듯, 가는 인생의 길에서 놀라운 사람을 만나는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피곤하고 힘이 들 때 만나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마음이 지치고 외로울 때 만나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고 삶의 고통스런 현장에서 만나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고통스런 삶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