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정연호 박사(홀리랜드대학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2012년 10월에 한국에서 '유대교'에 관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청중-사실 또 다른 강사- 중에 한국 유명 신학대학의 조직신학 은퇴교수가 있었다. 질문 시간에 그는 "계시록에서 유대인을 '사탄의 회'라고 하지 않았소?"라며 몹시 역정(逆情)을 냈다. 나는 그때 유명 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의 유대교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는 데에 놀랐다. 그리고 성경을 어떤 안경을 쓰고 읽느냐에 따라 동일 본문이 완전히 달리 읽힌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그분은 4세기 교부 시대 이래로 서구 신학에서 이어져 온 반유대주의적 안경으로 성경을 읽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분의 머리에 있던 계시록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2: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3:9). 본문에서 "사단의 회(당)"로 책망받는 자들은 결코 유대인이 아니다. 본문의 "사단의 회(당)"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유대인들의 관습을 좇는 '이방인 유대주의자'(Gentile Judaizer)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은 유대인의 관습을 좇는 것으로 유대인 행세를 하는, 소위 "자칭 유대인"들이다. 본문에서 유대인과 "사단의 회(당)"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본문에서 유대인이 언급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본문은 교부 시대 이래로 유대인과 유대교를 "사단의 회(당)"로 부르는 근거가 되어 왔다. 은퇴한 조직신학 교수의 역정은, 교부 시대 이래로 서구 신학이 유대교에 대해 품었던 역정의 반복이었다고 보인다.

니싸의 그레고리
▲니싸의 그레고리.

"주님을 죽인 자들, ...하나님의 적이요 중상모독하는 자들, ...마귀를 좇는 자들, 독사의 자식들... 사단의 회당, 범죄자들..."(4세기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처럼 바울이 유대인과 유대교를 반대하는 것은, 계시록에서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계 2:9, 3:9)로 언급하는 것과 같다"(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그런데 이런 모든 사고 체계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구별된 독자적 종교로 거듭나야 할 역사적 상황에서 나왔다. 이를 위해 유대교가 기독교에 비해 악하다, 율법 종교이다, 율법은 악하다는 헬라의 이분법적 사고 체계가 발동된 것이다.
 
교부들과 반유대주의 (2): 율법은 악하다

교부들의 헬라의 이분법적 사고 체계는, 기독교를 우월한 종교로 유대교를 열등한 종교로 대비시키는 것이었다. 유대교는 바리새적이고 형식적인 율법주의 종교인 반면에,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란 것이었다.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절기와 관습은 악한 것이며,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마 5:17)이나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목적"(롬 10:4의 'teles nomou'를 우리말 성경은 '율법의 마침'으로 번역했으나, 전체 문맥상 '율법의 목적'으로 번역함이 옳다)을 곧 "율법의 폐지"로 해석하였다. 이는 악한 유대교의 율법이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었고 그래서 폐지되었다는, '율법/은혜'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로 나온 해석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씨릴(Cyryl)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이런 관점의 전형적인 모습이 4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yl)에게서 보이고 있다. 그는 바울이 '모세와 율법'을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말씀하고 있다고 주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빌 3:8에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해(害)'와 '배설물'로 여긴 것이 다름 아닌 "율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바울이 유대인과 유대교를 반대하는 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계시록에서 유대적 관습을 좇는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계 2:9, 3:9)라고 보는 것과 같은 입장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에 대한 시릴의 이 같은 해석은 대부분의 교부들과 후대의 신학자들에게 반유대적 신학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이런 것들이 바로 2천 년 동안 서구 교회가 유대인들을 박해하게 된 신학적 출발점이다. "율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따른) 기독교의 반대는, 유대의 토라를 악마시하고 유대인의 종교적인 삶을 하나님에 대해 적대적이고 마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이비드 플루서(David Flusser)의 지적처럼, 토라(율법)에 대한 교부들의 반유대주의적 해석은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 즉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으로 이어지는 주요한 뿌리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