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한국의 장로교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 가운데 성령의 지속성을 부인하는 일부 그룹은,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의 은사운동을 사이비 내지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태도는 지나친 감이 있다고 보인다. 우리는 새로운 운동에 대하여 연구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그리하여 서로 부족한 부분을 배울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은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성령운동을 사이비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매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필자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필자는 부분적으로 알 뿐이며, 잘못 알 수도 있다는 것을 시인한다. 필자도 신사도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그러나 필자의 비판은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나타나는 위험성을 지적할 뿐이다. 그리고 필자는 필자가 놓치고 있는 성경의 진리와 바른 사실에 대하여 열려 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성경만이 영의 사역을 판단하는 기준이며, 그 외 인간의 판단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교리적 교파적 절대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성경에 입각하고 공교회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목회와 선교에 도움이 되는 것이 신앙운동과 신학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주요 관점을 열거하고 이에 대하여 신학적 성찰을 하고자 한다. 이들의 주장에는 정통 기독교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강조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1. 성령 은사의 지속성 인정

와그너는 “신사도 교회들은 항상 성령의 역사에 진지하게 열려 있고, 모든 신약성경의 영적 은사들이 오늘날도 역사한다는 합치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Peter Wagne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25.). 신사도운동이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을 인정하면서 오늘날에도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임재한다고 증언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교회의 역사적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올바른 것이다. 미국의 원로 감리교 신학자 스나이드는 그의 저서 『교회사를 통해 본 성령의 표적』에서 초기 기독교의 카리스마운동, 경건주의, 모라비아니즘,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에 나타난 성령의 표적을 잘 서술하고 있다[Howard A. Snyder, Signs of the Spirit, (Grand Rapids: Zondervan, 1989), 명성훈 역, 서울: 나단, 1994]. 이에 덧붙이면 한국선교 초기에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970년대 민족복음화운동 등에서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들 수 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에 대하여 베드로는 증언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와그너는 그의 저서 『제3의 바람』에서 자신이 1960년대 말 풀러신학교 맥가브란 교수 문하에서 교회성장학을 연구할 때는 반오순절주의자였는데, 볼리비아 선교사로 선교지로 돌아온 후에 “중남미 전체에서 오순절 교회들의 성장은 나의 교단을 포함하여 모든 전통적인 교단들의 성장을 훨씬 능가하는” 사실을 접하여 “오순절 교회의 성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그리하여 1970년 초에 『보라! 오순절 신자들이 몰려 온다』를 출판하였고, 다시 이 책을 증보하여 『성령의 능력과 교회 성장』(Peter Wagner,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the Church Growth, Wheaton, IL.; Creation House, 1987)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2. 복음 사역의 역동성과 신앙의 체험적 측면 강조

영국 웨일스의 칼빈주의 설교가 마르틴 로이드 존스(D. M. Lloyd Jones)는 정통주의는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통교리만 가지고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죽은 정통이라고 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정통교리에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D. M. Lloyd Jones, Joy Unspeakable. The Baptism with the Holy Spirit, (Eastbourne: Kingsway Publications, 2000), 정원태 역, 『성령세례』,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15-32.] 이런 맥락에서 “신사도 교회”를 제창한 와그너가 교회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연구한 첫 번째 성장 원리인 사회학적 접근과 두번째 성장 원리인 영적 접근을 연결시켜 21세기 교회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강조하는 것은, 전통교회가 등한시한 체험적 차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공헌하고 있다. 

와그너는 1988년에 1980년대 존 윔버를 통하여 일어난 “제3의 물결” 운동을 소개하는 그의 저서 『제3의 바람』(How to Have a Healing Ministry Without Making Your Church Sick)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기성교회들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치유사역을 교회에서 공공연하게 행하길 소망한다. 왜냐하면 현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상처받은 채로 살고 있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돕고 싶기 때문이다. 강력한 능력이 역사하는 목회가 신약적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방법이었다.”(Peter Wagner, How to Have a Healing Ministry Without Making Your Church Sick, Ventura; Regal Books, 1988, 정운교 역, 『제3의 바람』, 서울 : 나눔터, 1990, 6. 제1장 이하 참조). 

신약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 방법을 따르고자 하는 그의 제안에는 이의가 없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도 주장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그의 목회를 따라야 한다.

3. 영적 전쟁에 있어서 신자의 성결에 대한 관심 환기 

신사도 교회는 복음 전파에 있어서 보이는 세상의 권세나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들 배후에 있는 영적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와그너는 『영적 원수를 대적하라』(Engaging The Enemy)에서 영적 전쟁에서 기도, 믿음, 순종, 성결이라는 병기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심적인 행위는 기도이다. 한편으로 기도는 병기 그 자체이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모든 병기들을 유용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다”[Peter Wagner, Engaging The Enemy, (CA: Regal Books, 1991), 명성훈 역, 『영적 원수를 대적하라』, 서울; 나단, 1993, 31]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대화 - 우리가 그분께 말씀드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 이다”(상게서, 40.).

특별한 병기로는 예수의 이름, 예수의 보혈, 합심, 찬양,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 와그너는 영적 전쟁 수행에서 중요한 조건으로서 신자의 성결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나머지 다른 것들이 차지할 여지가 전혀 없는 상태를 성결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성결하지 않고서는 영적인 전쟁에서 거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성결의 반대는 ‘세상과 벗 된 것’(약 4:4)이다. 인간의 공로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성결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우리가 성령의 충만하심에 마음문을 활짝 열어 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고도 성결하게 해 주신다.”(상게서, 53.) 

와그너가 능력 대결에 있어서 모든 영적 병기를 능력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자들의 기본적인 태도인 삶의 성결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성경적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된다. 

4. 복음주의적 전통에 충실, 교회 성장에 기여

교회성장학자인 와그너는 『제3의 바람』 서문에서 그의 물결 운동이 교회나 교단과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고 하나님 나라 확장이 목적인 것을 피력한다. “나는 이 책에서 20세기 초의 오순절운동을 첫 번째 물결로, 은사운동을 두 번째 물결로 정의하고, 기존의 복음주의 교회들 안에서 기존 교회들이 지닌 독특한 특색을 잃지 않으며 첫째와 둘째의 물결에서 역사했던 동일한 능력의 성령이 약동하는 것을 세 번째 물결로 정의한다. 즉 복음주의 교회들 가운데 교단이나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치유사역을 하는 것을 제3의 물결로 명명한다는 것이다.”(Peter Wagner, 『제3의 바람』, 6.)

그리고 와그너 자신은 오순절운동(20세기 초)이나 은사운동(1960년대)에 속한 자는 아니고 회중교회 교인으로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이 글을 쓴다고 피력하고 있다. “나는 한 번도 오순절이나 은사운동에 속했던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지난 16년 동안 나는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래이크, 에버뉴’ 회중교회의 교인이었고, 앞으로도 적어도 16년 이상은 그 교회의 교인이고 싶다.” “나는 하나님께서… 오순절운동과 은사운동에 다시 한 번 뜨겁게 타오르는 성령의 불로 새로운 세례를 주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다면, …인류 역사가 한 번도 경험치 못했던 … 하나님 나라 확장 시대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상게서, 7.) 

와그너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견고한 복음주의와 완전한 오순절주의 사이의 신학적 중간 상태”(상게서, 19.)라고 표명하고 있다. 와그너는 신사도 개혁교회가 오늘날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분파를 이루고 있다”(Peter Wagne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19; Peter Wagner, 『21세기 교회 성장의 지각 변동』, 358.)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와그너의 교회성장학 제자 중 생물학을 활용한 유기체적인 자연스런 교회성장이론을 발전시킨 자가 슈바르츠(Christian Schuwartz)(Christian Schuwartz, Healthy Church Development, Church Smart Resources, 1996, 윤수인 역 자연적 교회성장, 서울: 엔시디 2003) 이며, 부흥과 성령운동과 제자도 전도를 통한 교회성장이론을 발전시키는 자가 톰 레이너(Thom S. Rainer)와 엘머 디로스 등이다.

5. 교회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와그너가 의도하는 것은 새로운 교리나 영적 체험이라기보다는, 21세기에 접어든 세계 기독교가 ‘포스트 기독교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는 전통적인 기독교 스타일로는 힘들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의 저서 『21세기 교회 성장의 지각변동』(Churchquake!)에서 그가 왜 신사도교회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침례교회를 제외한 전통교회들(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등)의 교인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하나님의성회와 빈야드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예를 들고 있다(Peter Wagner, 『21세기 교회성장의 지각 변동』, 17-19.).

세계적으로는 세 가지 주목할 만한 선교학적 현상이 나타난 것을 지적한다. 첫째, 아프리카 독립교회들의 경이로운 성장이다. 이들은 20세기 동안 전통적인 교회들의 성장을 앞질렀다. 현재 약 6천 개의 독립교회들이 있다. 매일 새로운 교회들이 시작되고 있다. 둘째, 문화혁명의 시기인 1970년대 이후 중국 가정교회의 놀라운 성장이다. 1억에 가까운 활동적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며 매일 2만 5천에서 3만 5천 명에 달하는 회심자들이 나오고 있다. 셋째 남미, 풀뿌리 교회의 번성이다. 이들 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의 영향 아래 있지 않고 정규신학교나 해외성경신학교에서 훈련받지 않은 개개인이 목양하는 교회들이다(상게서, 15-17.).

이처럼 미국에서나 세계 각처에서 전통교회의 성장 패러다임으로는 21세기 기독교의 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와그너는 21세기 교회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통적인 기법을 완전히 탈피하는 교회 성장의 지각변동으로써 “신사도적 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을 제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신사도교회가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 성장의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 그 열매 여하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적어도 10년 내지 20년에 걸쳐서 신사도교회를 통하여 나타나는 열매를 통하여 이 교회를 지탱하는 영의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몬타니즘(montanism)도, 초기에는 제도화되는 전통교회에 영적 생동성과 열정을 불어 넣는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교부였던 터툴리안도 합류했으나, 나중에 이 운동은 점차 자기 운동을 절대화하면서 파푸자에 새로운 예루살렘에 이루어진다는 시한부 종말론으로 나아가, 전통교회에서 이단이란 정죄를 받았다. 오늘날 새롭게 시도하는 영적 운동은 항상 교회사를 연구하면서, 교회사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반성하고 항상 겸허하게 성경과 초심(날마다 자신을 반성하는 겸허)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6. 21세기 교회의 새로운 구조 모색

종교개혁신앙을 이어받은 전통적 개신교는 사제 중심의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나와서 모든 신자 제사장 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개신교가 다시 제도화되어 정통교회가 되자, 평신도들은 교회 운영과 예배 실행에서 배제되고 다시 성직자 중심으로 되어갔다. 이에 대하여 신사도교회가 교회 성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들 중 다음 6가지는 비판적으로 수용할 만하다. 

첫째, 평신도 중심의 사역운동을 하자는 것은 평신도의 위상을 높인다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살린다는 점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다. 평신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은사를 발견하여 자원자로서 섬기라고 한다(상게서, 20.).

둘째, 셀[cell, 구역, 조(組), 순(旬)]그룹운동을 하자는 것은 전통교회가 수용할 만하다. 오늘날 한국의 중대형교회에서 셀 교회가 이미 실행되고 있다. 셀교회운동은 경건주의운동에서 전통교회의 영적 침체와 나태에서 벗어나 영적 공동체적 각성을 위하여 구역이나 순 단위로 소그룹운동을 하는 것은 “교회 안의 소그룹운동”(eccelesiola in ecclesia)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예배에서 찬양 시간을 길게 잡는 것은 말씀 선포에 너무 치중하는 전통적인 예배 형태를 보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전통교회가 젊은이들 예배에 찬양과 경배를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신사도적 예배 스타일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열정을 지닌 젊은이들이 찬양을 통해서 종교적인 열정 속에 들어가는 것은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 예배가 너무 형식과 이성에 치우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신사도 예배가 찬양을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지성적 예배를 보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넷째, 기도 형태의 역동성은 전통교회가 다시 활용해야 한다. 오늘날 전통교회는 기도가 약해졌다. 그리하여 교리는 있으나 그것을 믿고 행할 만한 믿음이 약해진 것이 오늘날 전통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의 영적 모습이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다. 기도 합주회(prayer concert), 찬양 행진, 기도 걷기, 기도여행, 기도 탐사 등은 기도의 역동성을 위하여 필요하다(Peter Wagne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23.).

다섯째, 넉넉히 드리는 헌금은 배워야 할 덕목이다. 교회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우한 자들을 도우기 위하여, 그리고 각종 기독교 문화선교, 그리고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를 보내고 그곳에서 필요한 선교 복지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다. 많은 헌금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사회를 위하여 재정을 사용하고 봉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니 장려할 만하다.

여섯째, 공격적 전도도 비판적으로 수용할 만하다. 해외 선교와 미전도종족 선교, 그리고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노숙자, 불우한 자, 장애인들에 대한 연민과 선교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너하임의 빈야드교회가 이 지역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매년 2백만불(20억원 이상) 어치의 음식을 나누어 준다. 산호세 믿음성전은 100만불 음식 배급시설을 건설하였다. 다른 지역의 신사도 교회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Peter Wagne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24), 오늘날 동성애 허용, 성적 방종 등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새로운 풍습이 난무하는 때에, 교회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만 당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들과 영적 대결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는 공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기본 양식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이슬람 지역이며 정부가 여행 위험지역으로 정한 아프카니스탄에 들어가 그곳에서 선교하다 체포된 단기선교팀의 무모한 행동, 그리고 서울 내 사절인 봉은사 경내 땅밟기 등은 기본적인 양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이러한 과격한 전도활동은 교회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으로 결코 선교나 전도 활동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에 벗어난 행동으로 인하여 교회가 사회에서 비난을 받았다. 
 
맺음말 

신사도운동이 일부 한국 장로교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사이비 이단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 중에 큰 원인이 명칭에 기인한다고 본다. 오늘날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는 것은 오순절 운동에서 나온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하나님의성회 등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와그너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명칭을 “신사도 교회”라고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사도연합회를 만들고 사도들을 임의로 임명하고 사도 총재가 됨으로써, 장로교 신학자나 목회자들의 오해를 야기한 데 기인한다고 보인다. 교리적인 면에서 와그너는 정통 기독교의 신앙고백, 사도신경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같이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명칭이 용납될 수 있으나, 말씀대로 믿는 신앙을 강조하는 장로교 전통이 영향력을 가지는 한국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가 어렵다고 보인다. 오순절운동의 경우 1960년 70년대 합동측 및 통합 보수 장로교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198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조용기가 예장 통합측과 갈등을 빚어 한 때 통합 장로교 총회에서 사이비로 판정받기도 했다. 나중에 문제된 부분(조상숭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가르침, 처녀부활소동, 안수기도 대가로 금전수수, 목사 안수 남발, 무분별한 성찬 분배, 환상, 방언, 예언, 치유, 기적 등을 강조하는 광신적 요소, 현세, 성공, 물질 중심 신앙 등)을 수정 및 사과함으로써 1994년 통합 제79회 총회에서 이단 굴레를 벗어났다. 신사도운동도 그럴 수 있느냐는, 앞으로 이 운동을 추진하는 지도자들이 이 운동에 대하여 가하는 비판과 우려하는 평가에 대하여 어떠한 겸허한 태도와 진지하게 반응하는 책임 있는 노선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