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읽을 때마다 몇 가지 느낌이 있다. 첫째는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다. 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하나님 아들이시고 죄 없으신 분이 왜 무고하게 사람들에게 고소를 당하시고, 조롱과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우리 모두와 관계된 일이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이시고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결코 객관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 없다. 우리와 너무나 가까운 사랑하는 주님이 이런 일을 당하셨음을 생각하며 말씀을 배워나가기 바란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36년간 식민통치 아래 있었듯,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총독 빌라도의 다스림 아래 있었다. 우리나라에 총독부가 있었지만 여전히 고종이라는 왕이 있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헤롯왕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실권은 빌라도에게 있었으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려가 사형 선고를 내리게 하고, 빌라도에게 나름대로 율법에 의해 사형 선고를 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최고 법적 책임자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3번이나 무죄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18장 38절)”.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며 대화를 했다. 또 그는 총독이므로 그간 예수에 대해 듣지 못했을 리 없다. 아마 자세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하면 거기서 끝나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절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빌라도는 당시 민란을 꾸미고 살인을 했던 바나바라는 큰 죄인과 예수님 중 한 명을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겠다는 정치적 제스처를 했다. 아마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당연히 예수님을 풀어 달라고 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바라바를 풀어주고 죄가 없는 예수는 죽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죄인보다 종교적 시기심이 더욱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도망갔다 잡힌 노예들을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죽여,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게는 하는 사형 방식이 십자가형이었다. 본때를 보여 다시는 도망가는 일을 생각지 못하게 하는 방식의 사형이, 십자가에 매달아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 전, 죄인들에게 채찍질을 했다. 스위스 사전에서 로마식 채찍질을 설명한 것을 보면 먼저 죄인의 옷을 벗겨, 줄이나 가죽 끈으로 틀에 묶어놓고 때리는 것이었다. 아마 빌라도는 예수가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보면 유대인들이 그분을 불쌍히 여겨 놓아주라 말할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누가복음 23장 16절에서 빌라도는 “내가 때려서 놓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통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하신 것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6)”. 또 이사야 50장 6절은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라고 한다. 예수님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마 20:19, 막 10:34, 눅 18:33).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하여 채찍과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채찍을 맞으셨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로 채찍의 아픔을 잊게 하셨다.

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주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혔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주님을 조롱하기 위함이다. 당시 로마 황제들은 월계관처럼 나무로 된 관을 썼는데, 예수가 왕이라면 이런 것을 써야 되지 않겠느냐며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씌운 것이다. 당시 황제들은 망토 같이 늘어뜨리는 자색(붉은색) 옷을 입었기에, 자색 옷을 가져다 입힌 것이다.

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

그들은 황제 폐하 만세를 부르듯, 예수님 앞에서 조롱하는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손바닥으로 예수를 때렸다. 예수님은 뺨을 맞으셨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오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받은 대우이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으로 때리고, 병정들에게 모욕을 받게 한 다음 밖에 나가서 유대인 군중에게 말했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주님이 죄 없으심을 두번째로 말한 것이다.

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케 호모’로서, 아주 유명한 말이 됐다. 주님은 이 때 채찍에 심하게 맞으신 후라 피를 많이 흘리셨을 것이다. 그렇게 고통으로 일그러진 분을 이끌어 “보라, 이 사람을!(Behold, the man!)”이라 외친 것이다. 독자들과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은 한 번쯤 영적인 눈을 떠 이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마음이 많이 아플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제사장과 그의 하속들은 예수를 보고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6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죄 없으신 주님

이러한 주님의 모습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이는 주님이 죄가 없다고 빌라도가 세번째 말한다.

예수님은 성경 기록을 볼 때 진정 죄 없는 분이시다. 당시 최고의 심판자인 이방인 집권자가 심문을 하고는 죄가 없다고 했다. 마태복음 27장 4절에서는 심지어 예수를 판 유다도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증언했다. 빌라도의 아내는 새벽에 꿈을 꾸고 나서 “오늘 저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누가복음 23장 41절에서는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고 강도가 말했다. 47절에서는 로마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말했다. 마태복음 27장 54절에서는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성경의 기록을 통해 예수는 의로우시며 죄가 없으신 분으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죄 없으신 분이 왜 그렇게 죽임을 당하셔야 했나? 여러분과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이다. 빌라도는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자 예수를 헤롯에게 보내서 어떻게든 적당히 무마하려고 시도했다. 바라바 대신 예수를 방면하도록 제시하기도 했고, 예수를 채찍질하여 유대 지도자들이나 군중들로부터 동정심을 얻어내기를 희망했지만, 빌라도의 정치적 계책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은 심하게 맞기만 하셨다.

주님은 그들의 조소와 비웃음 가운데 가시 면류관을 쓰셨고, 머리에서는 피가 많이 흘러내렸다. 그들이 조롱하며 왕의 홀 대신 갈대 지팡이를 드렸을 때 주님이 받지 않으시자, 다시 빼앗아 머리를 쳐 가시는 더 깊이 박히고 피는 더 많이 흘렀다. 이방 총독은 죽일 죄가 없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빌라도가 “너희들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라. 죄 없는 사람을 왜 그렇게 죽이려고 하느냐’”고 하자, 유대인들은 대답했다.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여기서 그들이 진실을 토해 버렸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양심이 더 살아있을 수 있다. 종교적으로 잘못된 사람들은 양심이 완전히 마비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진짜 하나님 아들이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빌라도는 두려워 관정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세 번이나 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부정하게 되지 않으려고 이방인의 집인 관정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예수님이 계신 관정으로 왔다갔다 한 것이다.

이제 그는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물었다. “너는 어디로서냐(Where are you from?)”. 놀랍게도 예수님은 대답 대신 침묵하셨다. 그것은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사 53:7)”는 예언의 성취였다. 그 분은 대제사장들의 질문에 대하여는 “내가 그로라”고 답하셨다. 그러나 빌라도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하여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이방인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무 답변을 하시지 않았다.

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는 대답을 듣지 못해 마음이 상했는지, 왜 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며 위협한다.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군중들이 두려워서 비위를 맞추느라 쩔쩔매던 사람이, 연약해 보이는 한 사람 예수에게는 위압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내가 풀어줄 수도 있고 살려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데 왜 내게 대답을 않는 것이냐.” 주님께서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에 대해 한 말씀을 하셨다.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빌라도가 자신의 권세를 대단하게 여기는 말을 하자(10절), 주님은 위에서 주신 권세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죄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모의를 해도 주모자의 죄가 더 크다. 여기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대인들의 죄가 더 크다고 하셨다. 그러나 빌라도의 죄가 작은 것은 아니다. 빌라도의 죄 역시 크다. 이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땅에서 그들과 나눈 최종적인 말씀이다. 이후 예수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더욱 주님을 석방해주고자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어떻게 하든 예수를 풀어주려 하자, 유대인들은 이제 총독인 빌라도를 위협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당시 로마의 황제를 부르는 말, 시이저)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매우 위협적인 말이다. 그들의 말을 거절하다가는 입지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자인데, 그런 사람을 자꾸 눈감아 주려고 하는 당신은 문제 있는 사람 아닌가?” 유대인들은 이렇게 당시 총독을 민중의 힘으로 위협한 것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라는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박석’이란 재판석으로서 도드라진 땅에 재판장 의자를 맞게 놓은 자리이다. 거기서 선고하고 의사봉을 두드리면 형이 확정되는 자리이다. 재판석에 앉았다는 말은 이제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이쯤에서 빌라도는 자신이 결심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요한은 그날과 시간을 다 기록해 놓았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왕이로다”라고 했지만,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라고 소리질렀다. 놀랍지 않은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이들은 예수를 시험하면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즉 자기들이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선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려 할 때는 자기들이 가이사 아래 있음을 시인하면서 마치 가이사의 충신인 것처럼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빌라도는 예수를 넘겨주었다. 성경의 다른 곳에는 빌라도가 대야에 물을 떠다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무죄하니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너희들이 당하라” 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확신하며 소리질렀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 유대인들은 예수를 사기꾼으로 오판했기에 죽여버리라고 말했고,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까지 대대손손 돌리라고 확언한 것이다.

그들은 소리를 많이 질렀다. “소리가 이겼다”고 기록한 곳도 있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말인가? 그들은 이것이 무슨 죄인지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큰 민족적 비극과 고난을 당하게 된다. 단지 세계 2차대전 뿐만 아니라, 그 이전과 지금까지도 유랑 민족이 되어 온 세계로부터 미움과 학대를 받는 나라가 되었다. 사도행전 8장 33절은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이라고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