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떠나 있는 필자가 선교 현장에서 한국교회를 생각하고 바라보고 고민하면서, 오늘날 목회자의 모습 속에 좀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목회자들의 삶의 여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현대 대부분의 목사들은 학업의 연속과정을 통하여 안수를 받고 교회 사역에 임하게 된다. 즉 대부분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목회에 임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목회의 대상은 세상 사람들이고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때가 많다. 지적으로 공감은 하겠지만, 병든 자를 대신할 수 없고 아무런 도와 줄 일이 없듯이, 세상의 일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성도들의 삶의 현장을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목회의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책 속에서 공자 왈 맹자 왈 하듯이, 목회자가 되어 노동의 현장이나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성도들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헌금을 하고 교회를 섬기는지 잘 모르게 된다.
잘못된 경제관(청지기관)이 생겨나게 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내가 땀 흘리고 노동하여 돈을 벌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는 데에도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는 일들이 무수히 생겨난다. 공적인 돈은 눈먼 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쉽게 발생하는데, 오늘날 큰 교회의 문제는 대부분 돈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본다.
필자는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가 얼마나 허황된 일에 많은 재정을 투자하는가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한 번은 교회 본당의 5층 높이 벽 전체를 커튼으로 둘러쳤다. 보기가 싫고 수리할 때도 되었다 싶었는데, 커튼으로 본당을 둘러싼 것이다. 지금 기억으로 3억 정도는 들지 않았는가 생각이 든다. 온통 고급 천으로 둘러 놓으니 보기도 좋았고 분위기도 좋았다.
그런데 심기는 몹시 불편하였다. 이러한 일에 이렇게 많은 재정을 투자하여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이랄까? 이렇게 돈 사용할 곳이 없어서인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인가? 그저 당회에서 하는 일이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시비를 걸거나 제동을 걸면 좌파로 몰려 내팽개쳐질 파리 목숨이니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5년의 세월이 흐르니 그 화려하던 커튼이 색이 변하고 먼지가 쌓여 매우 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모든 천을 철거하고 거기에 나무로 붙여서 단장을 하였다. 그 작업에 아마 3억 정도는 들어간 듯하다. 그리고 강단 뜯어 고치는데 1억, 이래저래 내부 수리하고 보수하는 데 이렇게 마구 재정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 당시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든 일은 관리와 보수가 매우 중요하다. 새로 건축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관리의 문제다. 관리에는 항상 재정이 들어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몇 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단순하게 생각 나는대로 교회 재정을 함부로 투자하고 사용하는 일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진 것이다.
강남의 새로 지은 교회의 내부, 그 화려함과 현대식 시설의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을 보았는가? 화려한 불빛 아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때에, 세상에서는 굶주림에 가족이 자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여기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여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가? 관심은 있는가?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화려한 교회를 만든다는 것인가? 이러한 교회가 하나쯤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그런가?
강동 지역의 어느 교회는 교회 지붕을 개폐식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그 교회의 목사에게 들었다. 감동스러웠다. 그런데 감동이 지나가자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그렇게 교회를 치장하는 일에 정신을 쏟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에 집중할까? 본질이 아닌 외적인 일에 재정을 쏟아붓고 은행 빚을 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빚 때문에 선교를 못 한다는 이야기를 대부분 하고 있다.
이처럼 돈에 대한 목회자들의 생각이 너무나 안일하고 가볍다는 것이다. 눈물과 땀과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공적인 물건이나 재정은 어떻게 해서든지 챙겨서 먹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존경받는 것은 습관이 되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교회 재정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경우 이러한 천박한 청지기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중·대형교회는 성도들이 특새에 3주, 21일 동안 빠짐없이 참석하면 큰 선물을 준다는 소리를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도들의 집회 참석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선물을 주고 또는 포상을 하고 또는 기념패를 만들어 주면서 출석을 유도하는,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만들어내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계산하여 보니 족히 수천만원이 특새 출석을 독려하기 위하여 소비되었는데, 참으로 깊이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한국교회의 현장을 모르는 선교사의 철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목회자들은 특히 공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얻어먹기 좋아하고, 대접받고 섬김받는 것 좋아하고, 필자는 이 모든 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목회자들이 눈물의 빵, 고난의 빵을 먹어보거나 땀 흘리면서 돈을 벌어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생겨난, 물질관과 사명감의 망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엄청난 고난과 노동의 현장을 경험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안다. 그러한 경우에는 물질관이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필자는 젊은 날 많은 시간들을 공사판에서 등짐을 지고 보냈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한 달 내내 조립박스를 만든다고 망치질만 한 적도 있었다. 시장통에서 장사치로 2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시장 생리와 사람을 보는 것도 배웠다. 이래저래 기회가 있어서 공장으로 노동 현장에서 지낸 결과, 땀 흘리고 고생하여 번 돈으로 십일조 감사헌금 한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는 일인가를 안다. 그래서 필자는 십일조 안 한다고 도둑놈이라고, 신앙이 없다고 외치지 않는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 일하면서 번 돈으로 십일조 감사 주일헌금을 한다.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순수하고 훌륭한 것인가를 짐작한다. 목회자는 이러한 것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의 교회 재정 사용이 가장 헤프다. 대형교회는 더욱 더 그렇다. 여러 가지 명목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쉽게 한다. 설교 한 번 하고 받아가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는 메시지인가? 기분 나쁜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돌아보고 점검하여야 한다.
한국교회, 계속하여 무너져갈 것인가? 아니면 물질주의 세계와 편리주의 환경에서 어렵지만 다시 한 번 본질로의 개혁과 본질로의 변화의 길을 기도하며 미래를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모두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나의 환경과 목회에 만족하고 나갈 것인가? 오늘의 한국교회, 잘 한 것도 못 한 것도 모두가 목회자의 책임이다. 재정 관계에 바르지 못하면 교회는 세속화되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 목회자는 돈 사용하는 기본부터 좀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