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목사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는데, 한국교회를 탄탄한 지식의 기반 위에 놓고 그 지식이 삶으로 꽃피우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기독교 사상과 역사, 특히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교부들의 신학을 집중 연구할 수 있고 아울러 기독교 철학에 대해 토대를 다질 수 있는 지적 기반들을 제공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교회 제공

김남준 목사의 신작 <서른통>을 보면 영화 이야기가 이따금씩 등장한다. 비록 스마트폰이나 SNS는 사용하지 않지만, 목회자이기 때문에 세상과의 소통을 게을리하지는 않는 듯했다. 요즘 소위 ‘뜨고 있는’ 철학자나 상담가,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TV를 아예 안 보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고도 했다. 최근 영화평부터 한류(韓流)까지, 그리고 그가 총신대 총장을 고사한 이유까지, 남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인가요.

“‘저거 정말 재미있겠다’ 싶어서 가는 건 다섯 편 중 한 편 정도입니다. 어떤 때는 의무감으로 갑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을 비롯한 현대인들이 그것들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때로는 반감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술만큼 현대 사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바로미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늘 먼저 갑니다. 느끼는 게 먼저이고, 이론으로 체계를 세우는 건 뒤따라가지요. 많이 보진 못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시대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시대정신과 맞지 않으면 소위 ‘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뜨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 현대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나름의 처방을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 ‘막장’이 회자되는데, 그것도 관점 나름입니다.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최고라 생각한다면, 이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실 근거가 약하지요. 문제는 그런 사소한 게 아니라, 드라마를 흘려보내는 거대한 틀이 너무 획일화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반드시 자본주의의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행복이 귀결됩니다. 항상 본부장이 나와요(웃음). 아버지가 재벌인데, 처음부터 밝히진 않습니다. 이상하게 회사를 물려받는 데는 관심이 없고, 수준 맞는 이성이 아니라 허름한 사람을 만나지요. 그 본부장은 상처가 많은데, 이 여성이 치료해 줍니다. 이런 것들을 꿈꾸는데, 우리나라에 재벌이 그렇게 많겠습니까? 어느 채널을 틀어도 다 그런 구도입니다.

우리가 한류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게 얼마나 갈까’ 생각합니다. 우리 드라마가 구라파나 미국에선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어요. 현재 성장하는 신흥개발국들을 비롯한 ‘아시아 벨트’에서 주로 인기가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보면 굉장히 유치한 것이지요. 한류도 더 발전하려면, 상상력을 훨씬 확장해 잘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대장금>의 인기는 좀 다른 맥락입니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서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된 것이 <수상한 그녀>입니다. 칭찬할 만한 플롯(plot)을 갖고 있어요. 전형적인 ‘재벌 2세’도 없고, 70대 할아버지와 20대 처녀가 결혼한다는 설정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소재를 멜로나 홈드라마 뿐 아니라 역사, 판타지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류도 폭넓은 저변을 얻을 수 있어요.

드라마도 가치를 찾아가는 내면의 깊은 고민들이 너무 없습니다. 고민이라면 대부분 이성, 돈, 가정의 불륜, 과거사 정도이지요. 인생의 문제에 근본적인 해답을 주기보다, 삶의 판타지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격차가 심할수록, 육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질병이 생기거나 단명할 수 있어요. 육체가 욕구를 견디지 못하면, 술과 마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과 한류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요즘 <겨울왕국>이 ‘기독교적 코드’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영화는 어떻게 보셨나요.

“최근 나온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독교적 관점을 많이 담고 있다는데,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고 봅니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많겠지요. 하지만 너무 단순합니다. 초등학생들은 감동을 받을지 몰라도(웃음), 제 입장에선 <수상한 그녀>가 훨씬 좋습니다.”

-30대를 살고 있는 직장인으로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께서도 거대담론보다 ‘쉬운 책’들이 많이 읽힌다고 말씀하셨듯, 저도 심혈을 기울여 쓴 대안이나 선행 관련 기사보다 폭로나 가십성 기사를 독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실망할 때가 있는데요.

“언론의 기능은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를 주는 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사명은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독자들을 일깨워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중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진행할 수 있느냐는 기술적 문제라고 봅니다. 독자들의 성향만 핑계대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열린교회의 ‘30대 좌담회’ 당시 모습. ⓒ교회 제공

-이번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요즘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많은데요.

“저는 늘 말해줍니다. ‘터프함을 좋아하는 자매들은 결국 결혼해서 많이 맞는다’구요(웃음). 저는 그것도 드라마나 영화가 준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세뇌를 받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고교를 다닐 때 는 누구의 용모를 내놓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것이었지요. 친구들이 선을 보고 왔다고 하면, 여자친구들은 ‘괜찮아? 몇 살이야? 어느 학교 나왔대? 성격은?’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묻는답니다. ‘예뻐?’ ‘굉장히 착해.’ ‘그런데 예뻐?’ ‘이대 나왔대.’ ‘아 그래, 그런데 예뻐?’ 훨씬 감각적인 시대가 된 것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디까지 시대에 발맞춰 시대와 더불어 살거나 거부하면서 싸울 것인가, 어느 지점부터 따라가진 않으면서 그들을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따라가면서 그들을 함께 설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칩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든, 그저 애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생활이 아니라, 그냥 밥 벌어먹는 생활이 아니라,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더 좋은 자기 자신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뤄지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해 총신대 총장 출마를 고사하셨는데요.

“넓게 보면 하나님 뜻이라 생각합니다. 복합적 문제가 있지만,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직 59세에 불과하기 때문에 열린교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건강도 그렇고 이제 모든 면에서 갈수록 쇠락해질텐데, 제게는 깊은 고민이 있어요. 죽기 전에 이 책은 꼭 써야겠다는 게 3만 페이지 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4백쪽 정도로 보면 70-80권 분량이지요. 그걸 쓰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연구를 통해 신학적 결과물들을 내놓고 동시대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신학과 목회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사상이 있는 목회를 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들을 남기고 싶은데, 이는 저 자신과의 명예와 상관없이 후손들이나 후학들에게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김남준 목사는 현재 방대한 분량의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가제)> 초고 집필을 마친 상태로, 올해 내 출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0대 젊은이들이 도전해 볼 만한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

“그런 질문 참 많이 받는데, 항상 이야기합니다. 좋은 책 아무거 읽으라구요(웃음).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필독도서 적어 달라는 사람이에요. 적어줘 봐야 소용 없거든요, 간직할 뿐이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자신의 책꽂이에서 정말 이단이나 이상한 책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길을 고양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올바로 사고할 수 있게 하는 책이면 문학작품이든 시집이든 교리 책이든 설교집이든 일단 먼저 읽으십시오. 계속 읽다 보면, 그 속에서 어느 쪽으로 독서를 해야 할지 길이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