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요한복음 14-16장은 마지막 떠나시기 전날 주신 말씀이다. 15장에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주님이 떠난 후에라도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돼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말씀이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이야기 한 곳이 많이 있다.

포도나무와 가지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포도나무의 말씀을 하시는데, 이는 구약과는 너무나 다른 매우 특이한 방식이었다. 예수님은 그 농부가 더 이상 이 땅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포도나무인데, 그 포도나무를 기르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농부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가지치기를 한다. 마른 가지나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 불에 태우고, 남은 가지들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깨끗케 하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15장은 하늘 아버지가 농부의 일을 하시고 이제 우리는 포도나무가 되었으니 열매를 잘 맺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떠나가지만 너희들과 나의 관계는 그 결합이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너희들은 나와 항상 긴밀하게 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완전히 붙어서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한 것 같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이다’ 라고 가르쳐 주신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계셔도 되고 안 계셔도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늘 함께 붙어 있어야 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살아가면서 생명과 능력, 은혜, 인내, 생명으로 사는 삶이 필요한데 그러한 생명과 공급의 근원, 은혜의 원천은 우리 자신에게 없다. 포도나무는 뿌리로부터 진액이 흡수되어 가지로 흘러 들어가야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이 땅의 성도들이 나타내는 모든 아름다운 표현, 생각, 느낌, 사상, 미덕은 모두 하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뿌리로부터 흡수된 영양분이다. 거기서 생명이 나오고 힘이 나오며 활기와 능력과 지혜가 나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어떤 일관성, 인내, 겸손도 가질 수 있다.그 능력의 진액이 포도나무로부터 흘러오기 때문이다. 그 비결은 4절 말씀대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두 종류의 가지가 있는데, 한 종류는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이고 또 하나는 맺는 가지이다. 이것이 거듭난 자들과 거듭나지 않은 자들인지, 혹은 거듭난 자들 중에서 열매를 맺는 자와 열매를 맺지 않는 자들인가에 대해선 이론이 많다. 물론 거듭나지 않은 자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지만 거듭난 자들 중에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주님 안에 항상 거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가르침을 주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과실을 맺는 가지와 다른 하나는 맺지 못하는 가지이다. 그런데 이 둘의 운명은 너무나 크다. 하나님은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제하여 버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해 이를 깨끗케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대로 믿어야지 우리 생각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러면 열매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다. 그 삶에서 나오는 표현이 다 아름다운 열매인 것이다.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사랑, 동정, 겸손, 온유, 화평, 양선, 절제, 희락,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열매이다. 그러면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어떠한가? 이런 것은 없고, 그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속상하면 화내고 기분 좋으면 웃는 것이다. 거기에 호색과 음란과 각종 분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가지에 경고의 말씀을 주고 계신다. 나무에서 제하여 버린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이 교회를 관리하시는 방법이 있다. 참고 기회를 주시지만 계속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버리신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열매를 맺는 가지라면 잘리거나 불에 타지 않아도 고난이 있게 된다. 과실을 더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버지는 그 분의 포도나무인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계신다. 그 방법은 주로 시련이다. 건강도 될 수 있고 또 어려움도 될 수 있고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은 그에게 여러 어려움을 주셔서 깨끗하게 하신다. 그 결과 그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더 겸손하고 더 큰 사랑을 갖게 되며 더 큰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도로도 연결된다(롬 1:13). 따라서 성도들은 시련을 당할 때 야고보 사도의 권면처럼 기뻐해야 한다. 그 시련은 대부분 우리를 깨끗케 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성분이 있다. 여러분도 때로 주일날에 뭔가 속이 답답하고 칙칙하고 맑지 않은 그런 느낌으로 예배에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공급받은 후에는 영혼이 씻긴 체험이 없었던가? 그것이 바로 말씀으로 씻김을 받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물로 씻어서 깨끗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 말씀 안에는 물이 있다. 그 말씀의 물이 우리를 씻는 것이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할 수 없다. 더러운 상태로는 거룩하신 주님과 연합할 수 없다.

일단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온 몸이 씻긴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씻긴 것은 아니다. 발은 계속 씻어야 한다(13장). 이 씻음의 문제는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말씀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매일 말씀을 읽고 들으며 계속 말씀과 관계를 맺고 살 때 이 씻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4절 말씀처럼 생활할 수 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진리의 말씀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야 한다(벧전 1:22). 말씀을 순종할 때 씻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 안에 쉽게 거할 수 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너희들은 나에게 고착되어 있다. 붙어 있어라.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한다. 더 밀접하고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아라. 모든 일을 나에게 다 맡겨라 내 안에 뿌리를 박고 심겨서 살아라. 내 안에 안식해라. 나 하고 붙어 있어라.’ 우리가 이렇게 살면 주님도 우리 안에 살 것이라 말씀하셨다.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여기서 ‘절로’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과실을 많이 맺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절로’ 맺는 것이다. 그냥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맺는 것이다. 스스로 열매맺기 위해 흔들어 댄다고 열매가 맺히는가? 흔들수록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이것이 율법주의이다. 율법주의는 뭔가 계속 흔들지만 거기 열매가 없다. 가지는 가만히 붙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절로 과실을 맺는다는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과의 연결, 연합, 하나되는 것, 그 자체가 전부이다. 여러분의 책임은 그저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미 가지가 되었음을 믿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이것을 믿으면 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컵이 있다고 하자. 그 컵이 스스로 ‘내가 어떻게 하면 컵이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자기가 이미 컵이면서 늘 ‘나는 컵이었으면 좋겠네’라고 한다면 말이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좋겠네’라고 하는 사람이 그와 같은 사람이다. 거듭난 여러분은 이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었는가? 그러면 여러분은 이미 가지가 된 것이다. 주님이 포도나무에 이미 견고히 붙여 놓으셨다.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나무가 책임을 지신다.

사람은 다 노력하기를 좋아하고 행위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지가 되려고 노력하고 붙어 있으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는 절대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그냥 ‘내가 가지로구나’ 하면 열매가 맺힌다. 여러분의 행위가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큰 일을 하는 것이다. 믿은 그 시간부터 진액이 뿌리로부터 가지로 흘러 들어가서 포도를 맺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믿으면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주님 안에 거함

그러면 주님 안에 어떻게 거하는가? 그냥 믿는 것이다. 주님이 여러분을 붙잡고 있어야지, 여러분이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그러나 주님이 붙들고 계시면 안전하다. 그분은 절대로 여러분을 놓치지 않으신다.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행위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붙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주님이 붙잡는 것이다. 행위로는 안 된다.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도 다만 이 축복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란다.

주님과 분리되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하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나는 성도 여러분이 많은 열매를 맺기 바란다. 이 때 성령의 열매로서 인내나 겸손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는 주님의 생명으로 인한 하나님의 성품이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피차 미워하는 자들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적하면 우리도 대적하고 사람들이 미워하면 우리도 미워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나고 이 생명을 받은 후에는 변했다. 우리 속에 사랑이 있게 되었다. 은혜가 있고 용서가 있고 겸손이 있고 순종이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열매가 여러분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데, 이것이 포도나무의 가지가 된 결과이다. 이것이 믿은 결과이다.

이 포도 열매는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다. 뿌리가 하늘에 있는 포도나무이다. 하나님은 그런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부르신 자들로 교회를 만드시는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런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한다면, 그 근원을 추적해보면 주님과 연합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 드릴 때만 잠시 붙어 있다가, 집에 돌아가면 언제 주님과 관계가 있었는가 싶을 만큼 자기 마음대로 생각대로 육체대로 살기에, 열매가 나오지 않고 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신앙생활 10-20년 하면 무엇하는가? 1주일, 아니 하루를 하더라도 참된 성령의 내주하심, 성령의 역사하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