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목사(낮은울타리 가정사역원 원장, 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우리는 흔히 연단을 이야기할 때 욥을 거론하게 된다. 세상에 욥만큼 호되게 연단받은 사람이 없는 듯하다. 그것도 욥은 ‘의인’으로서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남기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욥은 졸지에 그 많은 재산을 날리고 10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다. 게다가 자신의 온몸에 악창까지 생겼다. 이쯤 되다보면 나 자신과 비교했을 때, 욥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당한 고난과 고통이 가볍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생에 있어서 고난과 고통의 문제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특히 애매하게 고난을 당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저절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불현듯 생기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연약한 성정을 지닌 인간의 한계와 본능일 것이다.

최근에 한 부부를 상담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의 한줄기 빛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부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았고 잘되던 사업마저 부도를 맞아 두 사람 모두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더구나 남편은 교회 다닌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였으므로 계속 고난이 이어지자 아내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것 같아.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겠어?’ 라고 아내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런 재정적인 고난이 몇년째 계속되자 아내마저 지치기 시작했고 교회에 다니긴 해도 신앙의 극심한 슬럼프 현상을 겪으며 믿음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몇번의 상담을 통하여 이 부부는 그 이전보다 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

의인이었던 욥조차 극심한 고난을 통과했는데 그리 의로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난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가운데 당하게 되는 여러가지 어려움과 시련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한 이해와 확신이 있어야 좌절과 낙심의 강물로 추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고난이 자신의 잘못으로 오는 경우도 있으나 죄와 상관없이 고난을 당한다는 말씀도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과 그 원대한 역사하심을 다 이해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고난은 유익하다는 것이다. 연단이란, 철이 철이 되는 것이고 금이 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도 연단이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금에 불순물이 끼어있는 것을 제거하고 정금으로 만드는 것이 연단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 연단의 과정은 필수가 되는 것이다. 내 속에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불같은 연단의 과정 속에서 불순물들이 다 태워져 없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통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가치관은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땅의 소망이 변하여 하늘의 소망으로 반전되게 된다. 이것은 연단의 과정을 긍정적으로 수용했을 때의 결과이다. 만약에 연단을 연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한다면 마침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으로 건지신다. 우리는 연단 앞에서 두 가지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절망에 빠지든지 감사하든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크나큰 축복이 되지만 마귀가 주는 부정적 인식에 잠식당하게 되면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던 유명인들이 자살을 택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정금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사람, 그가 바로 높은 영성의 사람이다.

어떤 목회자 그룹에서 자신의 삶을 오픈하고 나눈 적이 있다. 놀랍게도 겉으로 보기에 그곳에 모여 있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훌륭한 삶을 살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분 한분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끄집어내기 시작하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하여 그것에 모여 있던 모든 목회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온갖 고통과 크나큰 좌절과 학대와 절망을 체험하며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오랫동안 지나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그 모임에서는 절대적으로 비밀이 보장되는 안전한 치유상담그룹이었으므로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꺼낼 수 없었을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목사님 한분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눈물을 훔치셨다. 상처와 고통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 시련의 순간들이 자신을 더욱 성장케 했음도 부인하지 않으셨다.

목회자들이 어디에서 자신의 과거의 상처와 학대의 경험들을 꺼내놓겠는가. 겉으로 보기에 거룩하고 멋있고 훌륭해 보여도 그속에 숨겨져 있는 상처를 드러내 놓고 치유를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 경험들을 거치면서 서서히 치유되어 가고 하나님의 사역을 더욱 신실하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한때 부당해 보이던 수많은 상처와 고통이 이제는 감사의 노래가 되었고 그 연단의 시간이 하나님을 더욱 붙드는 소망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고난이라는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불순물이 없어지고 정금이 되는 것처럼, 영적인 성숙과 성장을 이루어내는 연단의 시간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케 하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임한 고통과 좌절의 경험을 감사하자. 그러면 연단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연단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그 연단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축복의 시간으로 보는 눈이 없어서 계속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그렇게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연단의 종식을 유보시킬 수밖에 없으시다.

믿음을 가지고 영적분투에서 날마다 승리하기 위하여 강하게 무장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성을 가지지 못하고 불평과 좌절과 낙심과 원망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하나님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리라.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만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속히 연단의 과정을 지나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단련하시며 나를 높은 영성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나를 성장과 더불어 소망을 바라보는 삶으로 이끄실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 3-4)”

환난 중에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난은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인내는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여 소망을 이루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슨 환난이나 좌절이나 극심한 고난 속에 있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의 특권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비밀을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성공과 실패, 두 가지만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난 중이라고 해서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승리가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더욱 붙들고 산다면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승리만이 있을 것이다.

“오, 주님! 연단의 축복을 주셔서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상처가 나를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자원이 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연단의 과정이 아직 더 남아있다 할지라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더욱 힘을 주시고 더욱 붙들어 주소서!”

-강선영 목사와 이메일상담 somang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