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새 언약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이다. 이 본문은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 ‘키’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앞 절에서 강조된 이스라엘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곧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법을 돌판이 아닌 마음에 기록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주시겠다는 새 언약의 강조가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옛 언약 역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은, 신명기와 시편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기도 하였다(신 6:6; 10:12; 11:18; 30:6, 14; 시 37:31; 40:8; 119:34). 그러나 그것은 율법 준수의 책무를 갖고 있는 이스라엘이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강조일 뿐이다. 새 언약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직접 율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주시겠다고 약속에 있다.

율법의 준수는 언약 체결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율법은 언약의 수혜자인 이스라엘이 언약의 시혜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요, 그 구체적인 방법이다. 율법은 법적인 제재나 의무사항과 같이 이스라엘을 얽매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의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이 해방의 감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기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마음에 새기는 내면화는 언약관계 유지의 우선순위가 아닐 수 없다.

‘마음에 새기다’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전치사 ‘알’은 ‘위에’(on)를 뜻하는데, 이는 마음이 은유가 아니라 문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전치사 ‘베’(in)가 사용된다. 마음이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마음이 곧 율법을 기록하는 거룩한 장소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마음’은 정서적 장소가 아니라 도덕적 의지가 자리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여 주신다는 약속은, 곧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도덕적 삶과 행동을 지배하게 하시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것은 율법을 돌판에 새긴 옛 언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율법을 돌판에 새겼다는 것은, 곧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옛 언약의 돌판과 새 언약의 마음을 서로 대비시킨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즉 옛 언약의 율법은 모세와 같은 중재자가 필요했지만, 새 언약에는 더 이상 그런 중재자가 필요치 않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옛 언약에서는 율법을 새길 돌을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셨지만, 새 언약에서는 그런 돌 대신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마음에 새겨 주심으로, 율법을 지킬 능력과 의욕을 마음에 불어 넣어 주신다.

새 언약은 율법을 지키려는 의지적 노력에 앞서 마음에 율법을 새겨줌으로, 그 자체가 삶의 한 구성요소이면서 인격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새 언약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일치되는 것을 지향하며,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온전한 순종을 의미한다.

새 언약이 강조하는 율법의 그런 내면화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편만함과 그들의 죄가 사하여져 다시는 그 죄가 기억되지 않는 죄 용서의 영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새로운 시대의 원동력인 셈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