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드 교리, 이슬람 대제국 핵심
이슬람 무장단체들 기본 이념 돼
지하드는 모든 무슬림들의 의무
주 상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하마스, 이슬람교 국가 등 세력에
전쟁 동참 호소 당위성 제공 평가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이스라엘 당국 인사들. ⓒKRM
◈사태 개요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의 사막지대.

안식일을 포함해 주말 동안 개최된 유명 음악축제 ‘슈퍼노바 페스티벌’이 열리는 현장에서, 동틀 무렵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머리 위로 한 무리의 패러글라이딩 낙하 모습이 목격됐다.

잠시 후 동력을 통해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무리는 음악축제 중이던 이스라엘인들과 각국에서 축제를 찾아온 외국인들의 머리 위에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사방팔방 도망치는 참가자들의 뒤를 하마스 대원들은 사냥을 하듯 쫓아가며 계속 사격을 가했다.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 후 페스티벌 현장에서 확인된 시신만 260구에 달했고, 최소 130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전 세계를 경악케 만든 이 공격 이후 더 걱정스러운 것은 실종된 사람들 대부분이 하마스에 인질로 끌려간 것으로 확인된 데 있다. 향후 제2·제3의 피해가 염려되는 대목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마스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인질을 처형하기 시작했다는 끔찍한 뉴스가 속속 보도되는 중이다.

하마스는 또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5천 발에서 최대 7천 발이 넘는 로켓탄을 쏟아 부었다. 이스라엘 측이 자랑하던 첨단 방어체제 ‘아이언돔’은 물량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구멍을 노출하고 말았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민간인 희생자는 1천 명을 넘었다.

하마스, 이스라엘
▲하마스의 공격으로 무너진 이스라엘 도시의 건물. ⓒ스카이뉴스 보도화면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명확한 보복 의사를 천명하고 전면전을 불사하고 있다. 가자지구 내 하마스 세력에 대한 강력한 공습을 개시한 것이다. 이에 맞서 하마스도 싸우기 시작했고,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피해를 입어 역시 1천 명 넘게 희생된 것으로 10월 11일 현재 보도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는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현재 30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예비군 소집령이 발령됐다.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이 속속 집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상전을 포함한 전면전으로의 확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한 사법 파동으로 시위가 이어지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었다. 정부의 조치에 반발한 군과 경찰의 간부들이 공개적으로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강고했던 방어체계는 느슨해졌고, 테러행위에 대한 즉각적이고 철저한 보복조치도 함께 느슨해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의 그간 혼란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기도, 식량도, 물도 없을 것이다. (가자지구를) 폐허의 섬으로 만들 것이다. (민간인들은) 하마스 전투원이 있는 곳에서 나가라.”

◈하마스는 어떤 단체인가?

하마스는 2007년부터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이슬람 무장단체다.

1969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창설해 팔레스타인 독립을 추진해온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2004년 사망)이 서안지구(일명 웨스트뱅크)를 기반으로 한 온건파 정당 ‘파타’를 대표한다면,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하마스는 이슬람 수니파 계열 강경 이슬람 무장단체로, 1987년 결성됐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통제가 강화된 데 반발해 2000년 시작된 제2차 인티파다(무장봉기) 이후 전열을 가다듬은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총 132석 중 74석을 차지, 다수당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하마스가 집권당이 될 것으로 보이자, 이스라엘 정부와 서구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겠다고 압박을 가해온 것이다.

할 수 없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압바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마스와 협상을 벌여 거국내각을 꾸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압바스 대통령 측의 친위쿠데타로 하마스 세력은 내각에서 자리를 잃고 말았다. 분노한 하마스는 결국 압바스 대통령이 이끄는 파타 당이 지배하는 훨씬 더 큰 땅덩어리와 인구를 가진 서안지구(웨스트뱅크)와 분리, 가자지구만을 실효 지배하게 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인해 가자지구 일대가 초토화되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인해 가자지구 일대가 초토화돼 있다. ⓒBBC 뉴스 유튜브 캡쳐
이렇게 하마스는 2007년부터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정권이 됐다. 가자지구에 한정된 상태나마 집권세력이 되는데 성공한 하마스는 집권세력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무장단체라는 태생적 한계가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졌다.

이러한 속성은 모든 문제에 법률이나 협상보다 폭력이 앞서는 행동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테러와 무력을 통해 하마스는 더욱 세력 확대에 골몰했고, 이에 반응해 이스라엘 역시 가자지구 통제를 위해 크고 작은 충돌에 정면 맞대응함으로써 ‘중동의 화약고’라는 별명에 걸맞는 갈등 상황을 지속적으로 노출해 왔다.

수니파인 하마스는 정파적 입장이 다름에도 시아파 이슬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여러 경로로 받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 대하고 있는 레바논 남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또 하나의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원도 하마스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헤즈볼라는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시아파 이슬람 무장단체로 상당히 유명하다. 이번 사태가 터진 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헤즈볼라가 지배하는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서 10월 2일을 전후해 이란의 정예부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장교들의 주도 하에 헤즈볼라와 하마스 최고지도부 내에서 이번 공격이 최종 결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사태가 벌어진 직후 미국의 바이든대통령이 2번에 걸쳐 무조건적 대(對) 이스라엘 군사적 지원 방침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밝혔다. 지금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상황은 사실상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이슬람 교리에 충실한 하마스의 움직임

이번 전쟁 상황에 대한 일반적 분석은 대부분 정치적·군사적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역사적 연원(淵源)을 거슬러, 원한과 보복이 반복되는 양자 간 갈등구조로 사태를 파악하기도 한다.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칼이 맞부딪히는 ‘문명의 충돌’로 규정하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기 쉬운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즉 하마스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충실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국가이다. 그런데 이슬람은 유대교를 믿는 이들, 즉 유대인들을 ‘저주받은 자들(혹은 번역본에 따라 노여움을 받은 자들)’이라고 이슬람 경전 ‘꾸란’ 1장, 일명 개경장(알 파티하) 7절에 명확히 서술하고 있다.

이슬람은 전쟁을 선포한 종교이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꾸란 8장 39절에 “세상 모든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성전(聖戰, 지하드)하라”는 구절에 남긴 최후 명령에 따라, 모든 무슬림은 전 지구의 이슬람화를 수행해야 한다.

꾸란 라마단 이슬람 교도 이슬람 종교 알라
▲한 무슬림이 꾸란을 읽는 모습. ⓒ픽사베이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 창립멤버이면서 정치인이었던 다니엘 셔예스테 박사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무슬림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단체 ‘Exodus from Darkness’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셔예스테 박사는 이 지하드, 즉 성전을 하라는 단어의 실질적 번역으로 영단어 ‘terrorize’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즉 성전, 지하드는 적에게 테러를 가해 두렵게 만들라는 명령임을 밝혀준 것이다.

이와 같이 테러공격을 통해 이슬람화를 추진함에 있어 첫 번째 장애물이 유대교, 그리고 유대인들이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고 종교적 주장을 펴던 서기 620년 무렵, 이슬람 전승에 의하면 무함마드에게 거짓 종교를 선포한다고 핍박한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유대교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의 정확한 전승에 집중하는데 반해, 무함마드는 자신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사 지브릴(이슬람은 지브릴이 성경의 가브리엘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함)로부터 직접 하늘의 돌판을 읽어라(꾸란으로 알려진 내용)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엉뚱한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유대교(특히 기독교의 구약성경) 경전과 유사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뒤섞어 내놓았고, 그것이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조목조목 반박을 당한 것이었다.

무함마드와 그의 일파는 서기 622년 근거지를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긴다. 수도를 옮겼다는 의미에서 ‘천도’(遷都, 아랍어로 헤지라)라고 부르는 이 해를 이슬람 원년으로 삼고 있을 만큼 이슬람 전체가 중요시하고 있다. 사실상 유대인 세력과 토호세력에 밀려 쫓겨나듯 이동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은 본격적인 군벌화의 길을 걷게 된다.

종교를 선포하면서, 이 종교를 믿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정벌하는 이슬람식 확산정책, 즉 ‘지하드 교리’가 채택된 것이었다. 이는 꾸란 8장 39절을 포함해 꾸란에만 25군데 이상 기록된 ‘지하드 구절’들을 통해 중요 교리로 정립됐다.

이 ‘지하드 교리’는 무함마드 사후 약 100년 사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 중앙아시아 일부에 심지어 바다 건너 이베리아 반도까지 아우르는 이슬람 대제국을 건설함에 있어 핵심 근거로 작동했고, 오늘날 하마스 등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에 걸친 이슬람화는 거룩한 전쟁 ‘지하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돼 있으며 이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무슬림이 져야 할 의무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하드’는 특별히 가장 먼저 ‘꾸란’ 1장 7절에 기록된 대로 저주받은 자(혹은 노여움을 받은 자)로 묘사되고 있는 유대인들과 같은 구절에 ‘방황하는 자’로 거론된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펼쳐야 하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은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가 꾸란 첫 장에 그 대상을 특정하고 꾸란에 25군데 이상 남긴 지하드 구절들을 통해 명령된 종교적·군사적 교리에 충실한 행위이다. 이를 통해 하마스가 이슬람교 권역에 속한 국가와 다른 세력들에게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동참하라고 호소할 당위성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계속>

김도흔 전 중동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