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YEFK)에서 설교
▲강변교회 원로 김명혁 목사가 25일 서울 서대문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YEFK)와 대흥교회를 방문해 청년들을 향해 신앙의 선배들의 헌신과 수고의 삶을 따라 걷기를 권고했다. 설교를 전하는 김 목사.
한국교회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KEF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목사)가 청년들을 향해 신앙의 선배들의 헌신과 수고의 삶을 따라 걷기를 권고했다.

김 목사는 25일 서울 서대문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대표 황민욱 목사, 이하 YEFK)와 대흥교회를 방문하고 ‘한국교회 신앙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의 복음을 향한 열정과 삶을 증거하며 이 같이 전했다.

YEFK의 지도교수이기도 한 김 목사는 ‘한국교회 첫 목사’(행 9:1~9)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길선주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태동케 한 1907년 부흥운동의 주역”이라며 “불교와 선도의 도사였지만, 29세 때 예수님을 만난 후 38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3천여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8백여 명을 목사와 전도사와 장로로 세웠고, 60여 개 교회를 세웠다”고 전했다.

마펫 선교사와 친구인 김종섭이 전해준 ‘천로역정’을 통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며 거듭난 일화를 전한 김 목사는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매일 한 시간 기도와 성경 읽기, 암송을 하고 영국 웨일스 지방의 부흥운동 소식을 듣고 새벽 4시 기도회를 시작했다. 1906년부터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에서 1,500여 명의 신자가 10일 동안 사경회를 갖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면서 평양대부흥의 시작을 소개했다.

그는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 최초 일곱 목사 중 한 명으로 안수를 받고 장대현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했다”며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서시다 2년간 옥고를 치르면서도 기도와 성경 읽기, 전도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이후 전국을 누비며 부흥회를 인도한 길 목사는 1935년 11월 26일 평남 고창교회에서 마지막 부흥회를 인도한 후 뇌출혈로 쓰러져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명혁 목사는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의 철저한 헌신과 수고의 삶이 있었다”며 “길선주 목사님은 회개의 삶,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삶이 얼마나 귀중한 삶인지를 몸소 보이셨다”고 했다.

김명혁 목사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YEFK)에서 설교
▲김 목사는 이날도 스티커를 어린이들에게 직접 나눠주며 ‘스티커 할아버지’로서의 인자함을 보였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신다. 우리들이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드리면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고 우리 민족의 운명이 바뀐다”며 “우리들도 그분의 발걸음을 조금씩 따라가면서 빛을 비추며 살기를 소원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난 2월에 이어 YEFK(대흥교회)에 두 번째 와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 감사하다”며 “이곳의 모든 성도가 길선주 목사님의 귀중한 삶을 이어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이날 김명혁 목사는 지난 3월 출간한 ‘사랑의 편지: 김명혁 목사님에게 어린이들이 보낸’을 YEFK(대흥교회)에 전달했으며, 축도 후에는 준비해 온 떡과 초콜릿, ‘스티커’를 성도들과 자녀들에게 직접 나눠 줬다.

YEFK 대표 황민욱 목사(대흥교회 담임)는 “하나님께서 길선주 목사님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혜가 전해지는 귀한 시간이었다”며 “저희 또한 신앙의 선배님들의 삶을 따라 이 땅 가운데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YEFK(Youth Evangelical Fellowship Korea)는 2004년 설립 이래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명을 따라 캠퍼스 복음화에 힘써온 국제 청년선교단체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회원단체다.

김명혁 목사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YEFK)에서 설교
▲예배 후 김명혁 목사와 기념촬영을 하는 한국복음주의대학생연합회(YEFK)와 대흥교회 성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