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 현충원 유공자 6.25 호국보훈 6월
▲꽃이 놓여 있는 현충원 국립묘지. ⓒ픽사베이
학창 시절엔 5-6월이 되면 김영랑의 시를 많이 읽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이하 생략)”.

그러나 최근엔 군가가 생각난다.

①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이 노래를 지은 한명희(韓明熙) 씨는 ROTC 2기로서 육군 소위로 근무했던 격전지를 돌아보니 곳곳에 녹슨 유품과 돌무덤과 막대기로 묘비를 대신하여 꽂아둔 비목(碑木)들. 달밤에 순찰을 돌면 쓰러진 전사자들의 절규가 허공에 돌아다니는 듯 환청에 소름이 돋았고 궁노루 울음소리마저 이름 없는 병사의 넋이 외치는 절규로 들려 그 기억들을 노랫말로 쓴 것이다.

이보다 더 먼저 불렀던 비장한 노래로 <선구자>가 있었다.

②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 용주사 저녁 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우리 자녀들을 생각하며, 옛날 우리들의 군 생활을 되짚어 보게 된다.

나는 다른 것은 곧장 잊어버려도 주민등록번호와 군번은 기억한다. 그만큼 군대 경험이 절실한 것 같다. 그때 동고동락했던 군대 동료들의 모습과 함께 외쳐 불렀던 군가들도 생각이 난다.

③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여/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입으로만 큰소리쳐 사나이라더냐/ 너와 나 겨레 지키는 결심에 살았다/ 훈련과 훈련 속에 맺어진 전우야/ 국군 용사의 자랑을 가슴에 안고/ 내 고향에 돌아갈 땐 농군의 용사다// 겉으로만 잘난체해 사나이라더냐/ 너와 나 진짜 사나이 명예에 살았다/ 멋있는 군복 입고 휴가 간 전우야/ 새로운 나라 세우는 형제들에게/ 새로워진 우리 생활 알리고 오리라”(유호 작사, 이흥렬 작곡/ 진짜 사나이).

④ “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거뜬히 총을 메고 나서는 아침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에 서광을 비추고 자 행군이라네// 잠깐 쉴 때 담배 피며 구름을 본 후,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이 매고서/ 힘 있게 일어서면 열려진 앞길, 주먹을 두 주먹을 힘껏 쥐고서/ 맑은 하늘 정기 도는 이 강산 위에 오랑캐 내쫓고자 강행군이다”(김영삼 작사, 김동진 곡/ 행군의 아침).

남자들끼리 모이면 군대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 고생을 많이 했을수록 더 재미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군대 얘기 듣기 싫고 축구 얘기 듣기 싫고 군대 가서 축구 한 이야기가 제일 싫다고 하지만, 남자들 세계에선 공동 운명체로 함께 고생한 군대 경험이 자랑스럽고 재미도 있다.

우리나라같이 남북한이 70여 년간 대치하고 살아온 입장에선 군대 경험이 유별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누군가 군대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젊은이와 부모들 마음엔 이해의 폭이 좁아진다.

다같이 고생하는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면 이유 불문하고 특혜를 누린 것 같고, 동지의식에서 벗어난(outsider) 것으로 생각된다.

김형태 총장
김형태 박사
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