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 어크로스 | 264쪽 | 14,000원

살리는 말에는 칭찬과 격려
죽이는 말에는 독이 가득해
그리스도인 살리는 말 해야

“말이 칼이 된다.”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말이 칼이 된다. 성경은 말이 칼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죄악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

말이 불의 세계가 되는 것은 사람이 말을 길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길들이지 못하니 말이 사람을 죽인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말에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결국 말이 중요하다.

말을 하게 하는 혀를 길들여야 한다. 혀에 따라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는 ‘살리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죽이는 말’이다. 이왕 말할 거라면,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살리는 말에는 칭찬과 격려가 담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죽이는 말은 독이 가득하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살리는 말, 세상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살리는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말이 칼이 되면 안 된다. 말은 힘과 격려가 되어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말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구원하는 말쟁이가 되어야 한다.

말이 칼이 된 현실 제대로 파헤치다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차별 되지 않으면 혐오표현 아니다?

세상의 말은 살리는 말보다는 죽이는 말 즉 칼이 되는 말이 많다. 아니 난무할 정도다. 말이 칼이 된 현실을 제대로 파헤친 책이 있다. 바로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인 홍성수가 쓴 책인 <말이 칼이 될 때>다.

저자는 ‘혐오표현’이란 말로 ‘말이 칼이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혐오표현’을 다룬 책이다. ‘혐오표현’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혐오표현’이란 ‘영혼의 살인(야스코)’, ‘말의 폭력(Matsuda)’, ‘따귀를 때린 것(LawrenceⅢ)’에 비유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혐오표현이 무엇이고, 왜 문제가 되는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참혹한 결과를 이야기한다.

세상을 살면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런 말이 혐오표현인 줄 몰랐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을 가려서 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혐오표현의 기준이 있는데, 바로 차별의 여부다. 차별이 되면 혐오표현이 되지만, 차별이 되지 않으면 혐오표현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혐오표현이 있다. 바로 기독교를 비하하는 말인 ‘개독’이다. 저자는 이 말을 혐오표현이라고 하지 않는다. 차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혐’이란 말도 혐오표현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어떤 말이 혐오표현인가? 2장에서 이를 알려주는데, 한국 사회의 대표적 혐오표현은 ‘김치녀’, ‘맘충’, ‘이주민’, ‘동성애’ 등이다.

혐오표현은 혐오 사회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사회가 혐오 사회가 된 기원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2013년 일베가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을 때 혐오 사회가 시작됐고,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가 새로운 이슈가 된 이후,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혐오의 시대, 말이 차별과 만나 폭발력
강자 아닌 약자에게만 혐오표현 사용
혐오표현과 편견혐오, 증오범죄 연관

혐오의 시대가 된 후, 말이 차별의 현실과 만남을 통해 폭발력을 가졌다. 이 폭발력은 결국 혐오표현을 본격화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혐오표현의 당사자들이 약자라는 것이다. 즉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들이 주 대상이 된다. 강자에게는 감히 혐오표현을 사용하지 못한다. 뒷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혐오표현을 함부로 사용한다. 뒷감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자 혹은 약자들에게 혐오표현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혐오표현이 사용되는 순간, 편견과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
▲ⓒpixabay

책 <말이 칼이 될 때>는 14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다루면 아래와 같다.

1장은 혐오표현은 무엇인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룬다. 먼저 혐오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혐오는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해체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그 다음 혐오표현을 다룬다. 그 이유는 혐오가 차별이 발생할 때부터 혐오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2장은 앞서 언급했고, 3장 ‘혐오표현의 유형’은 차별적 괴롭힘, 편견 조장, 모욕, 증오선동 등이다. 4장은 혐오표현이 반드시 해악으로 어이짐을 이야기한다.

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첫째,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의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둘째, 혐오표현은 누구나 평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셋째,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실제 차별과 목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5장은 혐오표현과 증오범죄를 이야기한다. 혐오표현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증오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다뤘지만,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란 증오범죄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5년 6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한 교회에서 총기난사로 아홉 명의 흑인이 사망했다. 범인은 21세 백인이었고, 흑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했다.

증오범죄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편견이 동기가 되면 발생한다. 증오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러면, 혐오표현을 하지 않아야 한다. 편견 혐오, 혐오표현, 그리고 증오범죄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6장은 역사부정죄와 혐오표현이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유럽은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 문제, 우리나라의 5.18 왜곡 등은 역사부정죄에 해당된다.

5.18 왜곡이 역사부정죄에 해당되는 이유는, 5.18 유공자와 호남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지역 차별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규제보다 시민사회 성숙이 대안
미국, 더 많은 표현으로 ‘최고의 복수’
일본, 혐한 표현에 맞선 ‘카운터 운동’

7장부터 12장까지는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기에 생략하고자 한다. 저자는 7장에서 12장까지에서 차별금지법을 만들자고 한다.

법은 또 다른 법을 낳는다. 결국 악법이 된다. 법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하기도 하지만 더욱 법이 악용되는 측면도 많다. 그런 이유로 법을 만들자는 데 생각이 다르다. 모든 것을 법제화하자고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법은 또 다른 법을 만든다. 당장을 위한 법보다는 미래를 의한 성숙된 시민 사회를 만들고자 해야 한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2장은 혐오표현 규제에 있어 정치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저자는 정치인과 사회 유력 인사들이 여기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실제적으로 정치인이나 사회 유력 지도자들의 입장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편견이나 차별 그리고 혐오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가들이 만드는 것이 많음을 생각하면, 정치인에게 무엇을 기대야 할지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14장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항 표현’으로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혐오표현을 하지 않게 하는 두 가지 대안을 저자가 제시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미국의 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의 예이다.

책 9장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이야기한다. 유럽식 접근인 규제 찬성론과 미국식 접근인 규제 반대론이다.

저자는 금지와 허용의 이분법을 넘어, 더 많은 표현이 격퇴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도 이 방향에 동의한다.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모두 규제하면, 자유주의 국가가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인 미국을 8장에서 다루고 있다. 미국은 혐오표현에 대한 형사처벌 관련 법률이 일체 없다. 그것은 미국 수정 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의 위상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견지하는 것은 ‘더 적은 표현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 최고의 복수’라는 생각 때문이다. 적정한 법의 테두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성숙된 시민들이 자유로운 표현을 거를 것은 걸레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음으로 14장의 일본의 예이다. 14장에서는 혐오표현을 ‘대항 표현’으로 맞선 예를 이야기 한다. 도쿄의 혐한 시위대가 신오쿠보에서 시위를 했다. 그들의 구호 중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착한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다 죽여라”, “바퀴벌레 조선인을 몰아내자!”

일본 혐한 시위대는 극한 혐오표현을 써가며 시위를 했다. 이에 맞서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일본에서는 ‘카운터(Counter) 운동’이라 부른다. 카운터 운동을 주도했던 간바라 하지메 변호사는 카운터 운동의 성과를 이렇게 요약한다.

첫째, 혐오표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줄였다. 둘째, 혐한 시위 확산을 막았다. 셋째, 여론을 환기했다. 넷째, 국제연대의 계기가 되었다. 다섯째, 민주주의를 풍요롭게 했다.

아주 현실적인 성과도 있었다. 바로 의회에서 헤이븐 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두 예는 아주 현실적인 대안이다. 먼저 혐오표현에 맞서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다음으로 표현의 자유를 늘림으로써, 혐오표현이 설 자리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공존의 사회 위해 혐오표현 안돼
혐오표현 막는다고 표현 막으면
또 다른 언어의 감옥 탄생될 뿐

혐오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저자는 제러미 윌드론의 ‘공존과 공공선’을 누스바움의 ‘인류애의 정치’를 들어, 공존의 사회를 만들 것을 이야기한다.

혐오표현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를 억제하고 같이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적 역할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제약만이 만능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제시된 미국과 일본의 예를 통해 대안을 찾아가는 해법에 마음이 끌린다.

‘풍선효과’라는 것이 있다. 법적 조치를 취하면 또 다른 분야에서 소수자가 발생한다. 풍선효과처럼 혐오는 또 다른 곳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천투데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다. “‘혐오 발언’ 혐의로 목사 체포했던 英 경찰, 결국 보상금 준다” 이는 법의 제도로 인해 파생된 풍선효과다. 기사 부제는 “‘부당 체포’ 시인… 표현의 자유, 반드시 보호받아야”였다.

필자는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젊은 시기를 보냈다. 그 때, 삶은 지옥과 별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혐오표현 문제를 제재하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 그러므로 법적 해결보다는 시민사회가 성숙해진, 미국과 일본의 예를 따르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초 영국 경찰은 나이지리아 출신 길거리 전도자 일레산미 목사를 체포하고 그의 성경책을 압수했다. 그 뒤 경찰은 결국 그에게 3,000달러(약 355만 원)의 보상금을 지불하는데 동의했다.

그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혐오발언을 했다며 누군가 경찰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혐오발언은 영국에서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 일레산미 목사는 런던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체포되고 잘못된 대우를 받았다고 판단받았다.

그녀는 ‘기독교연대’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영국법은 대중들을 상대로 한 설교의 자유를 지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경찰 관계자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누군가의 첫 신고만으로도 설교자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 결과는 자기 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오싹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삶이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구조다. 세상이란 법으로 제재하면 성숙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곳이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구조가 더 필요하다.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막아버리면 또 다른 언어 감옥이 된다. 나아가 삶이 감옥과 같이 된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쪽으로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려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어렵고 돌아갈지언정 명백한 답이 되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자유주의 국가는 자유의 가치를 가장 먼저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제도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해결하고자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지금의 자유의 가치도 존중받으며,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정체성도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

저서로 <설교는 인문학이다/ 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 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 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 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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