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대담
▲왼쪽부터 김철영 목사, 김명혁 목사, 박종화 목사. ⓒ이대웅 기자
남북한 통일, 동북아 전체의 평화가 전제돼야

종교와 민족주의를 넘어서 모두를 끌어안아야
모두 사랑으로 끌어안을 지도자 6명만 있어도
몸이 아닌 ‘지체의 리더십’ 갖고 ‘화이부동’해야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와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가 ‘이승훈 장로님의 3.1운동의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대담을 개최한 가운데, 각자 발표 후에는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토론이 이어졌다.

다음은 지난 21일 오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열린 토론 주요 내용.

-두 분의 훌륭한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승훈 장로님께서 지금 살아계시다면, 핵문제 등으로 가로막힌 남북한 관계에 있어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박종화 목사: 이승훈 선생님은 민족 독립은 지상 과제이고, 나라가 독립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억눌리고 착취당하며 살아간다면, 독립하나마나 아니겠습니까. 아프리카 국가들도 당시 독립은 했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식민지로 있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갈라디아서 말씀을 재해석한 것입니다. 이승훈 선생님은 민족을 사랑하지만, 민족주의는 아니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남북만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락 복지와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싫으나 좋으나 주변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까지 4개국과는 형제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과는 식민지 설움이 있었고, 러시아와 미국은 우리나라를 해방시켰지만 점령했고, 중국은 사드 거부 등을 놓고 갈등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일을 하되,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남과 북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주변 국가들과도 오손도손 잘 살아야 오래 평화로울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한의 평화로운 통일을 원하면서, 이 평화는 동북아 전체의 평화가 전제된 평화여야 합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평화와 통일을 무력으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도 안 되고, 핵무기로는 더군다나 안 됩니다. 전쟁이 아닌 비폭력적 평화로 가야 합니다.

비폭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전쟁 없는 평화입니다. 착취가 없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남북간 평화 운동을 해야 합니다. 평화 없는 통일도 불가능하지만, 평화 없이는 통일도 안 되고, 그렇게 되면 자유도 없을 것입니다. 100년 전 이승훈 선생니과 같은 이야기를 지금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승훈 선생님은 만민공동회에 참석하면서 민족 사랑의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그 분의 성품 자체가 평등과 자유를 선호하셨던 것 같습니다. 공장을 경영하면서도 반상 제도 같은 차별을 철폐해 노동력 향상이 일어났습니다.

김명혁 목사: 박종화 목사님이 설명을 너무 잘 해 주셨습니다. 독립이지만, 아시아의 평화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승훈 장로님은 민족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옛날 사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모두를 품고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셨습니다. 템플턴상 받았을 때도 상금을 잠깐 갖고 있다, 다 주시면서 ‘북한 동포 돕는 데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수준이 높았습니다. 민족주의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떤 지도자 목사님은 일본이 패망해서 떠날 때 ‘잘 가라고 하라’고, ‘일본놈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수준이 높았습니다. 일본과도, 중국과도, 러시아와도 화해하면서 평화를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천도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 있으면 기독교인들이 욕을 하지만, 100년 전 3.1운동 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나라를 위해 협력했습니다.

지금 장로교 교단이 300개 있다고 합니다. 다들 우리 교파만 옳다고 싸웁니다. 이런 것들을 없애고, 이승훈 선생님이 종교와 민족주의를 넘어 다 끌어안았던 모습을 배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북한 동포들도 끌어안아야 합니다.

2019년 3월 대담
▲왼쪽부터 김철영 목사, 김명혁 목사, 박종화 목사. ⓒ이대웅 기자
-오산학교가 예수 믿기 전에 설립했지만, 이승훈 선생님이 예수를 믿은 뒤 기독교 교육을 통해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변절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얼마나 가슴 아프고 비탄하셨을까요.

박종화 목사: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에게 일제의 압박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1919년 3.1운동 전까지 일제는 소위 헌병 통치를 했습니다. 무자비하게 탄압했지요. 하지만 그 탄압은 오히려 견뎌내기 쉬웠다. 이후에 시작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 문화 통치를 견뎌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전에는 무력으로 했다면, 이제는 정신을 빼가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들뿐 아니라 스님 신부님들도 많이 변절했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일부 목회자들이 내선일체를 주장한 이유는 앞에서 설명했던 ‘독립 청원적 입장’이 아니었을까요.

일제 하의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섭리로 좋게 받아들이면서, 우선 고난을 받으면서 일본을 향해 청원하는 것입니다. 모두 독립은 원했지만, 그 방법이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노(No)’가 아니라, ‘봐주시오’ 정도의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나서 압력에 못 견딘 것은 이러한 사고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만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교황은 히틀러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체제이니 복종하라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히틀러 치하에서 천주교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는 3.1운동 당시 일제 침략을 ‘승복해야 할 체제’로 보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어느 신부가 그를 파문시키기도 했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교황의 정책에 의해, 일본 식민지 체제를 인정하고 종교의 자유만 누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은 ‘그건 교황 이야기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일입니다. 공적 승복과 개인적 승복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승훈 선생님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가장 나중에 출옥했습니다. 일제가 볼 때 제일 악질로 보았던 것이지요. 이승훈 선생님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지조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물산장려운동을 ‘개량주의’로 비판하는 역사학자들도 있습니다.

이승훈 선생님이 변절자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배반할 줄 알고 서명한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인간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욕의 역사이지만, 이승훈 선생은 탓하지 않되 자신은 주기철 목사님처럼 끝까지 지조를 지켰습니다. 개인적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민족적 신앙을 고백하고,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주의’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떼낼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 권세에 복종하라고 했던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 문제가 다시 떠오릅니다.

김명혁 목사: 인간은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이승훈 선생님도 마지막까지 고문을 당했지만, 변절자들에 대해 나름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로마서 13장 문제를 보면, 모든 권세를 다 인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쁘다고 다 때려부술 수도 없고, 나쁜 권세도 하나님이 어떨 때는 이용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권세를 정당하게 보라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나쁜 권력이 있다면 바뀌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봐도, 신앙의 선배님들은 나쁜 정부를 때려 부수기보다는 변화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승훈 선생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 선배들이 귀중합니다. 배신자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변절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가 보다 하고 가야지요. 이 땅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다 사랑하셨으니, 민족주의자보다는 일본도, 무슬림도, 공산주의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가져야겠지요.

제 고백을 하자면, 공산주의도 무슬림도 순수한 사랑으로 다가가면 다 마음에 감동을 받고 움직이는 모습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모두를 사랑으로 평화롭게 끌어안을 수 있는 민족의 지도자가 6명만 있어도, 나라가 이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입니다. 6명만 있으면, 대통령도 제멋대로 못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너무 귀중하고, 그 중 한 분이 이승훈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더 감동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 사재를 다 털어서까지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그런 한국교회가 총회적으로 신사참배 가결까지 간 것을 보면 결국 지도자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승훈·조만식 장로님처럼 평신도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해 보이는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한 말씀을 부탁드린다면.

박종화 목사: 3.1운동을 했던 이승훈 선생님에게는 ‘자기희생적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일단 민족대표 명단에 포함됐다면, 변절하지 않는 한 처벌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십자가 이름으로 서명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3.1운동은 누구 혼자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인들만 한 것도 아닙니다. 33명 중 절반 정도인 16명이 서명했습니다. 이처럼 ‘나홀로 지도력’이 아닌, ‘함께 지도력’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에 중요합니다. 한국교회는 ‘나홀로 권력, 패거리 권력, 우리끼리 권력’ 때문에 갈라져 왔기 때문입니다. 함께의 힘, 함께 나눔이 있다면 과연 갈라졌을까요. 진정한 지도력은 합치는 것이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북간 문제, 세계적인 여러 문제들도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기 중심으로 하면 갈라지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하자면 안 갈라지고 다양하게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몸의 리더십이 아니고 지체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체일 뿐인데, 마치 자기가 몸 전체인 양 자기 중심으로 모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정통이 아닙니다.

지체는 다양하지만, 다 몸에 붙어있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같지 않지만 화(和), 평화, 조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훈 선생도 다름 속에서 ‘화’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민주적 지도력이고, 기독교 신앙의 바탕입니다. 화의 지도력이 평화의 지도력입니다.

김명혁 목사: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박 목사님이 자기 희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독립선언서 서명을 앞두고 누구 이름을 먼저 쓸지 갈등할 때, 이승훈 선생님이 ‘죽는 순서다.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라고 하셨습니다. 죽기를 원하는 것, 희생이 참 어려운 일인데, 본받을 수 없을까요.

희생하면 가난해지고 고난당하게 됩니다. 부흥사 이성봉 목사님은 거지로 살았다. 전국을 다니며 받은 사례비를 집에 가져온 일이 없었습니다. 손양원·주기철 목사님도 거지처럼 사셨지요. 딸 손동희 권사와 아들 주광조 장로가 고아원에서 커야 했습니다. 신앙의 선배님들 중 부자가 없었습니다. 이승훈 선생님도 고난을 짊어지고 사셨고, 가난해졌습니다.

둘째는 협력과 화해입니다. 교단 간에도 일부러라도 강단 교류 등을 해야 합니다. 구원이 첫째라면, 마지막은 화해와 평화와 통일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점점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를 끌어안는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나라도 새로워지지 않을까요.

-이승훈 선생님 같은 믿음의 선배와 지도자들이 젊은 세대 가운데 점점 잊혀지고 있는 가운데, 귀한 말씀들을 통해 교훈들을 얻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