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라반, 삼손, 압살롬… 구약의 실패자들에게서 나를 발견하다

입력 : 2017.12.03 17:53

[방영민의 책숲산책]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다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이자 열렬한 독서가인 방영민 목사님의 살아있는 서평을 ‘책숲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정기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말씀 앞에 서는 용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 | 이레서원 | 256쪽 | 12,000원

'구약 인물의 실패에서 배운다'는 부제가 신선하다. 경쟁과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부추기는 현대의 질서와 문화 속에 실패도 서러운데, 그걸 통해 배움을 준다는 도전이 무모해 보이기도 하다. 모두가 이기려 하고 움켜쥐려 하는 척박하고 각박한 시대에 이기는 방법과 인생의 비단길을 걸을 수 있는 비법을 전해주면 좋으련만, 인생의 실패를 샅샅히 조사하고 있다. 인물의 영웅담이면 위로라도 되겠건만, 인물의 가장 약한 면만 세밀하게 스캔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생애 첫 책이다. 그만큼 애정과 관심과 사랑을 쏟았을 것이다. 필자 또한 글을 읽으며 저자의 노력이 느껴졌고, 말씀을 현실과 청중에게 적용시키기 위한 목회자의 가슴과 하나님 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설교자의 심정도 보였다. 저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 오늘도 우리를 바르게 인도한다는 확신에 차 있는데, 그가 걸어 온 삶의 결과물을 보는 것 같았다.

필자는 한 번씩 생각해 본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가지고 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엇을 보실지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큰 업적과 명성을 쌓은 사람을 향해서는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시는 반면, 내놓을 것 없는 삶을 살다 온 사람에게는 거침없는 책망하실까?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명예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고, 그분은 분명히 다른 기준으로 우리를 대하실 것이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내 안에 품어, 그분처럼 살고 싶어지는 열정이 가득하다. 그 말씀은 우리 내면을 바꾸고, 우리 인격을 다듬어간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지만 욕망의 향기를 날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진흙 바닥에서도 장미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존재와 인격을 변화시켜 가고, 우리는 이 변화된 인격과 십자가와 사랑의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던 것은 존재의 변화를 통해서였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명예와 성공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펼쳐가지 않으셨다. 한 영혼의 깨어짐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 어떤 유혹과 시험에도 쓰러지지 않는 인격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방법이었다. 모두 존재와 인격의 소중함을 모른 채 가시적인 것만 추구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거울을 보여주시며 실존을 보게 하신다.

이 책은 구약에서 성공한 인물이 아니라, 실패한 인물 10명을 다룬다. 가인을 통해 우리의 감춰진 폭력성을 고발하고, 라반을 통해 숨길 수 없는 갑질 본능을 보여준다. 바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적 문제인 고집이 심각한 죄라는 것을 깨닫고, 아간의 이야기를 읽으며 괴로움의 뿌리인 탐욕은 우리가 철저하게 제거해야 하는 악의 뿌리임을 절감한다. 삼손에게서 이기적인 사랑의 심각한 결과를, 사울을 통해 인정에 매달리는 가엾은 인생의 비참함을 본다.

압살롬에게선 이미지와 조건과 외형은 화려하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과 단절된 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게 되고, 아합에게서는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성과 마음의 어두움이 얼마나 자신과 나라를 병들게 하는지 보게 된다. 게하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공감하지 못하고 세상에 공감하는 자의 말로를 보여주고, 엘리바스와 빌닷, 소발을 통해서는 따뜻한 마음이 없는 자의 논쟁이 얼마나 무모하고 소비적인지 보게 된다.

책은 이렇듯 열 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의 숨겨져 있는 악과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마주하고 싶지 않고 거부하고 싶은 면들인데, 한 번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에 걸쳐 씨름하고 이겨내야 할 죄악들이다. 신앙생활에서 죄의 소멸은 하나님의 소멸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죄의 본질은 말씀을 통해 반드시 드러나고 고쳐져야 한다. 나는 아닐 것이라 말하고 싶지만 말씀을 듣노라면 그게 나라고 인정하고 엎드리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거울처럼 보여준다는 점이다. 내 안에 숨겨진 악한 본능과 거짓을 폭로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과 인격 형성에 도움을 준다. 한 인물을 둘러싼 삶과 배경과 사건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죄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지 폭로한다. 그것을 통해 바로 나를 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 가던 길을 멈추고 인생 길을 조정하여 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려오는 여러 소리들 중에서, 듣지 말아야 할 것과 들어야 할 것을 분별하게 한다. 여러가지 분주함 속에서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한다.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되는 사람인지 하는 정체성과 사명을 일깨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돕는다.

두 번째 특징은 저자가 그때의 말씀과 인물과 사건을 오늘의 말씀으로 들려지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말씀을 오늘의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그는 다양한 예화를 사용하고 적용한다. 신문 기사, 시와 소설, 영화와 각종 통계 자료 등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접촉점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적절한 연결이 되어 말씀을 현실성 있게 들리게 해준다.

그때의 말씀이 오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이지만 동시에 내재적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사회와 관계하시며 우리의 삶에 침투하신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운동력이 있다. 그러한 말씀이 이 시대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관계될 때 우리는 더 피부로 말씀의 적실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책을 통해 성경공부나 인물 설교를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강해 설교라 하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사를 다루며 그가 가진 약점과 결함을 주제 삼아 글을 쓰다 보니, 본문에서 드러나는 의미가 왜곡되고 틀어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주제별 설교나 그룹별 성경공부를 할 때 풍성한 나눔과 교제와 사귐을 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자신과 교회를 살피며 회복하는데 귀한 도구가 될 것이다.

실제 챕터마다 토론과 나눔을 할 수 있는 좋은 질문들이 있다. 책을 읽은 후 개인의 묵상과 적용도 의미가 있지만, 신뢰하는 공동체가 함께 나눈다면 그 말씀과 적용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고 그분의 구원은 공동체적이며 또한 우리의 인격은 공동체에서 다듬어지고 형성되는데, 책을 통해 이러한 나눔으로 더 연합되는 일도 기대해 본다.

끝으로,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숫자와 기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행사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과 부흥을 외쳐도, 먼저 자신을 향한 개혁과 부흥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을 안다 하고 믿음이 있다고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실제 내 안에 역사하고, 그 믿음이 나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를 고쳐가고 개혁해 가기를 원하신다.

실패한 인물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내다본다. 한 인물의 삶을 보면서, 내 안에 병들고 무너진 것과 숨겨져 있는 것을 본다. 아프지만 나에게 먼저 적용시킨다.

책을 보며 좋았던 것은, 저자가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지식도 있고 통찰력이 있으며 정성껏 글을 쓴 흔적도 보였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먼저 이 말씀을 적용시키고 아파했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성공한 인물들 아니 실패한 인물, 이들이 우리의 모습 아닐까....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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