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5년 5월 3일
본문: 창세기 17:9~14, 골로새서 2:11~15
설교: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담임)
제목: 세례, 영원한 언약의 표징

▲이수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많은 교회가 어린이주일에 유아세례식을 거행하곤 합니다. 우리 교회도 오늘 3부와 4부 예배 때는 유아세례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교회가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주장은 첫째로는 유아세례에 대한 분명한 성경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세례는 개인적으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받아야 하는데 유아들은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가 왜 유아세례식을 거행해 왔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해를 위하여 오늘 두 본문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본문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시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은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언약관계에 있는 백성에게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표징을 주셨는데 그것이 할례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과의 언약 아래 있는 백성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할례를 몸에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해야 하며,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렘4:4, 6:10, 겔44:7, 9). 신10:12-16의 말씀 하나만 들어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이 말씀의 제일 끝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한 마디로 목을 곧게 하지 않는 것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을 곧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길게 설명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임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려면 성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아에게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남자 아이에게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주체적이고 명확한 신앙고백을 하며 그 실천적 삶을 사는 마음의 할례도 중요하지만, 그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언약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서의 몸의 할례도 중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으로 옳다 그르다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들이 아들들에게 몸의 할례만 행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마음의 할례를 받도록 가르치는 일에는 소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들들에게 행한 몸의 할례가 마음의 할례에 이르도록 부모들은 양육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6:-9의 말씀입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두 번째 본문은 옛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의 할례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세례의 의미 있는 관계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본문 11절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 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그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부릅니다. 모세의 율법 아래서 손으로 몸에 행하던 할례와 대비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행하지 않는 마음의 할례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하기를 “육의 몸을 벗는 것”이라 합니다.

“육의 몸을 벗는다”는 말의 뜻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뒤따르는 본문 12-15절에서 그 뜻을 설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시 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육의 몸을 벗는다”는 바울의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그를 믿는 믿음으로 그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에 대하여 죽고 그 안에서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죄의 용서를 받고 죄와 악한 권세의 지배를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6:3-4에서도 이렇게 썼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본문 11절에서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와 “그리스도의 할례”를 말했습니다. 또 본문 13절에서는 “육체의 무할례”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그 사이인 본문 12절에서 “세례”를 언급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옛 이스라엘 백성의 할례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세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가 할례와 꼭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할례에 상응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대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옛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를 명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옛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할례의 명령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 사이의 밀접한 관계성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즉 새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아세례에 관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거나 유아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주체적이고 명확한 신앙고백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의 논리적 근거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믿음을 갖게 된 부모들이 또한 성령의 역사로 그들의 자녀들도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여 유아세례를 받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고 믿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어린아이의 심령에 믿음의 씨가 뿌려지고 뿌리 내리며 싹을 틔우고 자라서 열매 맺게 하시리라고 믿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모의 품에 안겨 세례식에 참여하는 유아들이 성인과 같이 반응할 수는 없어도 성령께서 그들 안에서 놀랍게 역사하시며 훗날의 언젠가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게 하시리라고 믿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과 소망 가운데 유아세례를 베푸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하신 명령 속에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과 함께 하신 말씀에 우리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즉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들들의 몸에 행한 할례가 마음의 할례에 이르도록 잘 양육할 책임이 주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 뿐 아니라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할 의무가 주어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어린이주일을 맞아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기를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