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새라 코클리 | 정다운 역 | 비아 | 128쪽 | 9,000원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그 의미에 대해 마음은 무뎌지고 생각도 관념화되어 버릴 때가 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날을 정하고 행사를 가져도 사람은 둔해지기 쉽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놓지 말아야 한다. 특히 그것이 과거의 의미를 넘어 지금 우리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며 마치 지금 심장이 뛰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비록 그것을 의식하건 아니하건 우리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그러하다. 우리의 구원뿐 아니라 교회의 중심이고, 우리가 고난주간과 부활절만이 아니라 매 주일 되새기고 우리의 기도에도 관용처럼 늘상 사용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그 십자가의 뜨거움과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모른다. 그들은 십자가에 대해 누구보다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누가 묻더라도 그들은 정답을 이야기하고 교리적 특성을 가지고 답변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곧 그 정확함만이 신앙에 대한 뜨거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적 정확함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확함만으로는 생명력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학자들이나 목회자 중에도 교리적으로 올바른 설교와 강의, 그리고 책을 씀에도 마치 죽어있는 표본 같은 신앙, 마치 가사(假死)상태에 있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본다.

물론 어떤 이들은 뜨거워 보이긴 하지만, 정작 잘못된 이해와 병든 신앙을 가진 이들도 있다.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져 들었거나, 교회에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 열정이나 뜨거움이 오히려 그들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심한 표현으로 마치 죽은 시체에 전기 자극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게 하는 것 같은 신앙, 또는 자신이 죽은 지 모르는 좀비 같은 신앙인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결국 그 신앙고백과 의미를 내 것으로 계속적으로 체화시키고 곱씹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매일 대하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의미를 재해석 하는 내밀화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명상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사실 요새 기독교 서적 중에 인기 있는 적지 않은 책들과 서적들이 이런 경향이 있다. 그 의미를 체화하기 위해 들은 명상이나 묵상이라는 이름으로 각 신앙적 의미를 되새기고 재해석하긴 하지만, 좀더 나아감으로 심각하게 또는 미세하게 그 신앙적 골격의 틀에 균열이나 변형을 가져 오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색다른 해석과 그들의 해석 중 의미 있는 몇 가지들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엄청난 지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십자가의 모습을 변형시켜 우리에게 전달되게 한다면 그것은 득보다 해가 더 많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십자가: 사랑과 배신이 빚어낸 드라마'의 저자 새라 코클리도 어떤 점에서 기존의 우리의 고백을 체화시키고 내밀화시킨다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저자들과 같은 유사점을 보여준다.

앞선 저자들이 마치 뿌리는 땅에 내리고 있지만 그 줄기는 억새마냥 그 중심마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라면, 저자는 수백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태풍에도 그 중심 줄기는 흔들리지 않고 그저 잔 나뭇가지와 잎이 거세게 파도치는 모습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신학적 그 토대는 견고히 서면서도, 신앙적 자유로움과 깊은 이해와 재해석을 보여준다. 마치 그의 글은 과거 교부들의 경건성을 가지면서도 시나 산문 같은 자유로움과 부드러움, 그리고 감성적 터치를 보여준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 전후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우리에게는 구원이고 신앙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이 일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겪는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처럼 주님이 직접 겪으신 일이고 감성적으로 육체적으로 느끼신 것이라면, 우리도 신학적 의미를 넘어 우리의 감성적 이해와 그 의미가 갖는 파장을 묵상하는 것은 그 십자가를 깊이 우리 가슴에 박음으로써,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이해하는 것임을 이 책은 도와준다.

마치 어떤 소설을 읽었을 때와 영상으로 느끼는 것이 다르고, 4D 영화나 VR로 체험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꼭 이 십자가만이 아니더라도, 성경의 여러 가지 사건과 말씀들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성경 이해의 폭을 넓히고 체화시키는 데 더 큰 도움을 받을 듯 싶다.

이번 주 고난주간을 맞고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을 깊이 다시 새기고 타오르게 하기 위해 좋은 디딤판이 될 것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며 새롭게 부활절을 맞이하시기를....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