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
▲북토크가 진행되고 있다. ⓒ김은애 기자

두란노서원이 신학자 김세윤 박사(미국 풀러신학교 신약학 교수)의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출간을 기념해, 22일 오전 서울 서빙고 두란노서원 사옥에서 '북토크'를 개최했다. 다음은 이날 주요 문답 내용을 정리한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남녀 평등의 새 법을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병이어 사건에서 왜 여자는 계수하지 않았나?

"원래 하나님의 창조의 뜻은 남녀가 동등한 것이었지만, 인간과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 타락의 구조 속에서는 남녀 불평등이 생겨, 한쪽이 더 큰 물리적 힘으로 지배하고 다른 한쪽은 물리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종속당하고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유대 사회 속에서 여자들은 인격체로 취급되지 않았다. 숫자를 셀 때 남자만 셌으며, 여자는 남자의 재산 목록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가장 상징적 증거가 신명기 법에 의하면 여성은 증인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남자는 쉽게 이혼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의 이혼 금지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면, 이는 단지 이혼이 옳지 않다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이혼당하면 의지할 곳이 없어지는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뜻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여성 해방 가르침이 얼마나 혁명적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타락의 죄성이 계속되는 동안에,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남녀 평등으로 향하는 과도기에 있던 것이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부활로 뒤집어 엎으신 것이다. 책 제목이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인데, 구속 전까지는 여성이 사람 수에 포함되지 못했다. 인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비극의 역사를 종말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남녀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으셨으나,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셨고 여성 제자들에게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부활의 첫 증인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세우신 것이다. 이것은 신명기의 법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신명기 법을 무시하시고 그를 첫 증인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누가에 따르면 사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다. 신약복음서는 그것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고 그대로 전승했다."

-예수님은 왜 열두 제자에 여자를 하나도 포함시키지 않으셨나?

"예수님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양보라고 할 수 있다. '열둘'을 세운 것은 종말에 창조되는 새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사단과 죽음의 통치 아래서 회개함으로 나와서, 의와 사랑으로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고 충만한 잔치에 참여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복음에 응한 사람이 예수께서 새롭게 창조하는 종말의 새 백성, 새 이스라엘이다. 

당시 유대교의 상황에서 예수께서 그 상징적 열둘을 단 한 명이라도 여자로 채우셨다면, 그의 하나님나라 복음은 얼마나 큰 저항과 비판을 받았겠는가. 때문에 아무리 예수께서 혁명적으로 남녀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싶으셔도 그 상징적 열둘에 여자를 끼워넣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한 것으로 보시고 그것을 옹호하시면서도, 보다 크고 본질적인 하나님나라의 메시지를 위해 문화적 적응을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열둘 중에 여자를 하나도 끼워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교회에서 여성의 대표성이나 리더십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여자들을 부활의 첫 선포자들로 세우신 뜻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김세윤 박사
▲김세윤 교수(가운데)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김보경 부장(두란노서원), 오른쪽은 박용범 목사(두란노서원). ⓒ김은애 기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35)는 구절, 어떻게 봐야 하나?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교회에서 예언하고 방언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고린도교회에서 예배 도중 중구난방으로 방언하고 예언하여 무질서한 상황을 빚은 것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공예배에서 방언보다는 예언하는 것이 낫고, 방언과 예언은 두세 사람만 할 것이며, 방언에는 통역이 있어야 하고, 예언도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하지 말고 한 사람씩 차례대로 하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 성경에는 괄호로 돼 있다. 많은 주석가들은 34-35절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아마도 영지주의 여자들이 교회의 공예배 시 성경 해석이나 교리에 대해 질문해 대고 논쟁을 벌이는 시끄러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짐작해 볼 수 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을 들이대며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막는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고전 11장을 보면 바울은 여성이 설교하는 문제에서는 잠잠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복장만 단정히 하라고 할 뿐이다. 이 구절을 교회 내에서 여자들의 설교나 가르침을 막기 위해 인용해서는 안 됨을 알지 못하고, 그 목적을 위해 계속 오용하는 것이다.

목사님들이 문자주의·율법주의적으로 성경을 가르칠 게 아니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잘 가르쳐서 성도의 성경 해석 수준을 올려야 한다. 성도를 그냥 어리석은 대중의 상태에 두고 성경을 무조건 믿을 것만 강조하니까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을 오도해 성도를 우중의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여성들이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이나 쉽게 안수를 주는 교단에 가서 안수를 받는 상황에 대해 우려되는 점은 없는가.

"특별히 우려되는 점은 없다. 보수적인 교단에서 남자라면 당연히 안수받을 수 있는 공부와 훈련을 한 여성에게도 안수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 여성은 다른 교단에서 안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크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한 교단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교회와 교단은 그리스도의 양 떼를 목양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교단을 옮겨서 안수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 이 교단에서 안되니까 옆 교단에서 받는 것이다. 도리어 한국교회의 교단의 벽을 허물어서 좋은 현상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단에서 안수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분한 마음을 품고 타 교단에서 안수를 받으면 안 된다. 분노심과 적개심으로 반발하기 위해서 안수를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소명과 헌신, 이런 정신을 가지고 안수를 받아야 한다. 

쉽게 안수를 주는 교단에 가서 안수를 받는 문제는 남자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이라고 해서 더 걱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안수는 있어선 안 된다. 이것을 걱정해야지, 여자라서 걱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