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입력 : 2016.02.10 15:07

[서평] 미로슬라브 볼프의 「알라」

알라 볼프 좌담회
▲알라, 미로슬라브 볼프, 백지윤 옮김, IVP, 416쪽, 22,000원.

필자는 언젠가 미용실에서 터키 무슬림을 만난 적이 있다. 우연찮게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종교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에 긍정적 의미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무슬림의 수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이슬람교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증가하고 있으며, 무슬림을 위한 법률이나 정책도 고려 대상이다. 

이 와중에 이슬람교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 조금씩 소개되는데,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신학적, 특히 '실천적' 대화를 주선한 책은 미로슬라브 볼프의 것이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인 듯하다. 그동안 기독교 출판계는 주로 마크 가브리엘 같은 극단적 개종자의 책이나 소위 '이슬람 선교 전략'만을 출판해 왔는데, 이번 IVP 출판사의 「알라(IVP)」 출간 결정은 이슬람교에 대해 막연한 인상만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의의가 있다.

볼프는 탁월한 신학자다. 삼위일체에 대한 그의 이해는 전통적이며 동시에 신학적 깊이도 있다. 사실 그는 이미 앞서 「삼위일체와 교회(새물결플러스)」라는 훌륭한 책을 썼다. 그리고 그 책에서 삼위일체론 이해에 있어 각 종파마다 본질적 차이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참된 삼위일체론은 종파 간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해당 책의 내용이다. 그리고 「알라」는 그와 조금 다른 정치적 기획이지만, 논리적 전개 방식은 유사하다. 참된 유일신 신앙은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공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의 논쟁적 책, 「알라」에 대한 오해가 많다. 볼프는 단 한 번도 이슬람교의 신과 기독교의 신이 '완전히' 똑같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중요한 차이에 대해서는 '논쟁거리'로 남겨두고, 공통점에 집중할 뿐이다. 그리고 미묘하지만 볼프는 두 가지 전제를 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동시적 고려 없이는 엉뚱한 손가락질을 하기 쉽다. 

우선 실제로 유일한 창조주 신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그는 철저히 존재론적으로 유일신을 주장한다. 또한 그는 그 신이 사랑과 자비의 신이라는 '존재론적' 주장을 한다. 이 두 전제를 무시하면, 그저 "신에 대한 인식론적 차이가 우상숭배를 가져오므로 볼프의 주장은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하기 쉽다. 다르게 말하자면 볼프는 세부적 차이는 있지만, 신성의 본질에 있어 '인식론적'으로도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같은 신'을 섬긴다고 주장한다. 성경과 꾸란 모두 유일신을, 그리고 그 유일신의 성품이 사랑임을 정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 신앙에 있어 삼위일체는 본질 중의 본질이지만,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이해한다기보다 삼신론 아니면 양태론에 매여 있다(역사 속 신학자들이 발전시킨 그 엄밀한 철학적 개념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신비적 영역을 남겨 두는 삼위일체 인식이 과연 몇 명에게나 가능할까? 겉으로는 삼신론과 양태론을 부정하지만, 실제 우리 인식에선 어떨까?). 

전통적 삼위일체 교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슬림이 기독교의 신관을 비난할 이유가 없고, 그리스도인도 역시 이슬람교의 신관에 동의 못할 내용이 없다. 세 위격의 상호침투내재(페리코레시스)는 유일성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걸리는 부분은 '예수'에 대한 인식 차이다. 처음에 계속 걸리는 것이 그것이었다(아마도 모든 독자가 여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나 필자는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도리어 볼프의 계산에 감탄했다. 결국 이 책을 읽은 무슬림도 역시, '그렇다면 예수는?'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말에 볼프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있다.

"이 책은 무슬림들에게 보내는 공개 초대장이기도 하다. ... 만약 이 책을 읽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이 글에 비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재고해 보기를 권한다(25쪽)."

알라 좌담회 볼프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 ⓒ예일대 홈페이지

 

그리고 이러한 볼프의 논지는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 간 진행되기에 더욱 적절하다. 그런데도 왜 그는 굳이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대화를 먼저 진행시켰을까? 단순히 그가 기독교 신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정치신학자라 밝힌다. 세계 종교 분쟁의 가장 큰 화두는 기독교 대 이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더 시급한 것이다. 나아가 그가 공통점에 집중하는 이유는 실제로 이를 통해 어떤 신학적 신론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양자 간 종교 폭력 및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우리는 볼프의 최우선 관심사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전쟁에 대한 경험이나 신학 연구 여정에 있어 위르겐 몰트만과의 만남 등은 그의 최우선적 신학 과제가 '이 땅에서 폭력을 몰아내고 공공선을 이루는 것'임을 짐작하게 해 주며, 그것은 본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물론 볼프가 말하는 '최우선적 과제'가 모든 종교인들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실제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볼프가 지향하는 국가의 모습일 수 있다. 모든 종교가 공존하지만 국가는 어느 종교에 대해서도 편향성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 분쟁이 있는 세계의 모습에서 볼 때,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보수적 기독교의 선교활동은 긴장을 증가시키기 충분하기에, 여전히 이 책의 비판을 들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볼프의 정치적 이상은 간단하다. 모든 종교인은 국가에게서 자유로워야 하며, 나아가 종교 간 개종 강요나 폭력 행사는 결코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유일신앙을 가진 이에게 그것은 제대로 된 종교적 실천,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볼프의 기획 방향성에 대해, 그리고 내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첫째, 신학 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해, 그의 선택과 취급 방식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가 뒤로 제쳐 놓은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은, 신성모독 및 구원이라는 측면 때문에 마냥 뒤로 빼 놓기엔 너무 중요하다. 삼위일체 교리도 예수 때문에 개발되어야 했다. 볼프가 주장한 대로(제임스 던에 의존하여) 초기 그리스도인은 그 스스로가 '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기에 유대교와 동일한 신을 섬긴 것은 맞지만, 그 분열에 예수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 둘은 갈라서야 했다. 

글 서두에서 필자가 말한 그 무슬림은, 그리스도인의(그는 계속 가톨릭이라 표현했지만) 예수 부활 신앙에 대해 존중한다는 표현까지 했다. 그가 삼위일체를 다루면서 한 본성과 세 위격에서 멈추지 말고, 예수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 그것이 그의 전략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인을 설득하기보다 더욱 경계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알라 좌담회 볼프
▲「알라」에 대한 좌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사회 김근주 교수, 기조발제 김선욱 교수, 패널 변상욱 기자, 송용원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둘째, 정치적 기획의 완성은 선교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슬람 선교에 대해 필자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의 목표는 대체로 그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가 가장 큰 관심사로 삼는 것 중 하나인 '인간의 운명'에 대해 그가 밝히고 선교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 그리스도인의 타종교인에 대한 접근은 개종을 목표로 할 것이다. 인간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않고, 즉 비그리스도인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부활이 아닌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할 것이라는 불안은 개종을 목표로 삼는 선교를 멈출 수 없게 하며, 따라서 어떤 법률적 장치나 윤리 또는 사회적 인식이 공유될지라도, 소위 종교 근본주의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논지 전개는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많은 기독교인들과 무슬림은 영원한 구원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같은 신을 믿는 것이 곧 영원한 운명이 같음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짧은 대답이 부적절할 수 있지만, 시간상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이 사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영원한 구원 즉 그것이 '순금으로 되어(계 21:18)' 있는 도시인지, '강이 흐르는 아래의 동산(알-바까라 2:25)'인지에 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의 관심은 보다 현세적인 것, 곧 이 세상에서의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공존에 있다(247-248쪽)."

개종을 목표로 삼는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는 종교인은, 안타깝게도 소수 근본주의자들만이 아니다.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뿐, 생각보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러한 '개종'을 여전히 선교의 목표로 삼는다. 볼프가 어찌 생각하든, 대부분의 복음주의자에겐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의 현세적 기획은 이 '영원한 문제'를 다룰 때, 보다 현실성을 띨 수 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물론 그 기획은 결코 '1년의 안식년(집필 기간)'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슬람에 대해 막연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이슬람화'를 '악마화'와 동일시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그러나 무슬림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며, 이 세상을 만드신 유일한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경건한 이들이다. 

필자는 볼프의 「알라」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긴 세월 지리적·정치적·역사적 갈등으로 같은 신을 따르면서도 서로를 적으로 노려보던 십자군 전쟁의 과오를 이젠 반성하고, 식민지 삼는 선교를 멈추며, 우리 신앙에 대해 무슬림에게 평화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을,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열린 자세로 무슬림에게 다가가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진규선 목사
서평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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