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지난 3월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모습. ⓒMBC 뉴스투데이 캡쳐
반미·항미의 결정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한이 3월 24일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김정은이 친필명령서를 하달하고 직접 시험발사현장에 와서 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사된 ‘화성-17형’을 미국과의 장기적 대결의 차원으로, ‘또 다른 강력한 핵 공격 수단의 출현’이라고 했다. 동시에 제8차 당 대회(2021)에서 결정된 ‘주체적인 국방발전전략’ 실현 과정이라고 하며 ‘자력갱생의 창조물’로 내세웠다. 북한은 2021년 당규약을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당규약 서문에 ‘자력갱생의 기치’라는 용어를 삽입한 바 있다.

김정은은 8차 당대회에서, 미국을 ‘불법무도하게 날뛰는 적대세력’, ‘최대의 주적’이라고 하면서 강대강 전략으로 미국을 제압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이든 신 행정부가 들어서도 대북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항미 전략을 강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2021년도를 ‘정면 돌파의 해’로 다시 선언하면서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8차 당대회 선언대로 현재까지 핵무력을 강화시켰고, 이번에 발사된 ‘화성-17형’은 그것의 결과물이다. ICBM 발사 이후 김정은은 누구든 북한의 안전을 침해하려 든다면 반드시 처절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면서 그 대상이 미국임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미국과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하는 차원에서 계속해서 ‘군사적 공격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새로운 신냉전 구도를 틈탄 북한의 ICBM 발사

‘화성-17형’은 최대거리가 13,000km를 넘는 것으로, 미국 본토 전체가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미 백악관은 즉시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규탄 성명을 냈고 유엔에 안보리 공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유엔 대변인도 북한이 2018년에 발표한 모라토리엄(발사유예)에 대한 위반이라고 성토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미 바이든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강력하게 규탄하였다. 바이든은 이번 북한의 ICBM 시험발사를 사실상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안보 공약을 재확인했다. 미 재무부도 8일 만에 또다시 제재카드를 내놓았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한 5개 기관에 대한 추가제제에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네 번째 제재이다.

이번 북한의 ICBM 발사는 계획한 대로 진행해 온 것이지만, 국제적 상황과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지만 한 달이 넘어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러시아, 궁지에 몰린 푸틴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위기 고조,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 시 나토의 군사개입 방안들이 나오면서 ‘핵 재앙’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국제정세를 틈타 북한 김정은이 도발한 것이다. 미-서방 대 러-중이라는 신 냉전 구도가 형성되며 국제사회의 혼란을 틈탄 측면이 강하다. 중·러가 편들 것을 예측한 도발 행위이다. 예상대로 중·러는 북한의 안보리 규탄을 반대했고 오히려 제재조치를 완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러시아가 북한에 구애를 보내는 상황이므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눈을 질끈 감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강도가 더 높아진 반미·항미 선동

북한이 ‘화성-17형’을 발사한 다음 날인 25일 노동신문 기사에 특이점이 발견되었다.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기사들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고, 유독 반제국주의적 선전·선동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 반미·항미뿐만 아니라 반일·반봉건(지주)까지 포함해서 포괄적인 내용을 실었다. 반미차원에서는 바이든 현 정부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북한정권초기에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선교사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기사의 제목은 ‘선교사의 탈을 쓴 승냥이’이다. 이전의 노동신문기사들을 찾아보니 2년 전인 2020년 6월 18일자 기사에는 선교사가 제목에 들어가지 않고 다만 기사 내용 중에 한두 번 나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놓고 타이틀에 선교사는 승냥이라고 맹비난했다.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라고 규정한 후에도 선교사를 전혀 거론하지 않던 북한이 ‘화성-17형’을 쏜 바로 다음 날 반미-항미의 상징(표적)으로 과거 선교사들을 걸고넘어졌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이것이 인민대중들의 반미·항미정신을 고취시키는 단골메뉴인 것 같다. 기사 내용을 보면 분노와 저항심을 끓어오르게 할 만하다. 이 내용은 필자도 처음 접한 내용이다. 기사는 글머리에 다음과 같은 김일성의 발언을 적시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인도주의’ 간판을 들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야수적인 만행을 서슴없이 감행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한 선교사의 비행이 기술이 된다.

십자가를 든 미국 선교사 놈들이 개성에 기어든 것은 지금으로부터 백수십 년 전이였다. 놈들은 여러 곳에 례배당을 세워 놓고 순박한 조선사람들에게 우리 글로 된 성경책을 쥐여주면서 “예수를 구세주로 믿어야 잘살 수 있고 죽어서도 천당에 갈수 있다.”고 설교하였다. ‘자선사업’을 표방하면서 병원을 차려놓은 선교사 놈들은 저들에게 좋은 약도 많고 의술에 능한 의사들이 있어 그 어떤 병도 다 고칠 수 있으며 중환자들은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 준다고 사람들을 유혹하였다.

놈들은 이 말을 곧이 믿고 병원으로 찾아온 가난하고 순박한 조선사람들을 야수적으로 살해하곤 하였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변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나 애먹던 박귀점이라고 하는 처녀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앤더슨이라는 병원 원장이란 놈은 그를 입원시킨다고 하면서 처녀의 어머니더러 서약서에 손도장을 찍게 하였다. 그것은 치료 중에 죽어도 병원 측이 책임을 지지 않으며 만약 죽는 경우에도 시체를 찾을 수 없다고 씌여진 살인문서였다. 그러나 까막눈인 처녀의 어머니는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그날 처녀를 전신마취시켜 수술대 우에 올려놓은 앤더슨 놈과 그 녀편네, 실습생인 미국인 의사 놈들은 저들이 하고 싶은 대로 처녀의 생생한 배를 가르고 오장륙부를 몇 시간 동안 뒤적거리며 인체해부실험을 하였다. 처녀의 생목숨을 참혹하게 끊어 버린 앤더슨 놈은 그 무슨 암이여서 저희들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서 제 놈들의 죄행이 드러날가 봐 시체도 돌려주지 않았다.

북한이 선동하는 선교사 비행의 단골 메뉴인, 허시모 선교사가 떨어진 사과를 주운 아이의 이마에 청강수(염산)로 도적이라는 문신을 했다는 내용보다 훨씬 더 치를 떨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현 미국 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을 아무리 신랄하게 비난하더라도 이것만큼 분노와 저항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 같은 미국에 대한 인민대중의 불같은 적개심은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도 남는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김정은이 ‘화성-17형’을 발사한 것은 내부단속, 내부결속용 측면이 매우 강하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실정을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화성-17형’ 발사 이후 노동신문의 모든 사설(논설)은 이번 성공이 김정은의 혁명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시에 김정은에게 절대성을 부여하며 전 부문에서 김정은의 혁명사상을 관철하자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대미·항미의 결정체인 ‘화성-17형’은 북한 전체 인민들에게 김정은이 전무후무한 지도자임을 뚜렷이 각인시키고 있다.

대미·항미의 표적은 여전히 ‘선교사’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김정은 정권에서도 김일성-김정일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미·항미의 상징이자 표적이 여전히 ‘선교사’라는 것이 씁쓸하다. 북한에서 선교사들의 비행을 폭로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신천박물관’이다. 김정은이 직접 신천박물관을 계급교양의 거점으로 삼으라고 지시할 정도이다. 평안북도 선천시에 위치한 이 박물관에는 선교사들의 비행과 죄상을 고발하는 것들을 진열해 놓았다. 직접 관련 내용을 적시해 본다.

도에서 저지른 선교사 놈들의 죄행과 착취계급의 본성을 보여 주는 5점의 랍상, 조국해방전쟁시기 공중비적들이 감행한 신의주시에 대한 야만적 폭격을 비롯하여 적들의 귀축 같은 만행을 보여주는 여러 점의 반경화 반달형으로 된 벽면에 배경 그림을 그리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게 지형, 사람, 시설물, 도구, 무기 등의 모형물을 만든 다음 그림이 있는 벽면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한 관람대에서 굽어보게 만든 미술 형식
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마수를 뻗치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침략자들의 죄악에 찬 력사를 만천하에 고발하고 있다.

선천박물관은 선교사들의 비행뿐만 아니라 이 내용처럼 한국전쟁 시기의 미군의 만행들도 폭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다른 내용을 인용해 본다.

평양과 신의주를 잇는 교통상 유리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선천 땅을 조선에 대한 종교침투에 적합한 지역으로 삼은 미제는 해방전부터 ‘자선’과 ‘박애’의 간판 밑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들이밀어 미국식 생활양식과 숭미노예굴종사상을 퍼뜨렸다. 이렇게 길들여진 악질종교인들 대부분이 반동단체들에 가담하여 우리 인민의 참다운 삶의 요람인 공화국정권을 말살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었던 것이다.

정교진
▲정교진 연구교수(서울신학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지금 적대세력들이 우리 내부에 종교와 미신 등 부르죠아 사상 독소를 류포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책동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말살하려는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손쉽게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선천 땅의 피의 교훈을 한시도 잊지 말고 우리 내부에 반동적인 사상 독소와 썩어빠진 자본주의 생활양식을 퍼뜨리려는 적들의 책동을 높은 혁명적경각성을 가지고 대하며 그 자그마한 요소도 철저히 짓뭉개 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김정은 정권하에서도 선교사들을 반미·항미의 대표적 상징과 표적으로 삼고 선전선동을 하고 있으니 북한선교에 크나큰 장애가 될 것이다. 2000년대에 중국에서 북한선교를 할 때 만났던 북한사람들이 우리 선교사들을 경계하며 적대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이후로는 그 눈에 독기와 살기가 더해 갈 것이다. 향후 통일이 되더라도 선교에 엄청난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글은 WORLD VIEW 5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