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훈
▲시편 설교 시리즈의 백성훈 목사.
세상은 상대적 박탈감의 지배 안에 살아갑니다

현대 사회는 낮은 자존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당장 살기에 불편한 것이 없어도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요즘 자녀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사실 그 최신 기능을 다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유행이 지난 폰을 사용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신 스마트폰을 요구합니다.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고 좋습니다. 충분히 가족이 살아가기에 만족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더 큰 평수의 집, 더 비싼 집을 삽니다.

그러면 갑자기 자신이 처지가 비관적으로 생각되고 실패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자신도 대출을 더 받아서 큰 집, 비싼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집값이 오른다고 하니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너도나도 아파트를 사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능과 필요의 여부를 떠나,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상대적 박탈감이 만들어내는 욕심입니다.

얼마 전에 뉴스에 보도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한 뒤에 동반 자살을 했습니다. 이유는 아내가 신도시에 집을 사자고 했는데, 남편이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아야 한다며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신도시의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원망했고 매일 짜증을 내었습니다. 남편도 자책하며 지냈는데, 결국 그 낙심을 이기지 못하고 동반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적 박탈감은 현재의 나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더 나아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평생 만족하지 못한 채 실패감과 불안감으로 우울해 하며 살도록 만듭니다.

이런 욕심은 신앙에도 적용이 됩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같이 신앙생활하는 동료가 더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더 큰 은사를 받은 것 같습니다. 누가 기도해서 응답받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더 인정받으려고 열심을 냅니다. 무엇보다 다른 성도들보다 더 인정받아야 합니다. 은사도 더 받아야 합니다. 성경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봉사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축복도 더 받아야 합니다. 응답도 더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늘 만족하지 못하여 신앙에 실패감을 가진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의 지배 안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무엇보다 은혜는 우리를 평안하게 합니다. 이 평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사랑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시편 100편은 이런 평안에 감사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중 가장 확실한 감사의 시이며, 교회 역사에서 가장 많이 불려진 감사의 노래입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1-2절)”.

시인은 여호와를 기쁨으로 섬긴다고 고백합니다. 신앙의 박탈감이 있었다면 과연 기쁨으로 섬길 수 있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쁨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시인은 세상에서 보여지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보며 마음을 부었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3절)”.

시인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또한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 창조주께서 세상의 주인이며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할 수 있으며 안심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남보다 더 풍요롭지 못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세상의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에는 세상이 커 보입니다. 보여지는 것들과 사람들의 말들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당장 이것저것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세상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감사의 제사로 드려질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볼 때, 드디어 평안이 임합니다. 이 평안은 어디에서 올까요?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2가지 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는 죽어서 천국 가는 은혜이고, 또 하나는 살아 있는 동안 그 천국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임하는 평안은 천국의 평안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4절)”.

시인이 ‘그의 문’으로 들어간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궁정’에도 들어간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과 ‘궁정’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세상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 평안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이 지금 상대적 박탈감으로 낙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고, 고칠 수 없는 이 박탈감은 오직 하나님의 ‘평안’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평안이 내게 없다면 지금 당장 간절히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5절)”.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영원하고 성실하십니다. 시인의 이 마지막 고백은 평안을 누리는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우리도 이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편의 은혜는 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점점 하나님의 평안으로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깊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시편의 위로>, <시편의 소망>, <팀사역의 원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