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서고 넘어짐에, 조직의 운명 결정돼
1990년대, 성장 정점이자 신뢰도 추락 시작
지도자들 윤리적 스캔들, 정치 세력화 원인
건강한 역할 모델 필요, 빌리 그래함 이야기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 속 기독교인으로 설정된 244번 참가자.
◈《오징어 게임》 속 기독교인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보면, 기독교인이 극도의 자기중심적 존재로 드러난다. 늘 기도하는 신심으로 자기 욕망을 포장하는 244번은 보는 내내 불편하다. 또한 240번(지영)은 목사의 자녀이자 피해자이다. 그 목사는 아내를 죽이고, 딸을 고통 준다.

한국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다. 물론 기독교인이 과도할 정도로 괴악스럽게 표현되어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는 기독교인이 많지 않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해서다.

간단히 말해, 한국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세상 속에서 교회의 입지가 위태롭다. 교회가 존중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처지가 되었다. 어차피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닌데 새삼스럽다고 반응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회의 퇴락은 선교 사역의 좌절과 하나님 영광의 상실로 이어진다. 결코 여상히 반응할 문제가 아니다.

방금 소개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문제가 되는 244번은 (직분은 모르겠으나) 그 신심이 가시화되는 강도로 보아 교회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일 것이다. 목사거나 전도사, 혹은 장로거나 안수집사이리라.

또한 240번이 244번과 기독교에 대해 드러내는 반감은 명백히 교회 지도자와 관련된 것이다. 교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주변의 기독교인이 보여주는 모습과 특히 교회 지도자가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에 의지한다.

오징어게임
▲240번 참가자 지영(왼쪽).
◈조직의 운명은 리더에 달렸다

지도자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도자가 서고 넘어짐에 따라 조직의 운명이 결정된다. 구약 역사서를 보라. 왕이 타락하면 나라가 심판받는다. 교회 또한 목회자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마태복음 설교 중에 이렇게 말했다.

“잎이 바래고 죽어 가는 나무를 보면 그 뿌리에 이상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듯이, 성도들이 규율이 없이 제멋대로라면 의심할 나위 없이 성직자들의 거룩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필립 야콥 슈페터 <경건한 열망>(선한청지기, 2021), 31쪽에서 재인용

솔직히 한국교회의 상황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한국교회가 세간의 질타를 받는다면, 그건 일차적으로 보면 목회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뜻이다.

역사를 깨우는 기도 Revival2007’ 개회
▲2007년 평양 대부흥 1백주년 기념 집회 모습. ⓒ크투 DB
◈추락하는 한국 교회 중진들

많은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1980년대까지는 목회자들의 신뢰도가 높았던 것 같다. 그러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상황이 바뀐 것 같다. 1990년대야말로 교회 성장이 정점으로 올라가던 시대인 동시에 교회 신뢰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교회 신뢰도의 추락은 다른 게 아니라 교계 어른들의 추락이었다. 일부가 윤리적 스캔들에 휩쓸리고, 이어서 정치 세력화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교회가 가난한 자들이나 소외당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 부요한 자들이나 힘 있는 자들과 함께 하는 조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니 신뢰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2000년대 초반에 목회자들이 1907년 부흥의 재림을 갈망하며 회개를 강조했다. 문제는 목회자, 즉 지도자의 신뢰가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교회 갱신을 이끌 동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회개와 부흥을 이야기하니 변죽만 울리다 말 뿐이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지도자가 교계에 등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아쉬운 것이 바로 앞서 말한 교계 중진의 타락이다. 1970-80년대에 한국교회의 성장을 견인하고, 개인적으로도 참으로 존경할 만 한 삶을 살았던 목회자들이 노년에 이르러 윤리적 논란에 휘말렸다.

빌리 그래함
▲1973년 열린 서울 빌리 그래함 크루세이드 집회의 전경. 총 3일 동안 열린 집회에 약 300만 명이 모였다. ⓒBGEA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말년에 문제가 생겼다고 삶 전체를 저평가하기 어렵다. 한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생애 전반에 걸쳐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하나 신뢰 자체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뢰는 억지로 생기지 않는다.

한 면으로 역량이 있는 젊은 인재들을 양육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 면으로 교계 지도자들이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이와 별도로 이미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하늘로 부름 받은 신뢰할 만한 지도자들을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불완전한 면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으나 생애 전반을 돌아볼 때에 재평가되어야 할 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의 목회자는 아니지만, 한국 교회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빌리 그래함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는 일평생 윤리적으로 올곧게 살아온 참으로 드문 이다. 그의 아름다운 삶과 그에 대한 교회의 신뢰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해서 다음 글에서는 먼저 겸손의 사람으로서의 면모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필명 이아무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