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폴 틸리히 | 남성민 역 | 비아 | 160쪽 | 12,000원

폴 틸리히는 낯설다. 생경스럽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전형적인 한국 보수 교단에서 신학을 전공한 이들이라면, 폴 틸리히는 2차 문헌으로만 만날 뿐이다.

폴 틸리히에 관심이 많거나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1년 한들출판사에서 9년에 걸쳐 틸리히의 조직신학이 출판되긴 했지만, 이내 절판되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두어 달 전 새물결플러스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을 시작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폴 틸리히는 어떤 색의 신학자일까? 먼저 그는 독일 출신의 루터교 신학자라는 점부터 시작해 보자. 또한 칼 바르트와 대척점(對蹠點)에 있는 신학자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록 틸리히가 초월과 내재를 통합하려는 중간 어느 지점에 있는 신학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독일에 계시를 숭상한 신정통주의의 칼 바르트가 있다면, 미국에는 계시와 철학의 공통 분모를 찾아 조화를 시키려는 폴 틸리히가 있었다.

틸리히는 자신을 ‘경계선’에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신학적 성향으로 본다면 초월과 내재(범신)의 그 어느 경계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이러한 저자의 성향은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아래와 같은 명백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파스칼에 반대하며 저는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과 철학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인격이면서 인격인 자신에 대한 부정입니다(128쪽).”

블레이즈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와 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파스칼은 계시와 사유를 극단적으로 분리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이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순수한 신상을 고집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후 오리겐을 비롯한 후대의 교부들은 분리가 아닌 통합을 시도했다. 오리겐이 과도하게 통합했다면 오리겐의 뒤를 이은 어거스틴은 융통성 있게 교부 신학을 통합했다.

폴 틸리히
▲나치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았던 독일의 저명한 루터교 신학자, 폴 틸리히.
폴 틸리히는 신학적 성향으로 본다면, 분명 어거스틴과 같은 통합적 성향이 다분하다. 하지만 그는 통합보다는 실존적 조화를 추구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폴 틸리히는 20세기 신학자이다.

스탠리 그렌츠와 로저 올슨의 공저한 《20세기 신학》은 이러한 틸리히의 성향을 ‘실존주의적 존재론’이란 용어로 풀어낸다.

틸리히는 철학과 종교 신학을 통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로 두지도 않는다. 그들이 가진 공통분모를 찾아내 서로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한다.

틸리히의 논증은 예리하고 논리적이다. 목차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실존과 존재 물음으로 시작하여 성서에 나타난 인격주의로 확장하고, 신과 인간의 상호적 관계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신과 인간이 말을 통해 상호적 관계 맺음이 일어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 즉 계시가 주어지면 인간은 수용과 거절로 반응한다. 수용과 거절의 결단은 인간에게 불가피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존재론이 대두된다.

존재론은 인간의 실존을 언급하지 않고 서술될 수 없다. 틸리히는 ‘개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이로서의 개인(76쪽)’을 상정한다.

필자가 보기에 틸리히의 개인은 존재론적 의미의 개인이 동시에 상황 관계적 개인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미숫가루가 아니라 견과류 세트와 비유하면 좋을 성싶다.

즉 틸리히는 개인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말씀의 담지자인 예언자들은 고독한 독자(獨自)이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쫓겨나지만 떠나지는 않는다.

색이 다르기는 하지만,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외로움을 경험(78쪽)’한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연합이며, 철학 역시 이성을 통해 존재의 본질로 나아간다.

트뢸치의 영향을 받은 판넨베르크는 역사 중심의 신론을 펼쳤다면 동일하게 트뢸치의 영향을 받은 폴 틸리히는 계시 중심으로 신론을 펼쳐 나간다.

판넨베르크가 해체와 통합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성향이 보인 반면 틸리히는 존재론을 앞세워 조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미묘하게 다르다.

책은 작고 짧다. 하지만 읽고 나면 ‘역시 대가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예리하고 섬세하다. 폴 틸리히는 처음이나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정확하게 간파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유의 각성을 일으키는 창조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틸리히를 전공한 이에게 더 깊은 서평을 넘기며, 필자는 이것으로 마치고 싶다. 만약 틸리히의 조직신학을 읽고 싶은 이가 있다면 필히 이 책을 먼저 읽고 조직신학을 읽기를 추천한다. 부록에 실린 폴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